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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ee Apr 02. 2022

5개의 공간, 5명의 나

코리빙 라이프스타일 관찰기 14


연희는 주중이든 주말이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생각을 정리하며 글 쓰는 걸 좋아한다. 충분히 원래 살던 본가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코로나로 집이라는 한 공간에서 다양한 목적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알게 된 점이 있었다. 각 공간에는 그에 맞는 가장 알맞은 목적이 있다는 것. 특히 공간이라는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 연희는, 방에 있을 때 몸과 마음이 이미 가장 편안한 상태에 이르도록 절로 세팅이 된다. 본가에 있을 때 연희에게 방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로써는 최악인 셈이다. 이후로 연희는 방에 ‘온전한 쉼’이라는 하나의 목적만을 부여하기로 했다. 아침마다 바지런히 집을 두고 다른 공간을 찾아 나섰던 이유였다.


코리빙하우스에 오기 전, 거의 고정석이었던 아침 카페 자리


연희에게 코리빙하우스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첫째 이유도 사실 ‘함께 사는 이웃’은 아니었다. 공용 키친, 꼭대기 층의 라운지, 지하 공간의 라이브러리 등 내 시간을 위해 굳이 다른 공간에 값을 지불하며 나서지 않아도 활용할 수 있는 공용 공간이 많다는 게 제1의 이유였다. 어떤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몸도 마음도 확연히 달라지는, 공간이 주는 힘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다양한 공간을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은 그 어떤 주거 형태보다도 매력적이었다. 혼자 지내는 사적인 공간이 넉넉진 않아도, 오히려 언제든 뛰어들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늘 있다는 것. 입주하기 전까지도 다양한 공간 속에서 어우러질 자신만의 시간을 가장 기대했더랬다.


입주 후에도 그 기대는 그대로 연희의 현실이 되었다. 멍한 아침에 공용 키친으로 나가 물 한 컵 마시면서 창밖으로 고요하게 남산 타워를 바라볼 때, 조금 울적해지는 저녁 라이브러리에 가서 손에 걸리는 책을 집어 들고 앉아 책을 읽을 때,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요가 공간으로 가 어기적어기적 스트레칭이라도 할 때. 막상 살다 보니 우연히 발견하는 순간들 덕분에 더 다채롭게 공간을 이용하고 있다. 현재의 스탠스에서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옮겨 가고 싶을 때, 연희는 주로 코리빙하우스 안에서 현재 있는 공간을 바꾸는 전략을 취한다. 그리고 이 전략은 대부분 기분 좋게 먹혀들어 가곤 한다. 연희가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환경을 바꾸라’는 말에는 분명 물리적 환경도 포함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는 이유다.


책을 읽는 버전의 연희를 꺼내고 싶을 땐 주로 맨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창 밖을 바라보고 앉는다. 걸릴 것 없는 하늘 아래 책을 읽다보면 연희는 이 순간을 그대로 지속하고만 싶다. 이런저런 영감을 꺼내어 놓는 연희를 꺼내고 싶을 땐 지하 라이브러리로 내려가 제일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는다. 구석에 짱박혀(?) 제목이 끌리는 책들을 옆에 두고 읽고 싶은대로 읽다보면 제법 생각이 여러 방향으로 풀어지는 쾌감을 얻을 때가 종종 있다. 할 일은 있지만 집중은 안 되는 어느 날, 몰입하는 연희가 필요하면 지하 2층의 코워킹 공간으로 간다. 각자의 할 일에 몰입하여 앉아 있는 이웃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으면 모종의 에너지 때문인지 연희도 덩달아 다시 주어진 일에 몰입하게 된다. 다 필요 없고 모든 가면을 벗어던진 연희를 만나고 싶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방으로 직행이다. 



꼭대기 층에서 읽는 아침 책 읽기
멍 타임 보내기 좋은 공용 키친 창문 앞



물론 모든 공간을 다양하게 누리는 건 아니다. 사람은 익숙한 것을 좇아가는 경향이 있어 주로 사용하는 공간을 더 많이 사용하고, 사용하지 않은 공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사용하지 않게 될 때가 많다. 나의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곳인 만큼, 공간 이용 행태도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서서히 굳어지기 마련이다. 연희가 이곳에 입주할 때부터 운동 공간의 지박령이 되겠다고 다짐했으나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채 반년이 지나가는 지금, 이제는 운동하러 그 공간을 갈 생각을 하는 것조차 엄청난 의지가 필요한 이유다. 다시 입주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언젠가 쓰겠지- 라며 미루기보단 처음부터 친해지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래서 혹 이곳에 입주하려는 누군가가 연희에게 코리빙하우스 라이프를 조금 더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라고 묻는다면, 일단은 한 번이라도 모든 공용 공간을 사용해보라고 제일 먼저 이야기해줄 것 같다. 그래야 그 공간에 맞는 나만의 목적을 발견할 테고, 공간들을 나의 의미로 지속해서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나를 지켜보고 잘 활용하는 것, 코리빙하우스에서 누릴 수 있는 사적인 즐거움 중 하나다.



[코리빙 라이프스타일 관찰기]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나오면 우연히 마주하는 이웃에게 안부를 묻는 곳, 코리빙하우스. 연희와 테드는 같은 코리빙하우스에서 사는 이웃입니다. 두 사람의 시선으로 코리빙하우스에서 '따로 또 함께' 살아가는 여러가지 모양새를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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