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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테르 Jun 03. 2020

요리 그리고 시작

Part1.  어머니와 나의 요리 이야기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음식에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부엌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 그 곳으로 후다닥 달려가곤 했다. 그리고 요리하는 엄마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있었다. 발뒤꿈치를 들어도 엄마 허리밖에는 오지 않아서 싱크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재미있는 모양새로 곁을 맴돌았다. 칼을 도마에 내리치는 소리가 흥겨웠고, 보글보글 찌개가 끓는 모양새가 보기 좋았다.


 사람들이 누굴 닮아서 그렇게 음식에 관심이 많냐고 물어보면 엄마의 유전적인 영향이 컸다고 말한다. 엄마의 음식 솜씨는 동네에서 알아줄 만큼 명성이 자자했다. 간혹 동네 아주머니들이 음식장사를 해보는 건 어떻겠냐 물어보았지만, 엄마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며 집에서 해 먹는 것처럼 팔다가는 금방 망할 것이라며 웃었다. 그만큼 재료에 쏟는 정성과 시간이 가득한 요리. 그 요리를 먹고 자란 나는 마음이 따뜻한 요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란 것 같다.


 나 홀로 처음 했던 요리는 '수제비'였다. 초등학교 4학년인지, 5학년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갑자기 수제비가 너무나 먹고 싶었다. 마침 엄마가 친구분들과 마실을 나갔고, 내가 아직 어리다며 주방에 못 들어오게 했기 때문에 엄마가 없는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처럼 요리가 하고 싶었 당시에는 지금처럼 스마트 폰이나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에 책장 한켠에 꽂힌 낡은 요리책을 보며 어설프게 수제비를 만들었다. 밀가루에 물과 계란, 소금을 넣고 조물딱 조물딱 반죽을 만들었고, 멸치 몇 마리로 육수를 냈다. 두근거리며 만들어낸 나의 첫 작품! 수제비가 완성되었다. 내 요리는 정말 참담했다. 수제비 반죽은 뭉텅뭉텅, 육수는 맹숭맹숭. 결국 딱 한 숟가락 먹고 수저를 내려놓아야 했다. 속상했다. 몇 시간 동안 미친 듯이 정성을 들인 나의 첫 작품은 그렇게 내 기억 속에서 흐릿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얼추 엄마가 해준 그 맛과 비슷하게 수제비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엄마의 허리 자락이 아닌, 엄마와 같은 눈높이에서 눈을 맞추며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툭욱툭욱 뜯어 넣으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가 어릴 적, 집이 가난했던 그 시절에는 이 수제비가 그렇게 먹기 싫었다고 한다. 엄마에게는 쌀이 떨어졌을 때 먹는 지겨운 음식이 수제비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어린 나는 수제비를 너무 좋아해서, 우리 집은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수제비를 먹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것이 이럴 때 쓰는 말일까? 엄마는 내 조름에 마지못해 수제비를 해주셨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주말이 되면 엄마가 먼저 나에게 묻는다. 우리 오늘 저녁은 수제비 해 먹을까?하고...  엄마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수제비는 이제 없나 보다. 수제비는 딸과 한주 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멸치와 다시마를 담뿍 넣은 진하고 뽀얀 육수에 둥둥 떠다니는 수제비. 얇게 뜬 수제비가 부드럽게 후루룩 넘어가는 그 느낌이 좋다. 비가 추적추적 불어오고 바람이 불어올 때면 뜨끈하고 쫄깃한 수제비가 생각난다. 어릴 적 나의 추억과 엄마의 추억이 함께...


처음은 항상 기억에 남고, 특별하다.


당신의 첫 요리 그리고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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