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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테르 Aug 22. 2016

이가 없다면 잇몸으로  

꿈#1 한식조리사 자격증 따기

2012년, 나는 다시 한식조리사에 도전했다. 그때 당시 나는 대학교 졸업반이었고 매우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바쁜와중에도 한식조리사 시험을 준비했던 이유는 영양사를 하려니 그 자격증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 꿈과 도전이 취업을 위한 스펙과 연결되어 마음이 쓰였지만, 내 꿈 중 취업하기도 있었으니 별로 개의치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번에는 도저히 학원을 갈 짬을 낼 수가 없었다. 1년간 토익, 영양사, 위생사, 컴퓨터 활용능력 시험 등 각종 시험을 미친 듯이 치러냈다. 채무자가 밀린 빚을 청산하기 위해 허덕이는 것처럼 버거워하며 말이다. 대학교 내내 미뤄두었던 시험이라는 빚을 갚는 나의 모습은 조급해 보이면서도 가끔은 처절해 보이기까지 했다.


 시간이 없었던 내가 한식조리사를 준비하는 방법은 이미지 트레이닝이었다. 우선 조리법을 틈틈이 외웠고, 팁과 주의사항을 집중적으로 보았다. 그리고 마구잡이로 두 메뉴를 골라서 어떤 순서로 조리할지를 상상했다. 과거 한 번 해보았기 때문일까? 생각보다 기억하기가 쉬웠다.


 나는 다른 수험생들에 비해 칼질이 서툴렀다. 수험생 중에는 주부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그들과 비교하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이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고 나름 전략을 세웠다.


 시험 전날, 조리사들이 입는 조리복과 앞치마를 사서 깨끗하게 준비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전문가라는 신뢰를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상자를 만들어 키친타월을 차곡차곡 개어넣었다. 깔끔하고 위생적이었다. 심사 중에는 결과물만 평가되는 게 아니었다. 과정도 평가의 일부였다. 본인이 맛봐야 할 음식이 위생적으로 만든 것인 것이 좋지 않겠는가? 심사위원이 내 근처를 배회할 때는 나는 항상 물기 없이 도마를 정리하거나, 싱크대를 깔끔히 정리하는 척했다. 서툰 칼질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험장 근처에 문방구가 하나 있는데, 그 문방구에 가면 대략적인 출제 메뉴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문방구 주인이 전날 준비위원들이 무슨 식재료를 사 가는지 보고, 짐작해서 기출 메뉴를 뽑아내는 모양이었다. 나는 시험장에 일찍 가서 기출 메뉴를 보았고, 30여 가지의 메뉴 중 한 반 정도가 기출 메뉴로 동그라미가 처져있었다. 이게 무슨 기출문제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라는 생각으로 기출문제를 가지고 열심히 조리순서를 뒤집어 보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나는 시험에 합격했다. 2010년 보다 더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 번의 실패로 마음이 단단해졌고, 나름의 이미지 트레이닝 효과였는지 몰라도 순서대로 손과 발이 움직였다. 이렇게 하나의 꿈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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