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마지막 오후. 여기 이 공간에서
살색 덧신을 벗어서 바닥에 둔다. 정말 오랜만에 랩탑 위에서 나 자신과의 대화를 할 생각에 흥분한 손가락이 요란스럽다. 크-응 숨을 들이마시게 끔 하는 비염, 늘 내가 글을 쓸 때면 찾아오던 불치병이 지금 이 순간 갑작스레 킁킁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걸 보니,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맞나 보다. ‘비염의 안도가.' 내 눈물샘을 자극한다.
빠르게는 2017년 여름, 본격적으로는 2018년 1월, 차에 내 짐을 몽땅 싣고 고속도로를 달려 부산 집으로 내려온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글이 없는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늘 내 내면과의 대화에 목말라 있었지만 그 갈증은 어느 순간부터 내 몸 어딘가에 있는 점 마냥,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려낼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현재 내 일터인 이 공간을 2년간 준비하였고, 또 이 공간을 고객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지 벌써 9개월째에 들어섰는데, 여전히 난 적응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날그날 밀린 일들을 해결해 나고 밤이 되면, 내 몸은 녹초가 되어 있다. 늘 체력을 더 단련시켜서 원더우먼으로서의 삶을 살아보는 생각이 간절하나, 운동을 할 시간이 있으면 잠을 택하겠노라는, 20대에는 꿈에서도 읊어보지 않았던 말들이,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다짐 같은 형태로 변해 있다.
어젯밤 내내 땅으로 매섭게 내리치던 폭우로 오늘 오전 두 시간 동안 건물 내 급수가 중단되어서 가게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윗 층에 머무는 거주자분들도 물을 써야만 할 텐데 걱정하며 전전긍긍하지를 않나. 비교적 잠잠한 오전 시간이 갑작스럽게 많은 고객의 방문으로 내 정신 줄을 흔들지 않나. 내 예상을 뛰어넘는 타인의 발언, 충고, 격려, 때로는 눈물까지.
물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인생으로 보이지만, 매일이 몰아치는 비바람에 폭풍 같은 스피드로 매몰차게 나를 끌고 가던 날들. 내 의지로 질주를 하고 있는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우울해지던 시간들. 와중 다행인 건, 조금씩, 천천히,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도적으로 이끄는 삶을 언제 온전히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오늘 나는 요란스럽게 킁킁대며 타자를 칠 수 있게 되었고, 어제의 폭우는 회색 빛 도는 무거운 구름이 되어, 둥실둥실 밤을 가지고 내려오면서, 혼란스러웠던 내 마음을 자기 만의 방식으로 이내 차분케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