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나 끈덕지게 하는 법이 없는 내가 유일하게 행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미루자!"이다. 세상엔 두 가지 일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난 싫어하는 일을 기어코 마감 끝까지 미루었다가 급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미루는 그 시간만큼 심적 괴로움과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동안의 내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한껏 미루었다가 일을 처리하는 게 내겐 잘 맞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 마지막 과제 제출일이 12월 24일이었다. 정확히 무슨 과제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소논문 정도의 분량을 제출해야 하는 레포트 과제였다. 물론 이 과제 마감 공지는 한참전에 떴다. 하지만 주제를 생각한답시고 한 달을 버렸더니 어느새 과제 제출일을 삼 일 앞둔 뒤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어디 갈지는 진작에 정했으면서, 과제는 내팽개쳤던 거다. 그때부터 열심히 주제를 생각했다. 또 이런 레포트 과제를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기에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주제를 정하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주제를 정했더니 어느새 하루가 꼬박 지나갔다. "그래, 이제 주제도 정했으니까 앉아서 쓰기만 하면 되잖아! 3시간이면 쓰지 뭐." 안일한 생각을 하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날은 날씨가 꽤 흐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날따라 하필 '갬성'에 빠져 한 페이지도 완성을 못했다. 마음은 쪼여오고, 주제는 잘 정했다 싶었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논리적으로 풀어가지를 못하겠고…. 그냥 교수님한테 편지라도 써야 하나 고민하다가 또 하루를 날렸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은 12월 23일 밤에서 24일로 넘어가는 새벽 몇 시간. 진짜 마감이 코앞에 있다는 걸 실감한 나는 그제서야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부랴부랴 레포트 10장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머리가 하나도 안 돌아갔는데, 마감이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체감하는 순간 슈퍼컴퓨터 못지않게 머리가 돌아갔다. 결국, 아침 해가 뜨는 걸 보고 나서야 과제 제출을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아, 이 맛에 마감하지!"
사실 하기 싫은 일을 한껏 미루다 보면, 그 일이 되게 범접할 수 없이 어려운 일로 느껴진다. 그런데 미루고 미루다가, 막상 그 일을 시작하면 "애걔? 별거 아닌데? 왜 이렇게 미루기만 했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난 또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만다. 아,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