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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Nov 06. 2018

분신술이 필요한 시간


어렸을 때 <날아라 슈퍼보드>를 볼 때마다 신기했던 장면이 있다. 바로 손오공이 머리카락을 뽑아 '후' 불면 똑같은 손오공이 여러 명 나타나는 장면. 이 장면이 나올 때마다 손오공을 따라 한답시고 아픔을 참아가며 머리카락을 뽑아 후후 불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도 참 손오공을 부러워했는데, 지금이야말로 분신술이 절실히 필요한 시간이다.


뭐 대단한 걸 하는 것도 아닌데 요즘은 일주일 내내 '해야만 하는 일정'으로 빽빽하다. 지난여름에는 집 리모델링부터 시작해서 가전, 가구 보러 다니고…. 심지어 가전, 가구는 구매한다고 끝이 아니다. 배송이 한날 동시에 오는 것이 아니라 제품마다 다르기 때문에, 물건 받고 설치하는 거 기다리느라 집에 대기하는 것도 일이다. 그래도 집에 물건만 들여놓으면 다 끝인 줄 알았는데. 또 그게 아니었다. 스냅 촬영은 둘째 치고 반지 맞추기, 예단 준비, 드레스 투어, 한복 등등 뭐 이렇게 준비할 게 많은지. 게다가 평일에는 내가 일을 하니까 저녁에 이것저것 알아보면서 체크하고, 주말은 거의 온전히 결혼 준비에만 쏟았던 몇 달이었다. 아직까지도 해야 하는 일이 줄줄이 있다는 것이 절망적일 뿐. 


물론 결혼 준비하는 과정이 마냥 스트레스는 아니다. 시간 잡아먹는 거 빼면 준비 자체는 사실 재밌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처음 해보는 것이다 보니까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재밌는 건 재밌는 거고. 지금 우리에게는 온전한 휴식 시간이 없다. 예전처럼 읽고 싶은 책도 실컷 읽고 공연도 실컷 보고, 취미 생활도 즐기고 싶은데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여유는 둘째 치고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없는 거다. 


진짜 말 그대로 손오공이 되고 싶은 심정이다.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도, 내 생활을 좀 즐기고, 힘드니까 마음껏 쉴 수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진짜 내년 초에 모든 게 끝나면, '해야 하는 일' 말고 '하고 싶은 일'만 잔뜩 하면서 살 거다. 


그러니까 아무도 말리지 마세요. 진정한 욜로족이 되어볼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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