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친구 결혼식에 갔을 때만 하더라도 내가 결혼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연애가 끝난 지 1년이 넘었고, 썸이라고는 1도 없었으며,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조차 마냥 귀찮게 느껴지던 때였다. 같이 결혼식에 간 친구는 소개팅을 주선해주겠다며 본인이 더 난리여서, "그래, 소개팅 해보지 뭐."라고 대꾸를 하기는 했지만 전혀 내키지 않았다. 혼자 여행 다니고 공연 보러 다니고,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재밌고 좋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의 나는 참 행복했다. 지금이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고 아무 말 없이 훌쩍 떠나버리는 건 아무래도 지금은 어려우니까. 그때의 나는 많이 생각했고, 많이 읽었고, 많이 썼다. 핑계일지는 모르겠지만, 난 늘 그랬다. 연애를 하면 뭐든 그 사람에 집중하느라 내 일을 잘 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헤어지고 나서는 물 만난 고기처럼 혼자서도 이것저것 생산적인 일을 많이 하는데, 오히려 연애를 하면 어느 한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내 경우엔 그랬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던 여름 끝물쯤에 대학교 같은 과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몇 달 전에 인스타 팔로우를 했길래 '좋아요'를 누르고는 했는데, 갑자기 "내일 뭐 하니"라는 메시지가 왔다. 사실 난 거절을 잘 못 하는 성격이라서, 정말 이상한 경우가 아니라면 상대가 약속을 제안했을 때 결국 받아들이기는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사실 대학 다닐 때 인문대 뒤편 계단에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한 거 말고는 거의 기억에 없는 선배인데, 참 뜬금없네 싶었다. 그래도 약속은 잡았다. 그사이에 갑자기 생긴 회사 미팅 때문에 한 번 미뤄지기는 했지만, 결국 왕십리에서 이 선배를 봤다. 9월 초여서 퇴근하고 만나도 아직 밖은 환한 상황. 보자마자 인사를 했는데, 그 선배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대뜸 "너 목소리가 원래 이랬나?"라고 했다. 너무한 거 아니냐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그랬을 거다. 대학 다닐 때 제대로 말해본 적도 없는데, 목소리를 기억할 리가. 그렇게 어색한 상태에서 소곱창을 먹으러 황소곱창에 갔다. 괜히 어색하니까 술을 더 먹었다. 어색함을 풀고자 우리가 공통으로 아는 우리 과 사람들의 근황이 입 밖으로 모조리 튀어나왔다. 그럴수록 대화는 풍성해졌다. 친분이랄 게 요만큼도 없는 사이지만, 공통의 기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구나, 신기했다.
밥만 먹고 헤어질 줄 알았던 그 날의 만남은 맥줏집에서의 2차로 이어졌다. 지금은 없어진 그 맥줏집에서 우리는 많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재주소년과 검정치마를 이야기했고, 그해 여름 출간된 하루키의 소설을 입에 올렸다. 서로 취향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난 우리 과 사람들만의 취향과 감성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말은 "당신과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다"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날 새벽 1시가 넘어서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중간중간 멍 때리는 나를 보며 웃던 그 순간, 어쩌면 이 만남이 계속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은 들어맞았다.
그렇게 작년 가을부터 난 혼자만의 시간을 줄이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상에 익숙해졌다. 지금까지 "결혼하고 싶다"라는 말이 "사랑해"라는 말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한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말이 이렇게나 무겁고 진지한 말이었는지도 새삼 깨달았다. 1년 반 전까지만 하더라도 단 한 번도 떠올려본 적 없는 사람이, 지금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마냥 꿈같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별의별 희한한 순간을 많이 경험했지만, 이건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다.
물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