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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oungalice Jul 04. 2021

로마, 감각을 되찾는 곳

도시 첫 인상 (1)

로마에 왔다. 이탈리아는 처음이다.


테르미니 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낡은 건물과 우중충한 표정, 길바닥의 쓰레기에 놀랐다. 트램을 타고 숙소로 가려고 했는데, 트램이 스위스 트램과 달리 터프하게 생겨서(? 전쟁 시에 쓰였을 것만 같은 외관) 낯을 가리며 택시를 타고 갔다. 가면서 속으로 ‘제네바도 낡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래서 스위스로 이주하려는 유럽인들이 있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첫 날 밤에 도착했을 때의 인상은 그랬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제네바에 있을 때 쌓인 건조한 감성이 각질처럼 조금씩 벗겨져 나가기 시작했다. 길 건널 때 차들이 절대 멈춰주지 않고, 지하철도 제 시간에 안 가고 오래 정차했지만, 사람들이 좀더 사람 같았다. 언어를 못해도, 제네바처럼 차갑게 쳐다보는 게 아니라 되는 대로 이탈리아 어에 손짓 발짓 섞어서 얘기해주고, 지하철에서 표를 넣고 빼는 걸 까먹은 채 지나간 후에 가림막 너머로 낑낑댈 때도 낯선 행인이 도와주었다.


제네바에 있을 때 편한 점들이 더 많은 건 사실이다. 사람에 의존하지 않고 시스템(과 돈;)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많다. 하지만 로마에 오니 적은 돈으로도 오감이 채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같은 브랜드의 옷 가게조차 두 도시는 너무 달랐다. 로마 매장은 구경만 해도 여러 가지 색감과 디자인을 보고 나오면 기분이 좋아졌다. 아침에 90센트짜리 커피를 마시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카페든 식당이든 매장 내의 배경음악이 좋아서 머무르다 가면 기분이 전환되었다. 전기가 비싼 유럽이지만 여기는 인간적으로 조금씩 냉방을 틀어주고, 무료 와이파이도 많다(제네바와 너무나 다른 점).


인종차별을 걱정했는데, 어떤 느낌이냐면 제네바에서는 상대방이 ‘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이니까 티 내지 말아야지’의 느낌으로 나를 대한다면, 로마에서는 ‘나는 친절한 사람이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친절하게 대하려 노력해야지’의 느낌이다. 미묘한 차이이긴 한데, 지금은 어쨌든 전달되는 친절함을 고마워하며 받는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감각에 있어서는 기준이 높고 타협하지 않는 그 느낌이 좋다. 직장인이라면 로마보다는 제네바이지만, 감각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제네바보다는 로마가 잘 맞을 것 같다.


두 도시의 느낌이 달라서 그런지 사소한 차이에 감동하게 된다. 해산물이 맛있어! 당근 케잌이 맛있어! 저 아주머니가 아무 말 없이 도와줬어! 이탈리아 어를 ‘고맙습니다’ 밖에 못하는데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는 상거래를 할 수 있었어! 작은 순간순간 마음이 치유된다.


(스위스에서) 개처럼 벌어서 (이탈리아에서) 정승처럼 쓰는 삶이 가능할까.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현금 흐름(passive income)이 있는 채로 로마나 리스본 같은 곳에서 사는 삶이 제일 좋아보인다. 지난 1년 간 눌려 있던 감각에 공기가 채워지는 걸 보며 약간 심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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