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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윤 Aug 06. 2024

똑같은 일기

몇 년 만에

오늘도 나는 긴 시간 공을 들여 자책을 했다. 짧고 보잘것 없는 생애 내내 나는 자신을 다그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굴었다. 네가 대단한 줄 아느냐고, 잘난 줄 아느냐고 늘 속으로 속삭였다. 사람이라면 응당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고, 어느정도는 주인공처럼 여기기 마련이니, 이런 생각들은 언제나 다투며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곤 했다. (2022/6. 마지막으로 임시저장되어 있던 글)


<똑같은 일기>


보낼 수도, 버려 버릴 수도 없는 밤이나 편지 따위를 구겨 버리면서 

지긋지긋한 노래를 한 번 더 들으면서

아마도 마지막으로 남은 머리카락을 수챗구멍에서 찾아 버리면서

한 번 더 이런 기분에 라벨지를 덧대면서, 또 덧대면서.

그럴 기분이 아니라면서, 아니라서. 


뒤늦게 썼던 편지나 일기를 보면 건어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맥 사이를 옮겨 다니며 의미가 불분명한 단어를 짚어내다 보면, 그 사이에 숨어 있던 감정이나 기분 따위는 모두 휘발되어 지금 듣고 있는 노래나 생각 따위나 겨우 재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니까. 잠깐은 추억하고 싶은 기분에 젖어,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굴기도 할 것이다. 길게 의견을 적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하고 지워버리는 마음으로, 몇 번인지도 모르게 다시 갈무리하겠지만. 펜으로 박박 긋거나, 라벨지를 덧대거나, 

한 때는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안타까워 어떻게든 손아귀에 두고 싶어 했다. 꾹꾹 짓눌러 쓴 일기장을 더듬 더듬 읽다 보면, 차마 다 적어낼 수 없었던 마음의 꼬리뼈가 간질거렸다. 퇴화라는 말은 없으니까. 깎일 대로 깎인 그것은 너도 멸종되지 않게 조심해, 하고 작게 속삭인다. 거짓말을 더할 수 없어 비유 속을 떠다녔던 나의 일기장 속 말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일은 거짓말보다 나쁜 일일까? 특별한 선택이나 행동, 주의집중 없이도, 이제는 쉬이 시간이나 기분, 기억 따위를 흘려보내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데 이것으로 괜찮은 것일까. 태도나 행동만이 있다면, 이래도 괜찮은 걸까? 

늘 어쩔 줄 모르겠는 기분으로 불안에 떨고 있다. 빛난다고 생각한 사람들 사이에서 디저트로 누룽지를 내어 놓는다. 그마저도 간장 종기나 겨우 채울까 싶은데. 했을지도 모르는 말들을 주워 섬기는 사이 또 시간은 훌쩍 지났다. 

요즘 음악을 안 들어서 그런 걸까 싶다. 에어팟을 잃어버린 이후 좀처럼 노래를 듣지 않는다. 잔뜩 취해 헤드셋을 쓰고 속이 터져라 시끄럽게 듣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말 그대로 종종이니까. 달리는 시간 속에서 부러 기운이나 기분을 내고, 또 내서 술을 마시는 것도 이제는 부담스러우니까.

늙었어.

늙어서? 참 치졸한 말이다. 언제는 또 안 그랬나. 언제고 봤던, 걸쭉하게 취해 불그레한 노인의 얼굴이 지나간다. 노래하고, 또 여전히 살아있던. 언제는 또 다짐하지 않았나, 언제는 부러워하거나 질투하지 않았나? 고운 말을 고르는 동안 목 아래는 죄다 구정물에 처박혀 있지 않았나? 그런데도, 어떻게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왜 그러지 못 할까?

그래서 어제는 빨래를 했고, 매일 같이 씻고, 밥을 지어 먹었다. 내일은 내일의 불안이 뜰텐데 하릴 없이 잠에 드는 시간을 미루고 있었다. 어제가 오늘이 되어도, 미래로 가서 또 지루한 사실을 발견하는 일은 멈출 수가 없었다. 어쩌면, 오늘은 무언가 하나 바뀌었을 지도 모르지. 극적인 운명이 찾아올지, 내가 변할지, 말도 안 되는 기회가 찾아올지. 아니, 죄다 무서우니까. 결과야 어쨌든 그 모든 일이 다 지나간 일인 것을 아니까. 치즈 태비 고양이가, 갈려 쥔 손 사이에서 먹이를 찾는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오른손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고양이는, 다시 또 오른손을 선택한다. 또 선택한다. 또 선택했다. 그건 좀 귀여운 영상이었다. 바보 같다고 한참을 깔깔 웃다가, 그만 웃기로 했다. 

다음 일기는 또 언제 쓸까. 오 년? 십 년? 꾸역 꾸역 밀도를 올리려고 했던 글이 끝맺으려고 할수록 지리멸렬해지는데, 왜 더 많은 말들이 터져나오지 않나 모르겠다. 며칠 전 젖은 바닥에 떨어뜨린 수건을 끔찍하게 축축해졌고, 바질은 여전히 싱싱하게 자라는데 말이다. 

한 문장을 적는 동안 여덟 개 쯤 되는 생각이 지나갔다. 밀도나 삼투압, 화장실의 냄새, 건조하거나 습한 공간들, 그 사이에 놓인 나. 그, 사이에, 놓인, 나. 이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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