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음주가(무)

돌이켜보면 지난 나의 삶이란

by 김지윤

생각나는 것들을 겨우 이어 붙이니 글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나 이렇게 가끔 뭐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돌아왔다. 크게 취한 후 차가운 토사물을 게워내는 느낌으로, 말이다.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볼 때마다 나는 불끈 방에 안경을 벗고 누워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리한 삶을 견디는 데 있어서 음악이 지대한 영향을 해왔음을 잊어버린 대가로, 또 최근 몇 년을 학창시절보다 더한 무채색으로 보냈다. 이것도 가족력일까? 할아버지의 공황장애는 내 어머니에게로, 다시 나에게로 이어졌다. 이모도 허슬해야 했던 이십대는 무채색으로만 기억난다고 했다. 그러고보면 이모는 국문학을 전공했는데 왜 물어볼 생각을 못 했을까. 어른들에 대한 편견이겠지, 어른이 되고서도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못 하니까 갖고 있는 그런 편견 때문에. 최근에야 인생재활에 그럭저럭 성공해서 나쁘지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으나, 몇몇 고비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겨내면서 아, 나도 큰일 날뻔 했구나 하고 섬짓함을 느끼곤 했다.


오늘 수업시간에, 조지훈의 화체개현을 가르치며 학생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OO이로부터 모든 생명체의 조상인 단세포 생명까지 대를 잇는다면, 약 38억년 간 단 한 번도 대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 셈이죠. 조지훈 작가가 석류꽃의 개화를 목격하며, 태초의 바다에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생명의 흐름에 감동을 느낀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나의 아주 먼 조상으로부터 몇몇 질환의 인자와 생명을 이어 받아 이렇게 사는 것이다. 그들의 숨과 티라노 사우르스가 내 호흡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에 몹시도 새삼스러우나, 그만큼 사무치게 징글맞기도 한 것이다. 어두운 방구석에서 앞뒤 분간 못 하고 혼미한 상태로 술과 담배를 즐기던 내가, 그렇게 해서 결국 내가 태어났구나. 그쯤 옷에서 나던 역겨운 냄새 마냥. 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몹시도 미안해지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니 아직도 그건 그렇다. 죄송합니다.


내 질환에 대해 얘기하면 주변인들은 "너 정도면 정신병 아냐."라며 으레 피상적인 주관으로 자기 증명을 요구했고, 나는 그에 맞춰 삶을 좀먹는 자기파괴를 자행해왔다. 내게 내 정신병을 탐구하는 일은 그들의 시각에 비하면 보다 흥미로운 일이었는데, 이것이 어머니에게 큰 한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는 독자 연구로 전환했다. 다음번에는 ADHD의 경제적 파국에 대해서 길게 글을 써보면 어떨까 싶다. 고, 또 튀어 오르는 생각을 짓누른다.


나는 조금 취하면 늘 즐겨 듣던 노래들을 찾는다. 요즘 내 플레이리스트와 알고리즘을 채우는 노래들은 대체로 구태의연한 것이다. 나는 구태의연이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이며 이상한 안정감에 젖는다. 디딘 땅이나 신념이 유동하는 경험을 한 사람들은 다들 그런 지점을 하나 둘 쯤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주는 것들에 대한 감사와 경의. 언제 수업을 들으며 "액체근대"라는 책을 읽으며 내 언어를 찾은 듯한 기쁨을 느낀 적 있었다. 그러니까, 같잖게 주워 섬긴, 세상의 파편을 불안한 호흡으로 주절대는, 감은 눈을 떴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그렇다고 선지자 같은 것이 될 수 없는, 극도로 어줍잖은 상태의 무언가로서 그런 기쁨을 누렸다.


하루 하루 살아온 날이 늘며 그런 구태의연함에 목 메고, "어른 제국의 역습"에 등장하는 빌런에 이입하게 될 즈음에, 어린왕자의 한 대목을 예시로 들어 설명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에, 알아챈 것이다. 그 옛날의 노래를 찾고 있는 나를.


아버지나 어머니나 어른들이나 누군가의 삶을 번복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전근대의 근면함을 내면화한 "어른"들 앞에서 막상 내가 손에 쥔 나의 삶이 아주 초라하고 보잘것 없다는 생각을 하고, 또 거기서 어떤 안도를 얻고, 내가 가한 상처들을 떠올리고, 그래 그래서 도저히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못 한 순간들을 떠올리고 하다 보면 족히 몇 시간이 간다. 남은 것은 텁텁한 입냄새 뿐. 그러고 나면 또, 누구처럼 몇 시간이나 며칠이나 몇 주를 살아갈 세이브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오늘은 퍽 일찍 잠들 생각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똑같은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