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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리 Jun 18. 2023

사망신고

엽편소설

성명 “한명자”, 성별 “여”, 주민등록 번호 “430725-......”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사망신고서에 써 내려가는 인적사항은 분명 50년 전 떠났던 엄마의 것이었다. 출생신고조차 되어 있지 않던 2살짜리 아기를 오빠 부부에게 맡기고 떠나버린 후 소식 한 점 전하지 않았던 엄마. 아이 아빠를 캐묻는 가족들에게 끝끝내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났던 엄마가 지금 내게 왔다.     


경미한 수전증인 듯 손을 떨며 힘겹게 신고서를 작성하던 여자가 한숨을 내쉬며 잠시 펜을 내려놓는다.

“저... 물 한 잔만 마실 수 있을까요?”

단발의 파마머리에 희끗희끗 흰머리가 섞여 있어 눈가 주름이 더 깊어 보이는 여자의 갈라진 목소리가 갈증에 메말라 있음을 반증하고 있었다. 민원창구 한 켠에 설치된 정수기에서 찬물을 따라다 주자 물 한 잔을 단숨에 비워낸다. 몹시 목이 탔던 모양이다.     

“실례지만, 돌아가신 분과는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교회에서 만난 분인데 연고도 없고 형편이 딱해서 제가 모시고 산 지 10년 넘었어요.”

“그럼, 친족은 아니시네요? 그럼 사망신고 자격이 안되실텐데...”

순간 여자가 당황한다.

“그러면 어쩌죠? 이 어른 나 말곤 아무도 없어요. 자식도 없고 연락되는 친척도 없고 하도 딱해서 그동안 저희 집에서 모시다가 작년부터 몸이 안 좋아지셔서 요양원에 모셨던거라...... ”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여자가 가지고 있던 서류봉투를 뒤적이더니 주민등록등본 한 장을 꺼낸다.

“여기 보시면 저희 집에 동거인으로 되어 계신데 그래도 안 되나요?”

“아, 동거인으로 되어 계신 등본 첨부하시면 신고 가능하세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여자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신고서 빈칸을 채워 나간다.     


아버지, 실제로는 나에게 외숙부가 되는 양아버지는 나를 호적에 올리고 키우는 동안에도 여동생의 소식을 찾아보려 무던히도 발품을 팔았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엄마 친구를 통해 흔적을 찾기도 했지만, 차비 정도 되는 돈을 융통해 서울 어딘가로 떠났다는 것 외에는 더 이상의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면서 고향을 떠난 나는 졸업 후 임시직을 전전하면서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끈 떨어진 연이 질정 없이 허공을 헤매듯 십 년 가까이 대처를 떠돌았다.      


“결혼 생각이 없으면 여자가 든든한 직업이라도 있어야 한다. 집으로 내려와 공무원 시험이라도 준비해라.”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셨을까? 과묵하시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 불현듯 귀향 통보를 하셨다. 안 그래도 반년 전 어머니가 위암으로 세상을 뜨신 후 고향에서 홀로 지내고 있는 아버지에게 마음이 쓰이고 있던 차였다. 아니 그보다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도회지의 날 선 생활에 지쳐 있었던 탓이 더 컸으리라. 나는 못 이기는 척 고향으로 내려왔다.     


십여 년을 떠돌다 왔음에도 고향집은 예전 색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햇살 아래 시원한 빛을 뿜어내는 파란색 지붕과 자그마한 텃밭을 품은 마당의 눌눌한 흙빛, 그리고 마당 둘레로 붉게 녹슨 철판 화덕, 파란 호스를 물고 있는 수도꼭지, 수돗가에 널부러진 은빛 스테인리스 세숫대야 등 올망졸망한 잡동사니들이 따듯한 햇살 아래 잔잔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다만, 주인 잃은 텃밭에는 싱그러운 초록빛 대신 잿빛으로 시든 채소들이 헝클어져 있고, 담벼락 밑에는 오랜 기간 손보지 않아 허리만큼 올라온 채 시들어버린 잡풀들이 무성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기운 없이 장롱에 기대어 앉은 채 나를 맞아 주셨다.

“왔냐. 건넌방 비워 놨으니 짐 풀고 쉬어라.”

마치 오늘 아침 외출했다 돌아온 딸을 대하듯 덤덤하게 맞이하는 아버지 낯빛을 잠깐 살피고 건넌방으로 들어가 옷가지와 새로 산 수험서 따위 짐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수십 년 전 엄마가 도망치고, 그로부터 이십 년 후 도망치듯 내가 떠났던 고향으로 나는 돌아왔다.      


떠나있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생활은 익숙하고 무료하게 이어졌다. 어머니의 죽음 뒤로 부쩍 기운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가을걷이를 겨우 끝내신 후 동면에 들어간 짐승처럼 방에서 꼼짝하지 않으셨다.      

“저랑 병원에 한 번 다녀오세요”

“쓸데없다. 살 만큼 살았는데 구차스럽게 병원은 무슨.”     

밥상머리에서 건네본 나의 걱정을 무색하게 거둬버린 아버지는 한 달 후 끝내 잠자리에서 깨어나지 못하셨다.


나의 마지막 혈육, 엄마의 유일한 형제가 그렇게 떠나버린 후 지금까지 나는 홀로 고향집을 지키며 살아왔다. 몇 번인가 마음에 들어온 사람을 만나기도 했지만, 결국은 혼자가 되었다. 가끔 근처 선산에 묻혀 있는 할머니와 부모님 묘를 찾아보기도 하고, 마을 어르신들의 마실을 맞으며 실없는 농을 하기도 하지만, 나의 독신은 아귀가 맞지 않는 경첩처럼 이웃과 지인들에게는 조금 껄끄럽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쓰면 되는 건가요?”

여자가 내민 사망신고서 내용과 첨부서류인 사망진단서의 사망일시, 장소 등을 대조해 보니 삐뚤거리는 글씨일망정 내용은 모두 일치했다.

“쓸 것이 참 많네요.”

“······.”

잠시 말문이 막혔다. 평소대로라면 재산조회 서비스나 화장장려금 따위 관련 복지제도 몇 가지를 더 안내했을 터였지만, 머릿속이 하얘져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참 곱고 단정하신 분이었는데 너무 쓸쓸하게 돌아가셨어요.”

여자도 이대로 자리를 떠나기 아쉬웠던지 망자에 대한 소회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선생님이야말로 연고도 없는 분을 이렇게까지 챙겨주시고 대단하시네요.”

여자의 넋두리에 반주를 맞추어 주듯 나도 모르게 말이 흘러나왔다.

“아녜요. 우리도 자식들 다 시집, 장가 보내고 적적할 때 마침 어르신을 만나 동기처럼 서로 의지하고 잘 살았지요. 워낙 깔끔하고 단정하신 분이라 손 탈 일도 없었구요.”

“어르신 혈육들하고 연락은 끝내 닿지 않았나봐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살아온 시간이 너무 오래라는 말만 하시구 전혀 내색을 안 하시니 저희로서도 알 수가 없었지요. 에휴 돌아가신 후에 혹시나 해서 그분 짐도 찾아봤지만 연락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더라구요.”


“이건 반납해야 하나요?”

여자가 서류봉투에서 누렇게 빛바랜 주민등록증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발급일이 이십 년이 넘었음에도 갈라지거나 긁힌 흔적 하나 없이 그대로 색만 바랜 주민등록증 우측 상단에 흐릿하게나마 오십 후반쯤 되었을 엄마의 얼굴이 남아 있다. 색이 뭉그러져 이목구비는 명확하지 않지만 짧은 곱슬머리에 겨울 스웨터를 곱게 입은 모습, 무상하게 지은 표정이 어딘가 세상 미련 둘 거 없다는 느낌을 준다.

“이건 저희가 회수해서 상급기관에 반납할거니까 지금 주고 가셔야 해요.”     

여자는 마지막으로 서류봉투를 뒤적거려보더니 더는 할 일이 남지 않았는지 무겁게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떠났다. 여자가 떠난 자리에 사망진단서, 사망신고서, 주민등록증이 남았다.     


‘띵동, 86번 고객께서는 2번 창구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멍하게 있었을까? 갑자기 순번기 안내방송과 함께 민원창구의 왁자지껄한 소음이 한꺼번에 귀속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엄마는 적어도 10년 전쯤부터 이곳 고향 면소재지로 와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고향집을 찾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나 몰래 다녀갔을지도 모른다. 아니, 가족들이 죽었을 때도 나타나지 않던 사람이니 나 따위를 새삼 찾았을 리 없지.      

갑자기 분이 차올라 눈물이 날 것 같다. 나는 또 왜 나서지 않았을까. 이 사람은 오십 년 전 나를 떠난 엄마라고, 내가 유일한 혈육이라고 나서지 못할 건 또 뭐란 말인가. 하다못해 유골을 모신 곳이라도 물어 봤어야지. 직장 사람들에게 내가 버려진 사람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 두려웠을까? 친모의 부재를 평생 안고 산 것도 모자라 이제는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를지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감당하는게 억울해서였을까?

그래, 억울하긴 하다. 내가 원한 것도 아닌 세상에 나는 던져졌고 버려졌고 양부모님의 사랑을 받기도 했지만, 원초적 결핍은 끝내 채워지지 않았다. 원망 한 번 못해 보고, 이유 한 번 물어보지도 못한 채 이따위 종이 몇 장이 되어서 내 앞에 나타나다니. 내 억울함과 분함과 채워지지 않은 허망함의 무게를 나는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비타민 음료를 내밀며 직원이 건넨 염려에 대충 현기증 핑계를 대고 탁상거울을 보니 마치 관에서 뛰쳐나온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에 두 눈은 충혈되어 있다. 젠장 내가 왜 이러지? 무슨 큰 일이라고!


컴퓨터 화면을 열고 가족관계 전산망으로 들어가 엄마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열람해 본다. 부모는 모두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부존재인 상태이고, 배우자, 자녀 하나 없이 홀홀 단신이다. ‘사망’ 메뉴를 클릭하고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 엄마의 자료를 불러낸다. 특정등록사항에서 ‘폐쇄’를 클릭하고 폐쇄원인에 사망을 선택한다. 엄마의 가족관계등록부는 지금 이 순간부터 폐쇄된다. 가족관계등록부에 사망 사건을 기록하고 교합까지 마쳤다. 엄마의 길지 않은 삶이 멈췄다.      


고향마을 면사무소에 발령 받은지 육개월 남짓이다. 이렇게 엄마를 만날 운명이었을까? 마치 기억에도 없는 엄마의 임종을 지킨 것만 같은 기분은 뭐란 말인가. 외로운 인생, 끝내 수수께끼의 해답을 풀어주지 않고 떠나버린 엄마. 그 앞에서 나는 침묵 밖엔 할 것이 없다. 울 수도, 따질 수도 없이 나는 또 하나의 죽음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삶은 불도저처럼 내 분노와 의구심과 무언가 있었을 지도 모를 가능성들에 대한 미련 따위를 짓밟고 시간을 달려 나간다.      


면소재지 변두리에 한갓지게 자리 잡은 집으로 돌아오니 저물어 가는 석양빛에 마당은 주홍빛 노란빛이 너울거려 잔치집 분위기다. 파란색 지붕도, 황무지로 변해버린 텃밭도, 녹슨 화덕도, 스테인리스 세숫대야도 모두 농익은 석양빛에 반짝거리며 시간을 지나치고 있다. 눈물 같은 것이 뺨 위로 흘러내린다. 신기하다 이런 온기 없는 눈물은 처음이다. 밑도 끝도 없이 세상에 나 하나를 덩그러니 남겨두고 엄마는 그 어떤 단서도 없이 세상에서 원래 없었던 존재처럼 없는 듯이 있다 나와 상관 없이 세상을 떠났다.


온기 없는 눈물이 그치지 않고 뺨을 타고 흘러 턱 끝으로 떨어지는 지금 이순간 석양은 너무도 찬란하고 화려하게 퇴장하고 있다.  그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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