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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할매 Aug 04. 2023

해원의 이야기 2

새아버지와 콩쥐에 대하여

엄마랑 내가 둥지를 튼 새아버지 집은 이전 우리 집과는 많이 달랐어. 새아버지는 듣기와는 다르게 한빈한 삶을 사는 노인으로  우리 엄마의 아버지 같았어. 내겐 할아버지 같았지. 마을 서당 훈장님을 할 만큼 한학에 깊은 지식을 가진 분이었어. 집안의 대를 잇는 외아들이셨대. 이런 새아버지에게도 끔찍하게 귀한 외아들이 있었는데 스무 살 남짓 됐을 때 산에 올랐다가 사고사 했대. 새아버지와 그 부인은 너무나 상심한 끝에 부인이 앓다가 그만 돌아가셨고 그 막내딸이 집안 살림을 하며 아버지를 모셨는데 그때 열아홉 살쯤 되었던 거 같아.

이 언니와 우리의 만남은  콩쥐팥쥐 이야기 같아서 언니에게는 우리 엄마가 팥쥐엄마 아니었을까 생각돼 ㅠㅠ


집안의 중심어른인 아버지가 새 아내를 맞았다니까 날마다 문중 친척들이 찾아와 절하던 풍경이 떠오른다. 집안은 듣던 바와는 달리 너무 가난해서 엄마는 입고 온 한복을 밤에 빨아 인두질로 다렸다가 다음날 하루종일 입고 인사받는 일을 한동안 반복해야 했어.


그런 세월이 한 해 남짓 흐르고 마침내 그리도 원하던 남동생이 태어났어. 아들을 본 새아버지는 책임감에 불타 평생 학문만 했을 뿐이라 장사 수완도 없던 분이 당시 막 생산되던 한산모시 중개업을 시작했어. 엄청나게 잘되어서 집도 사고 논도 사고 벽장에 돈다발도 넣어둘 만큼 벌었지만 이재에 밝지 못하던 분이라서인지 그 재물들은 불과 몇 해 동안 일을 돕던 친척이나 어려운 이들에게 모두 분배되었대.


콩쥐 언니나 나나 그 시절 여자애들이 무슨 공부를? 하던 분위기처럼 학교 교육은 엄두가 나지 않았어. 엄마만 해도 일제강점기에 보통학교는 졸업해서 읽고 쓸 줄 알았는데 그 아래 세대인 우리는 새아버지의 뜻이었는지 동네 학당에도 가지 못했어. 물론 엄마가 나를 데리고 왔던 애초의 목표인 내 병 치료는 언감생심이었나 봐.

자기 아버지를 엄청 존경하며 사랑했던 콩쥐 언니는 잠시 아버지의 사업이 잘됐던 그즈음 아버지 뜻대로 사돈끼리 정혼한 신랑에게로 시집갔어. 세간을 몇 대의 트럭에 실어갔다고 할 만큼 풍요로운 혼인이었어.


세 살 터울로 여자동생 둘이 태어났고 아버지의 재물은 알게 모르게 사라져 갔어. 아아 ㅠㅠ 엄마라도 이재에 밝든가... 속수무책인 새아버지는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당시로서는 완연한 노인이 되었고 아직 젊은 엄마의 삶은 다시 신고간난의 세월이 시작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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