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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할매 Aug 04. 2023

해원의 이야기 3

온전한 내 사랑 경아야...ㅠㅠ 너무 짧은 행복

불구의 몸이었지만, 배움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무 살 남짓 된 나를 지극히 아껴준 오빠가 있어.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던 시기가 아니었지만 그이는 오빠처럼 나를 애틋해했고 나는 그런 오빠가 너무나 좋아서 엄마 허락도 없이 그를 따라갔어. 무작정 따라갔어. 작은 셋방을 얻어 우리는 소꿉놀이 같은 살림을 살기 시작했고 얼마 후에 딸이 태어났어. 딸 이름을 경아라고 지어주고 나는 얼결에 엄마가 되었어.

나는 숨이 막힐 듯이 행복했고 그 사람도 많이 아주 많이 행복해했어. 하지만 나는 많이 행복하면 안 되는 사람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 행복도 얼마 가지 못해 스러져갔어. 아기가 홍역을 앓다가 두 해를 채 살지 못하고 천사가 되어 날아갔고 마치 기다리던 운명처럼 오빠도 떠났어.


갈 곳이 없어진 나는 무서운 엄마 품으로 기어 들어왔어. 엄마는 나에게 그렇게도 무서운 존재였지만 다시 엄마를 찾아온 나를 품에 안았어.

집에 돌아오니 대학생 남동생, 학교밖소녀라 불리는 여동생,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막내가 치매와 중풍을 앓는 아버지랑 단칸방에 살고 있더라. 나를 품어준 엄마를 도와서 열심히 일했어. 엄마가 새벽시장에 물건 하러 간 동안 나는 좌판이나마 시장에서 아침 장사를 했어.


엄마는 먹고사느라 남동생 하나만 어렵게 대학교를 보냈을 뿐 여동생 하나는 공장에 다니고 있었어. 이 동생은 너무나 반듯하고 이쁘고 똑똑했는데, 골목에서 야학 전단지를 가져와 엄마에게 보내달래서 저녁이면 학교에 다녔어. 나는 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을까 ㅠㅠ

늘 이 동생을 생각할 때마다 미안하고 고맙지. 공부하면서 엄마 대신 집 살림을 꾸리던 동생을 나 몰라라 하고 나는 놀러 갈 생각만 했거든. "너에게 공부가 중요한 것처럼 나는 놀고 맘에 드는 거 사는 게 중요해." 라며 항의하는 동생에게 발악을 한 적도 있어. 암튼 정규학교에 못 간 동생도 떠돌고 불구 몸에 배운 바 없는 나도 놀러 다니며 떠돌던 시절... 집에선 아버지가 치매로 똥까지 싸던 때였어. 지나간 시절을 아름답다고 누가 그랬어?

손쉽게도 현금통에 손을 대기 시작한 나는 엄마의 매받이가 되었고 그러면서도 엄마 곁에서 꿋꿋하게 버티다가 어느 날 홀연히 집을 떠났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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