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멈추게 한 3가지의 순간들
마케터라면, 또는 속초 여행을 간다면 꼭 들려보길 권하는 곳이 있다. 그곳은 서점이다. 속초의 서점은 깨알 같은 기획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재미를 발견하기 좋다. 각 서점만의 특색을 엿볼 수 있고 그들이 어떻게 고객에게 메시지를 전하는지 파악하면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속초 여행에서 나를 멈추게 한 순간들을 3가지 키워드로 만나보려고 한다.
여행을 하는 사람은 여행지의 좋은 리뷰가 가득한 맛집, 관광지, 예쁜 카페를 찾는다. 하지만 가슴 한 구석에 설명할 수 없는 갈증을 품고 있다. 남들이 모르는 또는 '로컬스러운' 공간을 갈구하는 마음이 그런 것이다.
나 또한 비슷한 갈증을 품고 있을 때 속초 서점 <완벽한 날들>에서 그 갈증을 해결해줄 작은 안내서를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동쪽 끝 바다 여행자를 위한 작은 안내서>.
속초의 서점 칠성조선소, 완앤송, 헬로우씨, 완벽한 날들, 동아서점이 모여 극동연합이라는 이름하에 작은 안내서를 만들었다. 이 안내서는 여권이라는 컨셉을 가지고 해당 서점을 방문하면 스탬프를 찍어준다. 다섯 공간의 스탬프를 모두 찍으면 작은 선물도 받을 수 있다.
또한 속초의 맛, 속초의 한 잔, 속초의 낭만이라는 키워드로 맛집, 술집, 관광지를 추천한다. 극동연합, 즉 진짜 속초가 소개하는 공간이니 가지 않을 수가 없다.
보통 서점을 방문하게 되면 가지런히 책이 놓여 있는 매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매대 위에는 경영, 경제, 어학 등의 큰 글씨를 볼 수 있다. 이것은 서점의 일반적인 책 분류 방식이다. 하지만 속초 <문우당서림>은 조금 다르다.
속초 서점 <문우당서림>에서 발견한 책을 분류한 방식이다. '퇴사러를 위한 도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든다는 일', '매일 신문을 펼쳐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등 <문우당서림>은 매대에 있는 책을 지극히 각각의 '나'에게 초점을 맞춰 소개한다.
특히 <문우당서림>의 구성원을 '서림인'으로 명명하여 서림인의 목소리로 책을 소개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서림인의 한 줄과 함께 매대에 놓인 책은 또 다른 생명을 얻게 된 셈이다.
<문우당서림> 2층에 올라가면 1층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1층에 일반 서적이 가득했다면 2층에는 독립 서적을 먼저 만나볼 수 있다. 올라가자마자 나를 반긴 것은 한 서림인의 목소리였다.
서림인은 나에게 마음에 드는 문장을 하나 고르라고 먼저 말했다. 그리고 그 문장의 태그와 함께 <문우당서림>의 이야기가 담긴 스티커(북마크)를 담아주었다. 이 과정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후에 나는 고마운 마음과 함께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왠지 이곳에서 뭔가를 하나라도 구매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이다. 어디선가 봤던 한 문장이 떠오른다.
무언가를 얻기 전에 먼저 주어라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먼저 받으면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 마음이 나에게도 생겼기 때문에 구매 욕구를 느낀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는 한편으로 마케팅을 정말 잘한다, 고 생각했다)
낯선 공간에 가면 뜻밖에 발검음을 붙잡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속초 여행에서 내가 발견하지 못한 순간들이 있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소개해주면 좋겠다.
마지막은 너무나도 예쁜 <완벽한 날들>의 책갈피와 <문우당서림>에서 만난 반가운 책 <잡스>. <잡스>는 20인이 자신의 '일'에 대해 쓴 독립출판물이다. 그 20인 중 한 명인 나의 이야기도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