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 졸업 후, 2달이 지났다.
개발자로 커리어를 전환하기 위해 당근마켓을 졸업하고 2달이 지났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빨리 흘렀나,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보낸 2달이었다. 비록 짧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손에 꼽을 정도로 재미있었던, 그리고 몰입의 시간을 가졌던 2달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진행한 바닐라코딩이라는 부트캠프 프렙 과정 후기와 2달 동안 개발 커리어 전환을 위해 어떻게 지내왔는지 회고하는 시간을 가지면 나를 조금 더 객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글을 남긴다.
개발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이후 본격적으로 개발 부트캠프를 알아보았다. 제대로 시작하려는 만큼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원도 소수로 가져가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나는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부트캠프는 되도록 걸렀다(힘들어야 뭔가 그걸 깨고 싶은 동기부여가 생긴다).
우연히 우리 회사(나는 여전히 당근마켓을 나왔지만 우리 회사가 입에 붙었다)에 프런트엔드 개발자 스티브와 단 둘이 식사를 했던 적이 있는데 '바닐라코딩'이라는 곳에서 부트캠프를 수료하고 기획자에서 개발자로 전향했다고 한다. 사실 그 당시에는 개발에 대한 계속적인 관심이 있었지 딱 '개발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자리 잡지 않은 시절이었는데, 후에 개발자로 커리어 전향의 마음을 먹고 나서 그때 스티브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 바닐라코딩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밖에 없다.
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리던 부트캠프와 딱 일치했다. 인터넷에 많은 수료생들의 진솔한 후기를 보았고, 여기가 진짜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소수의 정원을 가져가는 것, 부트캠프에 들어가기 위한 코딩테스트도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바닐라코딩은 수료생들의 취업현황을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공개하는데, 한 마디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공개함으로써 더욱 설득이 되었고 매력적이었다.
(또, 겉만 번지르르한 광고, 마케팅 활동을 하면서 많은 순진한 사람들을 꾀는 행동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바닐라 코딩은 총 2단계 과정이 있다. 첫 번째는 프렙 과정, 두 번째는 부트캠프 과정이다. 프렙 과정을 스킵하고 바로 두 번째 과정인 부트캠프를 진행할 수도 있지만 이건 논외로 하겠다(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통해 참고해도 좋겠다).
첫 번째 프렙 과정은 총 50명의 인원으로 9주간 진행한다. 프렙은 평균적으로 100명 이상이 지원한다(프렙 10기의 경쟁률은 2:1 정도였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신청 기간에 바로 신청하고 끝이 아니라, 디테일을 요구하는 신청서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 신청서에는 간단한 자바스크립트 문제, 자기소개, 지원 동기 등 이 사람이 진짜 열정을 가지고 진지하게 임하려고 하는지를 확인하는 질문들이 담겨 있었다. 특히 간단한 자바스크립트 문제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단순한 문제였지만 그 당시 개발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을 때 처음 마주하곤 정말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그 문제와 함께 설명에는 '틀려도 상관없지만,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합격할 수 없다'는 문구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가르치는 사람에게서 진정성이 느껴지면 가르침을 받는 사람도 마음이 움직이게 되어 있다. 그렇게 나는 신청서를 쓰게 되고 합격 메일을 받게 되었다.
프렙 합격과 함께 바닐라코딩에서 사전 학습 가이드와 과제를 주었고, 처음으로 개발이란 낯선 환경에 발을 딛게 되었다.
바닐라코딩 프렙 합격 메일을 받고 프렙 개강까지 약 4주 정도가 남은 시점에서 사전 학습 가이드와 입학 과제물을 받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입학 과제를 만들고 개강 첫 주에 코드 리뷰를 받았다.
프렙은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매주 과제가 주어진다. 그리고 주말 동안 부트캠프를 수료한 선배 기수들로부터 코드 리뷰를 받는다(선배 기수분들은 굴지의 개발회사에서 현재 커리어를 쌓고 있다). 매주 과제가 주어지기 때문에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때론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도 많았지만 그런 것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성취감을 얻기도 하고 다른 프렙 동료들의 코드를 보면서, 그리고 코드 리뷰를 받으면서 생각의 확장과 겸손함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9주를 향해 달려가면서 본 부트캠프를 위한 어드미션 코딩테스트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바닐라코딩 프렙을 듣는 동료분들은 정말 다양한 곳에서 커리어를 쌓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다. 나 또한 미대의 예술문화학(정확히는 미술 이론, 예술 비평, 큐레이터학 등을 배운다) 그리고 광고홍보학을 복수 전공하여 졸업한 뒤, 기획(AE)을 하다가 디자인(프리랜서)을 하고, 전 회사인 당근마켓 마케터까지 여러 가지 경험을 했다.
바닐라코딩을 통해 나는 올해 처음으로 개발을 접하게 되었고, 물론 나와 같이 올해 처음 시작한 사람들도 존재하겠지만 대부분은 어느 정도 혼자서 개발을 했거나 다른 부트캠프, 학원 등에서 하다가 아쉬움을 느끼고 여러 조사를 통해 이 곳으로 정착하게 된 케이스다. 그래서 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이 해야 했다.
짧은 시간이었기에 많은 학습량도 중요했지만 올바른 학습 방법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메타인지를 높이는 것 또한 성장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느꼈다. 메타인지란 한 차원 높은 생각. 즉 자신을 객관화하여 볼 수 있는 능력이다.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인지하는 것, 어떤 방법으로 공부를 해야 효과적인지 아는 것 등이 메타인지에 속한다. 그래서 난 메타인지를 높이기 위해 크게 '나를 객관화할 수 있는 지표 만들기', '의도적 연습(범주화하기)', '회고 일기 쓰기'로 나누어 2달을 보냈다.
이 지표를 만들지 않고 그냥 무작정 개발 공부만 했으면 어땠을까. 지금도 부족하지만 그 보다 한참은 더 뒤처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 이렇게 말을 하냐면, 우린 생각보다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를 공부를 위해 10시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면 그 하루에 공부한 시간은 10시간일까? 만약 내가 시간을 체크하지 않았다면 10시간으로 퉁치고 끝내면서 '역시 오늘 열심히 했어!'하고 자만했겠지만, 실상은 그 반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공부를 한다.
실제로 나는 개발 공부를 스타트-! 할 때 타이머를 항상 켠다. 그리고 그 시간을 체크했다. 개발 공부를 하지 않거나 식사 시간 등은 당연히 제외했다. 그러고는 하루를 돌아보니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 이렇게 실제 시간을 측정하고 보지 않았더라면 난 그냥 생각 없이 열심히 한다고 착각하고 시간을 흘려보냈을 것이다.
난 아무래도 점수화시키는 걸 좋아하는 사람 같다. 시간 측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서인지, 하루를 전체적으로 어떻게 보냈는지 점수화를 시켜보았다. 항목은 총 5개. 기상시간, 공부량, 개발 공부량, 하지 말아야 할 일, 배운 점이다. 이거는 사람마다 당연히 다를 것이다. 나는 이 5가지 항목이 내 하루를 측정하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고 또한 5가지 모두 동등한 게 아니라 그중에서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항목의 중요도 점수를 더 높게 주었다. 그리고 항목들을 모두 합산하여 점수화하여 오늘 하루를 어느 정도 객관화하여 바라보았다.
의도적인 연습 또한 굉장히 중요한 공부법인데, 단순히 '나는 오늘 6시간 공부를 할 거야'가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가 더욱 구체적이고 도전적인 목표를 정하고 임하는 공부법이다.
의식적으로 나는 오늘 어떤 학습을 통해 어떤 것을 배울 것인지, 어떤 부분이 많이 부족하니 그것을 집중적으로 탐구하여 완전히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 등이 있겠다. 그리고 그것들을 더 객관적으로 만들 수 있게끔 범주화하였다.
현재는 기본 개념, 실전 문제라는 항목으로 범주화를 시켰고 이게 적응이 된다면 더 늘릴 예정이다. 오늘 하루 이 모든 걸 다 한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하루가 지나면 보기 쉽게 다른 색으로 표시하고 그것을 통해 우선순위를 파악하기 쉽게 만들었다.
쓰다 보니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의도적인 연습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고하면 좋겠다.
뭐 회고 일기라고 해서 대단한 게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오늘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 기상시간 등 위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들을 다시 노트에 옮기는 일과 함께 하루를 2번으로 쪼개 브리핑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오늘 ~ 를 더 잘했으면 좋았을 것이고 내일 ~ 에 더 집중하자(또는 하지 말자)'는 한 문장을 꼭 쓰는데 이건 우연히 유퀴즈를 보다가 마켓컬리 김슬아 대표 말에 영감을 받아 실천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메타인지를 높이기 위해 무단히 애를 썼다.
프렙을 수료하고 바로 부트캠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트캠프 정원은 20명 내외. 즉 프렙 수료생 중 반 이상은 부트캠프로 갈 수 없으며(물론 프렙 수료생들 중 부트캠프를 신청하지 않을 수도 있다), 프렙을 수료하지 않은 사람들이 부트캠프를 신청한 경우까지 포함하면 부트캠프를 뚫는 것 또한 프렙, 아니 그 이상으로 큰 노력을 필요로 하며 힘든 일이었다.
프렙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프렙 10기 동료들이 몇 명 있는데, 그들 또한 다가오는 어드미션 코딩테스트에 많이 긴장하고 있었다. 적은 인원으로 부트캠프를 운영하는 만큼 혹여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컸던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이때까지 프렙 9주 동안 했던 과제와 활동 그리고 테스트 결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한다고 말씀하긴 했지만 그래도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드미션 코딩테스트 그 이후...
결론적으로 망했다고 생각했다. 어드미션 코딩테스트는 총 2문제. 첫 번째 문제는 20분, 두 번째 문제는 40분 내에 풀어야 한다. 첫 문제를 보고 다소 긴장하여 문제 이해를 좀 늦게 했지만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라 생각해 아주 빠르게 풀었다. 그러나 두 번째 문제에서 멘붕에 빠졌다. 문제 이해를 하느라 시간을 다 써먹었고, 결국에 손도 못 대고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그렇게 두 번째 문제는 손도 못 대고 끝났지만 그 이후에 문제를 다시 곱씹어보았다. 그리고 테스트가 끝난 후에야 문제의 해답을 풀 수 있었다. 평소에 내가 스스로 약하다고 생각했던 개념이었고 테스트 보기 전에 한 번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개념이었다! 한 번 보긴 했지만 한 번만으로 끝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반성과 겸손을 배웠다(이제 겨우 한 두 달에 불과하지만, 프로그래밍은 하면 할수록 겸손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5월 3일, 바닐라코딩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어드미션 결과 메일. 어김없이 집을 나서 스터디 카페를 가는 길에 결과 문자를 받고 곧장 메일을 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3년 전 당근마켓 합격 전화를 받았을 때만큼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그리고 스터디 카페에 도착해 이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다 보니 굉장히 길어진 느낌이다. 그간 있었던 일들을 모두 나열하고 싶은 욕심은 끝이 없지만 그만 글을 마쳐야겠다.
이제 본 부트캠프는 6월 7일 시작한다. 개강을 하면 이때까지 했던 것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이상의 노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개강 전 남은 한 달 동안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내가 부족한 부분을 더 보완할 것이다.
이제 겨우 첫걸음을 띄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다 이룰 거다.
(부트캠프 후기는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