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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ibooks May 30. 2019

2019 수사나 로드 세계 체코 문학 번역 대회

Susana Roth 수사나 로드 한국어 부문: 시부야에서 깨겠다

수사나 로드 세계 체코 문학 번역 대회

체코 문화원과 체코 문학 센터는 체코 현대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데 큰 공헌을 했던 스위스 출신 체코 언어 학자이자 번역가인 수사나 로드(1950-1997)의 이름을 붙여 만든 제5회 수사나 로드 세계 체코 문학 번역 대회를 개최한다. 대회의 목적은 해외의 젊은 번역가와 체코어 학자의 장기적인 지원과 해외에 신생 체코 작가와 체코 문학을 알리는 데에 있다. 체코 문화원이나 체코 대사관 네트워크에 의해 체코 공화국 외 지역에서 진행된다. 오는 해에는 벨라루스, 불가리아,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대한민국, 헝가리, 마케도니아, 폴란드, 오스트리아, 우크라이나 그리고 영국이 참여한다. 한국에서는 주한 체코 문화원과 주한 체코대사관 그리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체코슬로바키아어과가 주관하여 2016년도부터 진행되고 있다.

체코 문화원 홈페이지 발췌: 링크


참여 계기

2019년, 그러니까 올해 초였나. 주한 체코 문화원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수사나 로드 번역 대회라는 이름을 처음 발견했다. 이런 국제 번역 대회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었다. 워낙에 희소한 언어였다. 내 5년 간의 학업기간의 전후로 총 9년간 체코에 살았지만, 체코어 실력이 현지인처럼 뛰어난 것은 아니었기에, 이런 대회 같은 것을 찾을 생각도, 참여할 생각도 못했었다. 말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가만히 엉덩이 붙이고 앉아 체코어를 들여다보고 분석하며 이리저리 한국어로 적당한 어휘를 찾아내는 것은 그래도 할만한 일이었다. 신생 번역가를 지원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대회였기에 만 40세까지라는 지원 자격이 있었는데, 이것 또한 마침 나에게 간당간당하게 들어맞았다.

 

번역 소회

2011년 체코를 떠나온 이후, 8년 동안 방문할 기회가 없었다. 스위스나 네덜란드를 잠시 여행차 다녀온 적은 있었지만, 여러 가지 생업과 개인사로 인해 체코는 항상 마음속의 응어리처럼 남았었다. 그러다가 2019년 초에 체코에 드디어 한 달간 다녀올 수 있었고, 마침 그때가 이번 대회의 선정도서인 [시부야에서 깨겠다]의 번역본을 제출하는 날짜 직전의 기간이었다.

체코, 프라하는 그곳에 발을 딛게 된 이후, 언제나 나에게 애증의 존재였다. 그보다 더 그리워할 수 없고, 그보다 더 지긋지긋할 수 없는 곳. 그런 곳에 다시 내 발로 들어가, 과거의 애인을 보듯, 온전히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러니까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그대로이면서 변한 모습이 낯설었다. 나 없이 잘도 변했구나, 나랑 있을 땐 이렇지 않더니. 괘씸하지만 다행이네. 조금은 나아졌지만, 더 나빠진 것도 있네. 이런 기분이 들었다. 이전의 번화가이던 곳에 어쩐지 뽀얀 먼지가 한 겹 앉은 느낌이 들었고, 새로운 핫 플레이스들이 생겨났다. 새로 생긴 핫 플레이스에서는 모든 것이 빠르고, 비싸고, 사람들이 꽤 유창한 영어를 자연스럽게 했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나는 주로 노인들이 다니는 장소만 다녔다. 그런 곳은 대개 전과 변함없이 그대로이고, 비용이 저렴하거나 조용했기 때문이다. 도서관, 비스트로, 공원, 서점. 어딜 가나 내가 가는 곳은 사람들은 조용히 말했고, 모든 것이 느렸으며, 느린 노인들과 느린 젊은이들, 아이들이 드나들었다. 느리고 조용한 사람들은 간혹 아이들이 떠들어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 아름답고 지긋지긋한 곳에서 말없이 혼자 앉아 대회에 제출할 번역 분량을 읽을 때면, 아무런 잡념이 없이,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은 채, 그저 책 속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그런 시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책 속의 주인공은 야나라는 체코 카렐대학교의 일본학과 학생이었다. 야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영향으로 나이에 비해 어려운 문학작품을 읽어왔고, 콧대 높은 아싸 중의 아싸로 십 대 시절을 보내다가 일본학과에 진학했다. 그런 야나가 일본학과에 왔을 때,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 서브컬처에 심취한 대부분의 학생들과 동질감을 갖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다가 어떤 일본어 고전 문학을, 거만하고 지식수준이 높은 한 선배의 도움으로 함께 번역하게 되는데, 망신당하지 않고자 하는 사소하지만 굳은 의지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더 높은 수준의 번역과 지식 추구를 하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는 야나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나는 국문과 교수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초등학생 때부터 쓸데없이-물론 그것들을 좋아했현재까지도 꽤 도움이 되는 일이었지만- 당시 나이에 비해 어려운 문학을 접해왔다. 또, 한국과 체코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뒤, 현재 체코어-한국어 번역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야나가 느끼는 감정과 그의 행동에 대해 꽤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애니메이션과를 한국에서 다닐 때에는, 정말 많은 친구들이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말투를 흉내 내고 머리를 탈색하고 물들이며 코스프레하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다. 그런 모습도 한국이 일본문화를 접하던 나름의 시작점이 되는 특수한 과정이고 제한된 속에서의 표현방식이라는 이해는 어쨌든 뒤늦게 생겼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 없었고, 당시 나는 친구들의 그런 문화와 표현에서 스스로 멀어지고자 노력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만난 것이 체코의 애니메이션 작가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작품이었다. 어둠 속의 빛처럼, 아니 어쩌면 빛 속의 한가닥 달콤한 어둠처럼, 이것은 이후 나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만남이었다. 이것은 책 속에서 야나가 카와시타라는 작가를 만났던 것과 정확히 대응하는 사실처럼 느껴졌다.

여러 이유로 나는 책 속의 야나에게 나 자신을 투영했다. 이 책을 번역할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 새로운 운명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번역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앞으로의 계획과 일정

일단 체코에서 7월에 열리는 번역 세미나에 참여하게 된다. 그곳에서 무엇을 얻어올 수 있을지, 기대되기도 하지만, 체코와의 연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니 새삼 놀랍고 조금 두렵기도 하다. 참으로 질긴 인연이다. 서로에게 더 좋은 모습만 새기길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체코의 재미있는 아동문학과 애니메이션 관련 텍스트를 번역해서 출판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내 미래는 당장 알 수 없지만, 소설 속 야나의 여정과 결말이 어땠는지, 한 번 다시 책을 살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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