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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e Kim Oct 16. 2016

멕시코: 똑같지만 '완전' 다른 것들

그곳에서의 끼니

"오늘은 뭘 먹지?"


전날 먹은 것을 생각해봤다. 이러다가는 옥수수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얼척없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한국을 여행하며 매일, 매 끼니에 밥을 먹는 식사가 부담스럽다고 하던 외국인 친구의 토로가 떠올랐다.


그만큼이나, 멕시코의 모든 음식은 옥수수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 옥수수는 콩, 고추, 카카오, 아보카도 등과 함께 기원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멕시코의 토종 작물로, 지금까지도 음식 피라미드의 하위를 절대적으로 지배하며 거의 모든 끼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곡물이다.




옥수수, 그리고 고추라는 주식

옥수수 반죽을 라임 물에 절여 얇게 펴낸 또르띠야(Tortilla) 빵은 멕시코 사람들이 옥수수를 먹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이 얇은 빵은 멕시코에서 먹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요리에 따라 나오는, 우리로 치면 쌀밥 즈음되는 멕시코인들의 주식이라고 할 수 있다.


1. 멕시코인들의 주식 빵, 또르띠야(Tortilla)


그리고 이 옥수수로 만든 또르띠야 빵은 다시 한번 모든 멕시코 음식의 시작이 된다.


이 또르띠야 위에 고기, 치즈, 고수, 채 썰은 양파 등의 고명을 얹으면, 멕시코 음식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타코가 되고, 같은 반죽을 타원형으로 길게 펴내고 고명을 얹은 후 반으로 접으면 께사디아가 된다. 같은 반죽을 이번엔 조금 더 두껍게 펴내고 끝 부분을 둥글게 말아 올려 벽을 세운 후 고명을 얹으면 메메라로 변신하며, 반죽을 피자만 한 크기로 크게 만들어 역시 비슷한 고명을 얹으면 틸라유다로 둔갑(?)하는...  뭐 대충 그런 형국이다.


(또르띠야를 돌돌 말거나 한 입 크기로 잘라서 튀긴 후, 살사 소스를 부어 먹는 칠라낄레스(Chilaquiles)나 플라우따스(Flautas)는 그래도 꽤 다른 모양새이니 언급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2. 타코(Taco), 3. 블루콘으로 만든 께사디야(Quesadilla), 4. 메메라(Memela), 5. 틸라유다(Tlayuda)


점심시간에 줄이 길게 늘어선 또르띠예리아(방안갓처럼 또르띠야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곳. 또르띠야를 무게로 달아 판다.)


그리고 거기에, 사람들이 이 '다양한' 버전의 타코를 먹을 때마다 절대 빠뜨리지 않고 항상 곁들이는 음식이 있다. 바로 고추를 갈아 만든 살사 소스(Salsa: 고추로 만든 걸쭉한 매운 소스)이다. 매운 고추, 달큼한 고추, 스모키한 훈제 고추 등 다양한 종류의 고추를 토마토와 섞어 갈아 만든다.


16세기, 멕시코에 도착해 이곳의 식문화를 지켜보고 난 스페인 역사학자, 바르토로메 데 라스 카사스는 이들의 식문화를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했다.


"그들은 고추를 먹지 않으면, 식사를 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빨갛고 푸른 살사, 훈제 고추 살사, 그것도 아니라면 아보카도를 넣고 간 크리미한 살사. 이 살사 소스 중 하나가 아니라면 갈거나 튀기거나, 그것도 아니면 빻은 가루로라도... 어떤 형식으로든지 고추는 멕시코인들의 식탁에서 빠지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달콤한 망고 샐러드나 바삭한 감자칩을 살 때에도 살사 혹은 고춧가루를 뿌리는 옵션을 고를 수 있으며, 거의 모든 경우에 멕시칸은 YES를 선택한다.


하여 식당의 메뉴판에 적인 요리 이름은 종종 주재료인 고기나 야채의 이름 대신, 그 재료들을 덮은 살사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어떤 고추로 살사 소스를 만들었는지에 따라서, '아르볼 고추로 만든 붉은 살사를 덮은 고기 요리', '초록 살사를 덮은 고기'등으로 요리를 부르는 것이다.


많은 멕시코 향토 음식 레시피들은 늘 특정한 종류의 고추를 사용하라고 명시하며, 그 고추를 찾지 못할 경우에 대신 사용할 수 있는 고추의 조합을 친절하게 일러주기도 한다. 그렇게 멕시코 퀴진에서 고추는 단순하게 요리에 매운맛을 더하는 부수적인 재료가 아니라, 요리의 풍미와 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재료이다.


이렇게나 멕시코인의 사랑을 받는 고추는 당연히 그 종류만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그래서인지 고추의 이름을 붙이는 방식마저도 무척 재미있다. 귀엽게도 멕시코 사람들은 갓 수확한 고추와 건조한 고추, 건조하여 훈제한 고추 등 그 처리 방식, 그리고 심지어 고추의 크기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을 지어 부른다. 예를 들면 멕시코에서 할라페뇨 고추는 아래와 같은 네 가지 다른 이름으로 만날 수 있다.


1. 할라페뇨(Jalapeño): 초록색을 띠는 신선한 할라페뇨

2. 치포틀레(Chipotle): 스모크한 할라페뇨

3. 모라(Mora): 빨갛게 익은 할라페뇨를 스모크한 후 건조한 것

4. 모리타(Morita): 빨갛게 익은 "작은" 할라페뇨를 스모크한 후 건조한 것

집으로 함께 돌아온 고추들 (왼쪽부터 파시야, 치포틀레, 아르볼, 모라, 그리고 모리타 고추)




똑같지만 '완전' 다른 것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음식이 대략 비슷비슷하다느니, 모든 음식에 뒤덮인 매운 살사에 위가 아파온다느니 따위의 솔직한 얘기는 멕시코 친구들에게 결코 해서는 안 된다. 타코 말고 시도해 볼 새로운 멕시코 음식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하는 나에게


"그렇지, 편의점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점심장사만 하는 그 아줌마의 께사디야 먹어봤어? 또르띠야 빵에 쫄깃한 오하카 치즈랑 고기 볶은 게 올라가는 데 정말이지 환상적이야!"


라고 외치는 이 순박한 얼굴에다 대고 그게 그거 아니냐는 소리를 해 (모두가 다 아는) 비밀을 폭로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다 한 번은 멕시칸 친구들과 한국 식당에 갔다. 전에 삼겹살을 먹어 봤다는 같이 간 친구 하나가 식탁에 올려진 굴무침 보쌈을 가리키며 이게 무슨 고기냐고 묻는다. 돼지 뱃살이라 대답하니 이런 소리를 한다.


"아, 그럼 이거 삼겹살이랑 똑같은 거네?"


순간 나도 모르게 손사래를 치며 펄쩍 뛴다.


"에이~ 무슨 소리야. 삼겹살은 돼지고기 뱃살 부위고 보쌈.... 도 같은 부위구나... 그래, 뭐 그렇긴 하지만 삼겹살은 구워서 상추나 배추에 싸서 먹는 거고 보쌈은... "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나는 말했다.


"음... 그러니까 얘들아. 이건 타코랑 케사디아 같은 거야. 비슷하지만... '완전' 다른 거라고!"


모두는 박장대소하며 완벽하게 이해했다. 그리고 나도 그날, 완벽하게 이해했다. 타코와 께사디아, 메메라, 그리고 틸라유다는 정말 '완전' 다른 음식이라는 걸.




* 직접 찍지 않은 사진들의 출처:

1: http://www.seriouseats.com/2016/04/how-to-make-fresh-nixtamalized-corn-tortillas-from-scratch.html

2. http://hdwall.us/food-and-drink/tacos-desktop-hd-wallpaper-129685/ 

3: https://noisydishes.files.wordpress.com/2011/05/2-taco1.jpg 

4: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e/e3/Memelas_Oaxaquenos.jpg 

5. http://www.theflama.com/tlayuda-huge-tostadas-mexican-pizza-16077313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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