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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Oct 18. 2023

Ep.1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10년 지나 돌아보는 첫 직장의 의미

삶의 단계마다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저마다의 방식대로 그 '처음'을 겪고 각자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충분한 시간이 지나야 그 의미를 깨닫기도 한다.


일이 순조롭게 풀렸다. 노력에 비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첫 연수, 첫 부서, 첫 명함, 첫자리, 첫 업무. 첫 직장에서의 모든 '처음'은 설렘이 가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설렘은 사라졌다. 직장인이 되었다는 게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인턴 경험도 없이 신입사원이 되어서 그런 걸까. 낯선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이 예민해진 걸까.


사회인으로서 내 몫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그저 운이 좋아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닐지 하는 자기 의심.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복잡한 감정이 자라고 있었다.





대학생 시절, 어디에도 제대로 뛰어들지 않고 취업에 대한 고민만 가득했다. 주변 친구, 선후배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야 할 것만 같았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암울했고, 소위 능력에 따라 사람의 쓰임이 달라진다는 신자유주의 풍조가 거세지고 있었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직하거나 전문직이 되는 게 가장 올바른 길인 듯한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에 나 또한 휩쓸렸다. 졸업반이 되기 전에는 행정고시도 준비해 보고 공인회계사 공부를 해보기도 했다. 전혀 원하지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길이었다. 취업에 불리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기에,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불안감이 커졌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마음 속에는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스포츠 관련 일을 해보거나 작가, 기자, PD처럼 글을 쓰거나 창작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스포츠 마케팅 동아리 활동도 해보고, 나이키나 NBA처럼 좋아하는 스포츠 관련 회사 인턴 모집에 지원해보기도 했다.


내 길을 갈 용기와 능력은 없었기에 고민하는 상태가 오히려 가장 편안했다. 열망만 가득했고 마땅히 따라와야 할 노력과 용기는 부족했다.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믿었지만, 능력을 증명하는 일은 두려웠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싶지 않았다.


결국, 대학교 내내 뭐 하나 확실하게 해보지 못했다. 어디에 자랑할 만한 스펙 하나 없이 졸업반이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성숙하지 못한 치기로 느껴졌다. 어디선가 나를 뽑아주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며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야 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회사 중 괜찮은 곳을 골라 무작정 지원했다. 그 회사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장기적으로 어떤 커리어를 만들 수 있는지, 내 역량과 기질에 맞는 곳인지 등 진정 중요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래 걸리지 않아 한 회사에 합격하였다. 어릴 때부터 동경한 국제 스포츠 업무를 담당하는 공기업이었다. 지원한 많은 회사 중 유일하게 가슴 뛰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다른 기업들 입사 전형이 한창 진행 중인 10월에 결과가 나왔다. 고민해 볼 시간도 마음도 없었다. 합격 발표 후 4일 뒤 출근해야 했고, 더 가고 싶은 회사도 없었다.


내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생각, 더 이상 취업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남들처럼 평범하게 회사원이 되어 살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무책임한 결정의 무게를 알지 못했다. 많은 세상 일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점도 알지 못했다. 내 세계는 좁고 작았다.


첫 직장 생활이 어떤 의미로 남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삶의 처음은 알 수 없는 복잡한 의미였다.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내 인생 이야기에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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