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체조 시~작! 팔운동! 헛둘셋넷!”
오늘도 아침 공기를 깨우는 남편의 활기찬 구령 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운다. 남편은 매일 나에게도 일찍 일어나 체조를 하자며 권유하지만, 아침잠이 꿀처럼 달콤한 나는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체조를 끝낸 남편은 상큼한 사과와 삶은 계란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밖으로 나가 온천천을 30~40분 산책한 후 내가 출근 준비를 마칠 때쯤 집으로 돌아온다. 엘리베이터까지 따라 나와 “오늘도 화이팅!” 외치며 나를 격려해주는 남편. 나도 “자기도 화이팅!”으로 답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일과를 마치고, 남편의 다음 일정은 주식 공부다. TV 주식 채널을 틀어 놓고 컴퓨터 2대로 시황을 분석하며 휴대폰으로 주식 강의를 듣는다. 가끔 출근하지 않는 날 힐끗 보면 마치 주식 전문가 같은 모습이다. 점심에는 건강식으로 한상 차려먹고, 오후가 되면 다시 주식 화면에 몰두한다. TV, 데스크탑, 노트북, 핸드폰을 총동원한 4중방송이 시작되며 남편의 주식공부 2부가 시작되는 것이다. 유료 주식 강의까지 들으며 전문가가 되려 노력하지만, 현재 계좌는 마이너스 30%, 1800만 원 손실이다.
“똑바로 하는 거 맞아?” 내가 물으면, 그는 웃으며 “요즘 시황이 안 좋다. 쪼매만 기다려봐.”라고 말한다. "진짜 고수라면 시황이 안 좋을 때 돈 버는 거 아닌가?"라고 핀잔을 준다. 이론은 해박하지만 고수가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주식 시장이 마감되면 남편은 근처 산으로 산행을 하거나 골프 연습에 나선다. 돌아오는 길엔 장터에 들러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우고, 청소나 빨래 같은 집안일도 한다. 내가 퇴근할 때 쯤이면 된장찌개에 솥밥까지 차려놓고 기다린다. 중간중간 도서관에 가서 내가 요청한 책도 빌려와야 하고 세탁소도 다녀와야한다. 장모님이 부르면 또 언제든 달려가야 하는 남편. 그의 백수 일과는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
어느 날은 베란다에 음식 쓰레기를 펼쳐놓았다. “이게 뭐야? 냄새 나게!” 내가 말하자, 남편은 “음식 쓰레기 무게 줄이면 돈이 아껴진다잖아! 말려서 버리면 경비 절약이 된다고.”라며 식품 건조기까지 마련해 진지하게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처음 관리비 고지서를 본 남편은 우리 집 음식 쓰레기 비용이 고작 2000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쓰레기 말리기는 포기했다. 그저 500원을 아끼자고 베란다를 음식쓰레기 냄새로 채울 수는 없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며 남편과 고양이 똘이는 절친이 되었다. 이전에는 고양이가 다가오면 질색하던 남편이었지만, 이제는 하루 종일 “똘아~ 어디 있니?” 하며 고양이를 찾는다. 이제 고양이도 귀찮은지 남편이 부르면 구석에 몸을 숨기지만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양이를 위해 정성을 쏟는다.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박스를 가져와 글루건으로 고정하며 고양이 스크래처를 직접 만들기까지 했다. 작고 불편한 첫 작품에 아쉬워하며 다시 큰 박스로 제작을 시작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똘이를 위한 그의 진심이 애틋하게 느껴진다. 땀을 뻘뻘 흘리며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있는 남편. "고양이 수제 스크레쳐 만들기 사업해보까" 제법 진지한 눈빛이다. 새 스크레처를 선물로 받으면 똘이도 백수 남편이랑 좀 놀아줄라나
남편의 꿈은 백수였다. 그 꿈을 이룬 것은 지난 4월, 대기업과 외국계, 중소기업을 오가며 네 번이나 이직하고, 직장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30년간 쉼 없이 달려왔다. 요즘 꿈을 이루고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하다. 드디어 고용보험도 받게 되었다며 기대가 크다.
30년 동안 우리는 주말부부였다. 남편은 주말마다 손님처럼 집에 와 "밥 차리라. 청소 좀 해라"며 시키곤 했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을 돌보며, 부모님을 모시는 일도 모두 내 차지였다. 30년 만에 같이 살게 되었지만, 백수 남편이라니. 직장에 다니며 가장이 된 나는 놀고먹는 남편에게 심통이 난다. 하지만 요즘 퇴근 후 솔솔 풍기는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가 나쁘지만은 않다.
30년간 고생한 남편이기에, 당분간 그가 꿈꿔온 백수 생활의 행복을 충분히 누리도록 지켜봐 주기로 했다.
오늘도 나는 그의 손길이 닿은 집 안에서 피곤한 하루를 마무리하며 다짐한다. “그래, 남편의 행복을 지켜주자. 당신도 오늘 하루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