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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Nov 12. 2024

창의력 폭발 남편의 창작혼

남편은 타고난 부지런함과 창의력으로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설 때마다 뭔가 새로운 시도가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가 된다. 거기다 꿈에도 그리던 백수가 되어 시간까지 많아지고 나니 매일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다.


도마 위의 예술 혼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자 남편이 자랑스럽게 도마를 들어 보였다. "이거 봐! 도마가 너무 밋밋하길래 내가 그림을 좀 넣어봤어." 알고 보니 인두를 들고 도마에 직접 그림을 새긴 것이다.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뭔가 형체가 보이는 듯도 하다. 도마에 있는 나무옹이가 물고기의 눈처럼 보였고, 남편은 그걸 중심으로 물고기 그림을 그린 것이다. 옆에는 나방인지 나비인지 알 수 없는 형체도 같이 있다. 물고기와 나방이라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멋지지?"라고 묻는 남편에게 나는 멋쩍게 웃으며 "어... 그래, 물고기구나..."라고 대답했다. 비록 작품 자체는 서툴렀지만, 그 열정과 정성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해 종일 예술혼을 불태웠을 생각을 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남편은 도마를 사용할 때마다 예술 작품에다 요리를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고 한다.


실패로 끝난 곶감 대작전

약 한 달 전, 남편은 시골에서 감을 다섯 자루나 땄다. 세 자루는 친정엄마께 드리고, 남은 두 자루는 직접 곶감을 만들겠다며 집으로 가져왔다. 시간 많고 부지런한 남편은 다음 날부터 ‘곶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남편은 무려 3일 동안 감 껍질을 하나하나 벗겼고, 이를 실에 매달아 베란다에 걸어두었다. 실에 하나하나 매달기가 힘들자 곶감건조 꽂이까지 구입했다. 마르라고 선풍기도 하루 종일 틀어두며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며칠 지나자 문제 발생. 동향 베란다라 햇볕이 잘 들지 않았고, 감은 말라가기는커녕 홍시가 되어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종일 선풍기를 틀었지만 20도가 넘어가는 10월의 날씨에 감은 마르기보다 점점 익어갔던 것이다. 바닥에 철푸덕 떨어진 감은 보통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떨어진 감은 매번 치우지 않으면 얼룩이 남고 썩어 들어갔다. 고양이 배변통이 베란다에 있다 보니 떨어진 감을 고양이가 밟고 거실로 들어오기도 했다. 겨우 마른 감도 흰 곰팡이가 아니라 검은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결국 남편의 ‘곶감 만들기’ 프로젝트는 물거품이 되었다. 감 2자루를 집까지 들어 올리고 하나하나 껍질 벗기고 매달아 말리고 홍시로 만들어 버리고 베란다 청소하고 곰팡이 피워서 버리고 백수 시간 보내기 참 좋은 일이었다. 곶감은 하나도 맛보지 못했지만 덕분에 일주일간 무척 바쁜 남편을 보았다


고양이 친구, 수제 스크래처 선물

남편은 고양이 ‘똘이’와도 단짝이 되었다. "똘아, 어디 있니?" 하루에도 수십 번 고양이를 부르는 남편은, 급기야 똘이를 위해 스크래쳐 두 개를 손수 만들었다. 스크레쳐를 만드는 과정이 보통 정성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재활용 박스를 구해와 그 안을 박스를 길게 잘라 돌돌 말아 실리콘으로 붙여서 하나하나 채우는 것이다. 박스를 채우기 위해서는 수학적 사고도 들어가야 하고 미적감각도 필요하다. 고양이 발톱에 쉽게 부서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고 인간이 보기에도 괜찮은 정도가 되어야 한다. 2개째 성공적으로 완성한 남편은 수제 스크레쳐 사업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건강을 위한 고춧잎 차 만들기

어느 날, 남편은 나에게 숏츠 영상을 하나 보내왔다. 내용은 당뇨에 좋은 고춧잎으로 차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남편은 주말 아침 7시에 나를 깨웠다. 당장 고춧잎차를 만들어야 한다며 고춧잎을 따러 거제도까지 가자고 하길래 졸린 눈을 비비며 따라나섰다. 고춧잎을 한 자루 따온 뒤 남편은 이를 깨끗하게 씻고 우전녹차를 만들 듯 덖어내고 말리고 손으로 비비고를 9번이나 반복한 후에 정성스럽게 고춧잎차를 완성했다. "이거 마셔봐, 당뇨에도 좋고 관절에도 좋고 만병통치약이야!" 그가 건네준 고춧잎차는 쌉싸름하니 고춧잎 삶은 물 맛이다. 남편의 열정이 담긴 작품이라 한 잔 마셔주었다. "그래 몸에 좋은 거니까 당신 많이 먹어" 나머지는 남편에게 양보했다


남편의 창의력, 어디까지 갈까?

혈액형이 AB형인 남편은 그야말로 기발함이 넘친다. 부지런함과 넘치는 시간이 결합되어 그의 창의력은 날마다 새롭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또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를 놀래켜줄까 기대가 된다. 그의 도전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새로운 아이디어와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응원한다.  오늘도 아침부터 부산하게 뭔가를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뭐든 건강에 좋은 것, 맛있는 것을 만든다면 모두 남편에게 양보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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