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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영 Aug 07. 2018

아무것도 시키지 않은 것이 가장 특별한 교육인 곳.

숲유치원

나와 나의 남편은 지극하게 평범한 대한민국 주입식 교육의 산물들이다.

그래서일까..? 창의적인 사고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소심한 도전에도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그저 평범한 작은 가슴의 소유자들이다. 남들 다하는 공부를 했고, 남들이 흔히 하는 일들을 했고, 남들과 비슷하게 결혼을 해서, 집을 사고 대출을 갚느라  애쓰고 있는 정말 튀지 않는 인생의 모습을 가진 우리.

그런 우리 부부가 평범하지 않은, 조금 특이한 혹은 특별한 취급을 받게 된 것은 우리가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물론 처음부터 투철한 도전정신이나 특별한 교육관에 불타서 새로운 교육만을 알아보고 꿈꾼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노는 것을 좋아했고, 공부를 일찍 시키지는 말자 라는 생각에서 '산에서 노는 유치원'에 혹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4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두고서는 조금 더 놀리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 한편 우습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 4살이면 한글을 시작하고, 5살이면 영어교육을 시작해서 초등학교 입학 즈음에는 나도 어려운 영어 원서를 술술 읽어대는 시대이니 유아기에 놀리기만 한다는 사고는 요즘 스타일의 교육에서는 이미 뒤처지는 셈이다.


청계산 숲자람터.

큰 아이가 처음 다니던 시절에는 청계산 숲학교가 그 이름이었다. 산에서 굴러다니는 나무판에 아이들이 크레파스로 써서 걸은 이정표. 청계산 숲학교. 이름도 이정표도 자연스럽고 꾸밈없는데 어쩐지 더 세련되게 느껴졌다. 울퉁불퉁 흙길을 올라 만난 그곳의 환경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라 만족스러우면서도 동시에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산에 있는 넓은 유치원 정도를 예상하면서 간 그곳은 어떤 모습을 갖춘 기관이 아니라 말하자면 그냥 산이었다. 만약을 대비하여 아이들에게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비닐하우스 한 채와 대피소라고 불리는 작은 나무 오두막이 있을 뿐이었다.

그럼 비가 오면 하루 종일 저 하우스 안에서 생활하나요?

아니요, 저긴 그냥 하우스예요. 본인이 실내 활동을 원하면 들어갈 수는 있죠. 하지만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대부분의 아이는 밖에서 놀아요.

그럼 우산 쓰고요? 비옷을 입고요?

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만 강요하지는 않아요. 아이들은 다 스스로 알아서 하게 되어있어요.

네...............

내가 첫 방문한 그날도 부슬부슬 비가 내렸는데, 상담을 하는 도중 아이들이 놀이 중간에 들어왔다. 젖어서 갈아입으려고 왔다면서 6살 정도의 아이가 자기도 갈아입고, 조금 더 작아 보이는 동생의 옷도 갈아입히더니 본인 소지품을 정리해서 가방에 넣고는 다시 나간다.

흙땅도 개울도 비도 바람도 그대로 누리면서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었지만, 사실 고민되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우선 모두들 이곳을 처음 오면 느끼는 안전문제, 위생문제 그리고 학습적인 문제 등이 있겠다. 어떤 방법이나 대책을 갖고 있을 거라는 나와 같은 기대를 한다면 대답은 '없다'에 가깝다. 아이들이 원래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습대로 그릇을 완성해 간다는 것, 아이들은 생각보다 뛰어난 존재기에 알아서 한다는 것이 원장님의 생각이시다.  그렇다고 관리를 해주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어느 유치원보다도 많은 선생님들이 안전상의 이유로 사방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며 함께 생활하신다. 얼핏 보면 아이들이 아닌 선생님들도 함께 놀고 계시는 듯 보일 정도 아이들의 놀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신다. 아마도 즐기시는 부분도 있을  거라 생각해 본다. 

나는 여러 문제들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조금은 4차원적인 자유로움을 갖고 있는 우리 딸에게 어울린다고 판단했고, 본인 역시도 강하게 매력을 느끼는 듯하여 숲학교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숲 교육을 시작한 이때, 나의 나의 아이들은 달라졌다고 자신 있게 얘기한다. 아니.....내가 아이들을 다르게 보기 사작했다고.


막상 발을 들여놓고 보니, 안전. 위생문제들은 뒷전이 되었다. 산에서 뒹굴며 논 친구들 사이에 끼어 산사람이 되기가 가장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생활에  최대한 개입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의 방법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도록 두는 것이 원장님의 원칙이기 때문에 엄마가 보기에 속상한 일들이 생겨도 어찌 손쓸 방법이 없다. 그래서 난 한 달 넘게 늦은 밤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어찌나 그 생각만 했는지, 지겨워진 남편이 그러면 관두면 되지 않겠냐고 여러 차례 얘기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만두지 않은 것은 순전히 어린 우리 딸의 의견이었다. 친구 문제로 속상해하고 눈물짓기도 하며 힘들어하면서도 그만두자고 하면 본인은 여기가 좋다는 것이다. 힘들어도 본인이 좋다는데 굳이 엄마인 내가 나서서 너는 안된다고, 힘들다고 하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자람터에 남게 되었다. 그 당시 걱정이 많았던 나는 자주 청계산을 방문하곤 했었는데, 사실 우리 딸이 하는 놀이는 하루 종일 땅을 파는 것 밖에 없었다. 어제도 파고, 오늘도 파고, 덮었다가 다시 파기도 하고, 여기도 파고, 저기도 파고... 아마도 두 달 정도는 땅만 쳐다보고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나름의 방법으로 아이들 속에 적응해 나갔고, 나는 내가 없어도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사실에 엄마로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는 나의 아이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나도 아이도 마음이 튼튼해지기 시작했다.


또 다른 중요한 변화를 꼽자면, 건강이다. 흙 파던 손으로 옥수수를 먹기도 하고, 뛰어가다 멈춰서 친구들이 발 담그고 놀고 있는 개울의 물을 떠마시고 하고, 식사 시간이라고 손 닦고 오라고 외쳐도 아이들은 개울물에 손을 담궜다 가서 밥을 먹기도 했다. 손 소독제를 사방에 비치하고, 몇 명만 병에 걸려도 휴원을 하고, 날씨가 조금 나쁘면 바로 외출활동을 취소하는 요즘 보통의 유아시설을 생각하면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현미밥에 나물들로 구성된 식단은 결코 아이들 취향이 아니다. 그래도 하루 종일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아이들은 배가 고파서인지 어른들이나 먹을 만한 식사도 맛있게 먹치운다. 하지만, 놀이학교를 다니던 우리 아이의 건강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원래도 특별한 병이 있거나, 몸이 대단히 약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관 생활을 시작하고 나니 수시로 감기에 걸리고, 약을 먹고 있어도 중이염으로 발전해 항생제를 먹어야 하는 상황은 정말 자주 발생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찬바람을 하루 종일 맞으며 흙을 주워 먹고, 겨울 한파주의보에 가벼운 동상이 오도록 밖에서 놀아도 신기하게도 감기 한 번 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야외 활동을 주로 해서 그런지 아픈 친구가 있어도 전염되는 일도 거의 없었다. 너무 자주 오는 중이염으로 청각 이상 가능성까지 들었던 우리 딸은 산으로 들어가고 나서 12살이 된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중이염도 걸리지 않았다. 물론 초등학교를 가기 위해 하산한 뒤로는 유치원 때는 없었던 이런저런 가벼운 질병에 시달리고는 있다.  


소위 이야기하는 일반적인 교육에서 발을 빼고 나니 나는 점점 감을 상실해가기 시작했다. 마치 혼자 시계가 멈춘 듯이 오로지 아이들이 노는 것에만 집중했고, 유치원에 가서도 비슷한 교육관을 가진 엄마들이 뭉치다 보니 우린 폐쇄적으로 공부를 하면 큰일 나는 냥 아이들을 키우게 되었다. 그리고 공부 때문에 아이들이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오히려 아이들의 능력을 죽인다며 호통을 치시는 원장님 때문에 나름 사교육이라고 좀 하는 엄마들도 원에서는 비밀로 하는 특이한 문화에 젖어들었다. 큰 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까지 보내니 난 너무 오래 세상과 단절되어 살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아이들을 백지상태에서 놀리기만 하니, 나의 기대라는 것을 빼고 아이 생긴 그대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숲자람터라는 곳도 사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욕심에서 시작한 곳이기 때문에  공부를 시키지 않고 내버려둔다고 해서 객관적으로 우리 아이를 평가할 수 있다며 자만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최소한 아이를 순수하게 놀려보기 이전에 일반적인 학습을 시작했더라면 놓쳤을 부분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 모습은 기대 이상인 것도 있고,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다. 최소한 내가 기대하고 원하는 모습에 더욱 중점을 두고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조금은 인정하게 된다.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육아에 있어서 상당히 겸손해진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 작은 깨달음이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지고 왔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제 초등학교 5학되는 우리 아이는 전혀 문제없이, 어려움 없이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해나가고 있다.


100 세 시대인 요즘. 우리는 학교에 입학하고 학생이 되면서 좋든 싫든 공부를 해야 하고, 어른이 되면서 소위 먹고살아야 하는 기본적이지만 엄청난 부담을 안고 죽을 때까지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인생은 길고도 짧다. 지나고 보면 순간이지만, 상당한 기간을 스트레스를 이겨내며 살아가야 한다. 그런 삶 속에서 3,4 년 길어봐야 5 년의 자연 속 자유로운 생활에 대한 투자는 아이들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는 커다란 즐거움인 동시에, 앞으로의 시간에 만나게 될 다양하고 예측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자신들만의 방법을 찾고 어떻게 스트레스 이겨나갈지를 몸으로 터득하게 되는 과정이 되리라 생각한다.


나는 두 아이를 숲유치원에 보내면서, 6 년 동안이나 청계산을 오르내렸다. 6 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도 얼마나 자연환경이 변하였는지 눈으로 확인하면 놀랍다. 매체들을 통해서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등 문제들에 대해 접해도 사실 그런 문제들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어쩌다 한 번 놀이로 방문한 산에서는 그런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 나의 아이들은 그간의 시간 동안 얼마나 자연이 몸살을 앓고 있는지 보고 느끼고 있다. 여기 숲자람터에서는 콧물이 찔찔 나는 어린아이들도 민감하게 자연의 변화를 얘기하고,  친구들끼리 환경오염을 운운하기도 한다. 유치원을 다니며 남다른 즐거움을 누려보고, 책에서 보는 지식들의 일부를 직접 느낄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던 숲유치원. 나의 아이들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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