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고릴라> 저자의 신작 <당신이 속는 이유>
<당신이 속는 이유> 제목부터 시선을 확 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로 유명한 인지심리학자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의 신작이다.
결론에 나와있듯 이 책은 모든 형태의 사기를 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말하는 책은 아니다. 그런 책 자체가 사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기를 더 잘 파악하려고 할수록 사기꾼들은 군비경쟁하듯 더욱 교묘한 사기 기술을 계발한다. 그리고 들통나지 않은 유형의 사기는 영원히 그 수법을 알 수 없을지 모른다.) 저자들은 우리에게 거의 디폴트 값처럼 주어지는, 대개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나 한계가 있는 인지적 특성을 중심으로 우리가 사기에 빠지는 패턴을 분석하고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간략하게나마 안내한다. (책 한 권으로 '무엇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주겠다'라고 할 때 좋게 봐야 과장 광고이고 이를 확신에 차서 주장한다면 그러한 주장은 무지의 증거이거나 사기, 혹은 둘 다이다.)
목차가 예쁘게 잘 뽑혀 있다. 파트 원에서는 우리의 인지적 습관을 중심으로 우리가 어떠한 행동을 할 때 속기 쉬운지 경고한다. (이 책에서 절박함이나 소속감의 욕구, 친화적 성향과 같은 동기나 감정, 성격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인지적 특성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파트 투에서는 사기에서 주로 보이는 속성을 분석한 후, 이를 마음의 사탕과 같은 역할을 하는 '후크'라고 명명했고 이것들이 나타나면 주의하라고 말한다.
우리 뇌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가능한 한 인지적 지름길을 찾으려고 한다. 아울러 협력의 동물인 인간은 상호작용할 때 기본적으로 정직과 신뢰를 가정한다. 이러한 특성은 대개 적응적이다. 경험에 근거해서 적당히 예측하고 판단하기보다 모든 경우의 수를 매번 헤아린다면(안 그래도 뇌가 신체 에너지의 20%를 쓴다), 모든 에너지를 고갈시켜 버린 채 마비되었을 것이다. 일단 상대방을 불신하고 본다면 사소한 말과 행동의 진위까지 따지느라 인지적 과부하가 걸리는 것은 물론, 소통하고 협력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으며 지금만큼 지구에서 번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지적 구두쇠이고 진실 편향이(truth bias) 있는 바람에 우리는 사기꾼들에게 이용당하기도 쉽다. 특히나 자신의 직관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고 분석적인 사고 훈련이 안 되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전문가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 작고한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의 사례는 이를 여실히 말해준다. (앞으로 파트 2의 <작은 원인이 큰 결과를 부른다는 '효능' >편의 내용을 중심으로 다룬다.)
인지심리학에서 점화 효과(priming effect)는 잘 확립된 현상으로, 한 단어나 이미지를 본 다음 동일하거나 관련된 단어나 이미지를 보면 이를 처리하는 능력이 약간 향상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다만 연관성이 떨어지거나 개념적 비약이 크면 점화 효과는 약해진다. 그런데 이렇게 의미적 연관성이 높은 개념이 점화되어 빨리 처리하게 되는 수준을 넘어서, 나비의 날갯짓이 수천 마일 밖에서 토네이도를 발생시키듯 작고 미묘한 변화가 행동과 생각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은유적 점화 효과 혹은 관념운동 효과)을 시사하는 연구들이 발표되었다. 카너먼은 베스트셀러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에서 이와 관련된 연구를 소개한다.
가장 유명한 실험은 존 바그의 일명 '플로리다 효과' 실험이다. 대학생들에게 일련의 단어들로 문장을 만들게 했는데, 일부 참가자에게 주어진 단어 세트의 절반에는 '주름', '잘 잊는', '플로리다'와 같은 노인과 관련된 단어들이 포함되었다. 그 결과 어땠을까? 노인과 관련된 단어에 노출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하여 엘리베이터까지 약 10미터의 거리를 걷는 데 1초가 더 걸렸다고 한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노인과 연관된 개념이 '점화'되어 무의식적으로 노인처럼 더 천천히 걷게 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원래라면 노인 관련 개념을 더 빠르게 알아차리는 정도의 점화 효과만 예상할 수 있었을 테지만, 얼마 후 다른 장소에서 부지불식간에 노인처럼 느리게 걷도록 '행동'의 변화까지 나타났다고 주장한 것이다.
카너먼은 은유적 점화가 얼마나 다양한 경우에 나타나는지를 강조하기 위하여 그 외에도 교실과 사물함 사진만 보여줘도 학교 지원안에 찬성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결과가 나온 연구(심지어 이 사진의 효과로 나타난 차이는 놀랍게도 학부모와 학부모가 아닌 사람 사이의 차이보다도 크다고 말한다), 돈을 연상케 하는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이 더 독립적으로, 더 개인주의적으로, 더 나아가 더욱 이기적으로 행동함을 시사하는 연구, 누구나 죽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면 권위주의적 사고에 더 끌린다는 연구, 동료의 등에 칼을 꽂는 상상만으로도 다른 것보다 비누, 살균제, 세제를 살 확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연구와 휴게실에 눈 그림을 걸어두면 공용 커피 머신 사용자들이 더 양심적으로 비용을 지불한다는 연구 등도 소개했다.
이렇듯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의 미묘한 환경 조작이 우리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행동과 결정에 대한 우리의 통제력은 훨씬 작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에 가히 충격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카너먼은 이 증거가 얼마나 강력한지 확신에 차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집중해야 할 점은 불신은 선택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결과는 만들어낸 것도, 통계적 우연도 아니다. 이런 연구의 주된 결론이 사실임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결론들이 당신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당신이 속는 이유>에서 발췌)."
보다 생생하게 카너먼의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에 나온 내용을 옮겨 본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재현, 즉 다른 연구자들에 의한 실험 연구에서 반복 입증되지 못했다. 이렇게 강력한 영향이 있는 효과라면 여러 연구를 통해 쉽게 재현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바그 그룹의 비교적 최근 연구(2008년도), 즉 따뜻한 것을 들고 있으면 따뜻함 개념이 점화되면서 다른 사람을 '더 따뜻하다'라고 판단한다는 아이디어 역시 재현되지 못했다. 2011년부터 독립 연구소에서 수행한 재현 연구들에서 노화와 관련된 문장을 만든 뒤라도 천천히 걷지 않고, 손 씻는다고 해서 도덕적 판단 기준이 완화되지 않으며, 십계명을 외우게 하는 것이 사람을 더 정직하게 만들지 않고, 깜빡이는 화면으로 돈의 이미지를 보여준다고 사람들이 더 이기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사실 나도 이 주제가 흥미로워서 아주 오래전, 학부 연구주제로 돈의 점화 효과 관련 실험 연구를 진행한 바가 있다.)
결국 6년 뒤 카너먼은 다음과 같이 시인했다. "저는 제가 인용한 놀랍고 명쾌한 연구 결과를 지나치게 신뢰한 나머지 마땅한 지식을 모두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점화 연구의 통계적 효과 크기가) 내 책에서 이야기한 것만큼 크고 강력하지 않다. 기억에 남는 결과라고 해서 증거가 부족한 연구를 자기주장의 근거로 삼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카너먼은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하나 사실 수십 년 전 소규모 연구 결과를 믿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유명한 논문을 쓰기도 했던 사람으로서, 이러한 석학조차 점화 효과의 효능에 현혹되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한편, 이 정도의 학계 거물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기에 인정하는 행위 그 자체는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참고로, 네덜란드의 저명한 심리학자 디데릭 스타펠은 <사이언스>에 지저분한 기차역을 지나거나 쓰레기가 어질러진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인종 차별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은유적 점화 실험으로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나중에 밝혀진 것은 그가 실험을 전혀 수행하지 않고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주행거리를 적기 전에 "제공하는 정보가 사실임을 증명함"이라는 문구에 먼저 서명한 사람들이 주행거리를 10퍼센트 더 길게 보고했다, 즉 정직하게 반응했다던 연구 역시 데이터가 9년 후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보험사 측에서 데이터를 받아 분석한 것일 뿐이라고 시인하며 결국 연구 결과를 연구진 모두 공식적으로 철회하였는데, 이 연구를 이끈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상식 밖의 경제학>, <댄 애리얼리의 부의 감각>라는 저서로 알려졌고, 부정, 부조리 돈에 대한 여러 베스트셀러를 쓴 듀크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댄 애리얼리이다. 십계명 점화 효과 연구도 댄 애리얼리의 연구이다. 그는 저자들과도 꽤 교류가 있던 학자이기도 하다. (학부생 때 <상식 밖의 경제학>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참 씁쓸하다.)
안타깝게도 은유적 점화 효과는 여전히 여기저기에서 잘못 인용되고 있다. "연구 결과가 발표된 초기에 뉴스 헤드라인, 인기 도서, TED 강연이 이를 다루면, 과학자들이 그 한계를 파악하고 난 후에도 광범위한 믿음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의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애도가 특정한 순서로 어떤 감정의 단계를 밟는다고 보는 애도의 5단계 모형이다. 얼마 전에 읽은 과학자의 최신 저서에서도 나와 깜짝 놀라기도 했다. 관련 내용은 https://blog.naver.com/withyoupsy/223279515032 을 참고 바란다.) 카너먼의 경우 철회 의사를 <생각에 관한 생각>이 나온 이후인 2017년 2월에야 밝혔다. 그 이후 책은 개정되지 않았고,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의 고전으로 이 책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은유적 점화 효과가 널리 받아들여진 데에는 저자들이 말하듯 작은 원인이 큰 결과를 부른다는 '효능'을 믿고 싶은 우리 마음이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흔한 예는 기적의 치료법과 관련된다. 이것만 먹으면, 병이 치료되고 살이 빠지고 건강해지고 피부가 좋아지고 장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변형된 버전은 얼마든지 있다. 소위 '성공팔이'가 말하는 유의 내용들도 대개 이런 식이다. 이것만 알면, 이것만 정복하면, 이것만 되뇌면......
상황이 좀 더 복잡해지는 지점은 실제로 작은 원인이 큰 효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긴 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백신과 항생제가 그렇다. 이 책에서 '친숙함' 후크에서 소개된 연구들도 비슷한 결인데, 이름을 한 번만 읽어도 나중에 다시 읽을 때 유명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현상[가짜 명성(false fame) 효과]과 어떤 것을 단 한 번 듣거나 읽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다시 접했을 때 진실이라고 믿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상[착각적 진실(illusory truth]에 관한 연구도 작은 변화가 큰 결과를 가져온다는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런 것들은 예외일 뿐이며, 복잡한 문제는 해결이 가능하다고 해도 다중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실제로 주장하는 것만큼 효과가 강력하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정말 그들이 말한 대로만 해서 성공할 수 있다면(대개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너무 많은 사람이 성공해 버릴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성공 자체가 무의미해지지 않을까? (여기에 대해서 또 성공팔이는 교묘하게 비틀기도 하지만, 그냥 한 마디로 다 뻥이다.) 오히려 비책이 존재하는 케이스가 매우 드문 경우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비책을 주장한다면 이를 가장 강력한 수준의 증거를 요구해야 하는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결과만 놓고 보면 왜 이러한 어리석은 주장에 속아 넘어가는지 의아할 수 있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속임수에 면역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책에서 저자들이 우리가 속는 이유로 인지적 습관과 관련한 4가지, 후크와 관련한 4가지, 총 8가지로 분류해 기술했다. 그러나 거칠게 말하면, 우리가 자주 속는 이유는 '우리 두뇌가 경제성을 추구하는 특성'과 '협력을 진화시켜 온 존재로서 보이는 특성'이라는 두 가지 특성이 각각, 혹은 상호작용하여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 파트에서 다루는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해 보겠다. 아래 내용을 읽어 보고 관심 있는 사람들은 책을 꼭 일독하면 좋겠다. (이런 책이 널리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심 있는 것에만 '집중'할 때>는 우리가 보이는 것만 보는 경향을 말한다. 눈에 두드러지지 않는 안 보이는 것까지 따지는 일은 인지적 부하를 가중시키는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우리는 점쟁이들이 무언가를 맞히면 영험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 사실에만 주목하면 우리는 엄청난 사실을 놓치는 것이다. 점쟁이들이 예측하지 못한 중대한 사건들이 정말 정말 많다는 점 말이다!
저자들은 보이는 것만 보는 경향을 조절하려면, "가능성 grid"를 이용하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약을 먹으면, 백신을 맞으면 부작용을 겪을까 봐 우려하여 약을 먹지 않거나 백신을 맞지 않는 선택을 한다. 우리는 어떤 사태가 발생하는 것에만 주목을 하지 예방을 통해 어떤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좀처럼 생각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자살 예방이든 무슨 예방이든 간에 예방 사업에 예산이 덜 투입되는 것이다.) 그러나 (백신을 맞는다, 백신을 맞지 않는다)*(병에 걸리지 않는다, 병에 걸린다)라는 가능성 grid를 그린 후 특히나 놓치기 쉬운 백신을 맞지 않아 병에 걸릴 가능성(2행 2열)까지 꼭 따져 봐야 한다.
인간을 예측 기계라고도 부른다. 우리가 자극에 단지 반응한다고 생각하지만 예측이라는 계산이 들어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물건을 인식하거나 앞에 있는 대상을 피해 돌아가는 과정 모두 예측이 개입된다. 모든 경우의 수를 따지기 보다 경험에 근거해서 몇 가지 예측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예측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확증 편향'을 빈번히 낳는다. (참고로, 확증 편향 개념을 안 다고 해서 확증 편향에 덜 취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확증 편향일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점화 효과 연구가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진 것은 나비 효과를 믿는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봤기 때문일 수 있다.
이에 대한 해독제는 스스로에게 "이것이 내가 예측했던 것이었나?"라고 질문하고 내 기대에 일치하면 '더 많이 확인해야 하는 신호'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우리는 예측과 어긋날 때 오히려 증거를 더 면밀히 보는 경향이 있다. 이에 동료를 끌어들여 오류를 잡아내는 '레드 팀'을 구성하는 것도 좋은 적대적 협력 방법이다.
<강한 신념에 '전념'할 때>는 <'예측'한 일이 벌어질 때>와 좀 비슷한데, 더 심각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신념에 전념하면 더 이상 어떤 주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필요를 못 느끼며 이에 반증하는 정보가 제시되어도 받아들이기 저항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에 대해서는 모든 사실과 믿음을 어느 정도 잠정적 가설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내가 가정하는 것은?"은 좋은 질문이다. 선택맹 실험은 신념이 생각보다 얼마나 바뀌기 쉬운지 보여주기도 한다. 한 실험에서 원래 매력적인 얼굴이라고 평가했던 사진을 바꿔치기했다. 그런데 피험자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왜 그 얼굴을 자신이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는지 이유를 열심히 설명했다. 심지어 자신이 애초에 탈락시켰던 얼굴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낀 이유까지 주장하기도 했다. 이걸 '신념'이라고까지 말하는 것은 비약일 수 있지만, 처음에는 개인에게 중대한 의미를 지니지 않았던 생각이, (심지어 그 생각이 남의 주장으로 바꿔치기 되었음에도 불구하도 단지 ‘내 생각’이라는 이유만으로) 여러 차례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신념으로 굳어지게 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신념을 무작정 고수하기보다 이를 나의 역사성을 바탕으로 익숙함을 느끼고 진실로 여기는 하나의 잠정적 가설로 보는 태도가 중요할 것이다.
보이는 것만 보거나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 모두 기본적으로 우리 뇌가 효율을 추구하는 경향과 관련되며, 그밖에 인지적 지름길을 선호하는 우리의 특성과 관련된 다른 행동들을 정리해 놓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소위 직감 혹은 직관에 따르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직감과 직관은 경험의 누적되면서 만들어지는 판단의 빠른 지름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프로 체스 선수는 척 보고 어떤 수를 놓아야 할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전문가들도 보고 싶은 대로 보다가(대니얼 카너먼처럼!) 오류를 범하는 일이 꽤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라고 자주 회자되지만, 직감이나 직관은 틀릴 수 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사실 직감이 틀릴 때가 정말 많지만(가능성 grid에서 놓치기 쉬운 것), 그런 때보다는 직감에 따라 했는데 맞을 때가 기억에 더 잘 남는다. 그렇게 직감이 들어맞는 일이 반복되면 자신의 직감을 과도하게 신뢰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하고 복잡해 보이는 일을 결정할 때는 무작정 직감에 따를 것이 아니라 당연히 의식적으로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진실 편향도 다뤄진다. 진실 편향은 한 번 보고 들은 걸 진실이라고 가정하는 경향을 말한다(다만, 우리는 나의 신념과 불일치하는 타인의 신념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이라고 꼬리표를 달려면 추가적 단계가 필요하다. 그냥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르겠다는 열린 결론을 낼 수도 있을 테지만 인간은 불확실성을 유지하는 걸 무척 어려워한다. 특히 진실 편향은 메신저 특성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메신저가 전문적이고 권위적이고 매력적이고 감정에 호소하고 확신에 차서 이야기할수록 우리는 더욱 인지적 지름길을 따르게 된다.
특히나 우리는 파악해야 하는 대상이 복잡한데 이와 동시에 이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을 때 보이는 것만 보고 보고 싶은 대로 보다가 덮어 놓고 믿어버릴 수 있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고 더 많은 정보를 달라고 하고 싶지만 구체적으로 뭘 물어야 할지 모를 때는 "당신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유는 뭘까요?", "당신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전문가가 있나요?"라는 질문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우리에게는 일관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안정되게 예측하려는 경향과 관련된 듯하다. 그러나 모든 정보에는 노이즈가 있다. 그래서 지나치게 예외 없이 일관적인 결과를 보인다면, 비슷한 대상과 비교해서 얼마나 예외적으로 일관된지 꼼꼼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정보가 불확실할수록, 잘 모를수록 우리는 친숙함과 유사성에 쉽게 이끌리며 진실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위에서 잠깐 언급한 가짜 명성 효과, 착각적 진실 효과). 따라서 뭔가 친숙하게 느껴지면 "왜 들어본 적이 있는 걸까?" 자문해야 한다. 기억나지 않거나 뚜렷한 이유가 없으면 논리보다 친숙함에 좌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정밀한 주장, 비용, 금액은 그 자체로 전문적인 인상을 주며, 우리는 잘 모를수록 전문적인 정보를 신뢰하는 경향이 크다. 그런데 일반화하기에 너무 정밀한 주장, 예를 들면 "부정적 감정 경험에 대한 긍정적 감정 경험의 비율이 2.9013을 초과하는 사람들은 번성하는 반면 비율이 낮은 사람은 힘든 삶을 산다"에 대해서는 의심의 눈초리로 봐야 한다. 소수점 네 자리에 이를 정도로 정밀하게 측정되는 인간의 행동은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너무 적은 수의 대표성이 없는 집단을 대상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가짜는 진짜보다 더 상세하고 더 구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