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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주영 Jun 21. 2020

기억으로서의 삶

고레에다 히로카즈, <원더풀 라이프>, 1998년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알고 보아도 좋은 영화긴 합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어스름한 빛만 남아 다소 캄캄한 월요일의 대합실, 사람들이 한 명씩 들어온다. 나이도, 성별도 다양한 이들은 한 명씩 호명되어 면접실로 들어간다. 면접실에 들어온 이들은, 모두가 그 전날 죽은 이들이며 저승에 가기 전 길목 앞에 서 있다. 다만, 저승을 가기 위해서는 4일 안에 하나의 질문에 답변해야 한다. ‘당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가장 소중한 추억을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그것은 어떤 추억인가요?’ 이 소중한 추억은 이 시설의 직원들이 최선을 다해 영상으로 재현하며, 재현한 영상을 보고 기억이 마음속에 선명히 되살아난 순간, 고인들은 그 기억만을 안은 채로 저승으로 가게 된다.


인생이 하루하루 엇비슷하게 흘러갈 때, 누구나 ‘대단한 순간’이 찾아오길 바란다. 무언가를 성취하고 이룩하기를, 엄청난 우연이나 모험이 펼쳐지기를 원한다. 하지만, 영화 속 고인들이 기억할 단 하나의 추억으로 고른 순간들은 대부분 평범하다. 오빠가 사준 빨간 서양식 원피스를 입고 춤춘 기억. 엄마 무릎을 베고 있을 때 엄마에게서 느껴졌던 어렴풋한 향기와 숨결. 중학교 여름 방학 전날 전차 맨 앞자리에서 맞던 바람… 물론, 다소 드라마틱한 순간들도 있다. 스무 살, 벼랑 위에서 자살하고자 막 뛰어내리려던 때 ‘달빛을 받아 창백하게 빛난’ 철도 선로와 눈앞에 떠오른 어머니와 여자친구의 얼굴. 아이를 낳던 순간. 전쟁 후 행방불명이었던 전 연인을 우연히 다리 위에서 만난 것. 그것이 남들이 인정할 만큼 특별한 기억이든 아니든, 마음속 깊숙이 묻혔던 기억의 조각을 꺼내어 최대한 깨끗이 닦아 온전히 보여주려는 그들은, 모두 시인이 된 듯 아름답다. 


남들이 이렇게 술술 가장 소중한 추억을 얘기할 때, 자신이 ‘살았다는 증거’를 찾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철도회사에 다니다 정년퇴직하고 70세의 나이로 사망한 와타나베 이치로다. 쉽사리 소중한 추억을 고르기 힘든 그는 시설의 직원, 모치즈키 다카시의 도움을 받아 하나에 1년씩, 총 71개 비디오에 녹화된 자신의 삶 전체를 되돌아본다. 비디오 속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와타나베는 친구들에게 되바라지게 외친다. ‘뭐라도 좋으니까 살았다는 증거를 남기고 죽고 싶어. 취직해서 그렇게 쭉 살다가 죽고 싶진 않단 말이야.’ (이 장면에서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는 와타나베의 복합적인 표정이 압권이다.) 유년 시절을 담은 비디오에서 소중한 추억을 고르지 못한 와타나베는 계속 비디오를 본다. 그 안엔 아내 쿄코와 첫 만남의 순간도 기록되어 있다. 어색한 맞선 자리에서 만난 아내. 1년 후 결혼한 그들은 신혼임에도 조용한, ’고만고만하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낸다. 


이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신혼 생활이 담긴 영상을 부러운 듯 빤히 쳐다보는 사람이 있다. 모치즈키다. 시설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도 역시 고인이며, 미혼이다. 20대 초반의 모습이지만 사실 모치즈키는 와타나베와 동년배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몇 달 전 전사한 모치즈키는, 70년 인생을 온전히 산 와타나베와 달리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을 충분히 영위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으며, 생전의 추억을 고르지 못해 시설의 직원으로 남아 3년 전 이곳에 부임했다. 그에겐 과거의 추억에 대한 아련한 감정보다는 살아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향수와 회한이 더 익숙하다. 모치즈키는 와타나베와 함께 와타나베의 인생 일부를 관람한다. 살아보지 못한 삶을 와타나베의 영상을 보며 상상하듯이. 


71개의 비디오테이프 독파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와타나베는 결국 인생에서 기억할 단 하나의 추억을 고른다. 은퇴 후 아내와 함께 40년 결혼 생활 처음으로 영화를 보러 간 날이다. 비디오 속, 와타나베와 그의 아내는 노란 낙엽이 흐드러진 가을 공원의 벤치에 앉아 실없이 처음 맞선 자리에서 만났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아내는 하늘을 쳐다보고, 와타나베는 눈을 감고 있다. 서로를 바라보고 있진 않지만, 그 순간 그들은 편안해 보인다. 과거도 미래도 없이 서로 함께 있는 그 순간에 그저 존재하는 것이다. 직원들이 최선을 다해 고인들의 소중한 추억을 재현한 상영회가 끝나고 추억을 고른 이들이 모두 저승으로 떠난 후, 와타나베는 모치즈키에게 남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제 70년 인생을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와타나베는 살았다는 증거를 애타게 찾았지만, 사실 증거 따위는 없다. 나의 업적, 내가 쌓은 부. 그런 것들은 살아있는 사람에겐 의미를 가질 수 있겠지만 죽은 이에겐 큰 의미가 없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얼마나 성취했는지와 무관하게 죽기 직전 우리의 삶은 몇 가지 단편적 기억으로 축소된다. 그리고 그 기억을 차지하는 건 우리가 오롯이 ‘존재하고 있던(being)’ 삶의 순간들이다. 오롯이 존재한다는 것은 디즈니랜드의 기구를 타거나 무서운 영화를 볼 때 느끼는 원초적 생경함과는 다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호텔에서 기다리는 순간처럼 과도기적이기도 하며, 파일럿 훈련 중 ‘세스나’라는 경비행기에서 본 부드러운 구름처럼 정적이기도 하다. 터져 나오는 감정보다는 따뜻한 잔열이 남아있는 밥솥 같은 찰나의 행복감. 그러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우리에게 말한다. 그러한 실존의 순간들이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채워주며 일견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는 우리의 삶에 의미를 준다고.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괜찮다고. 


평범해 보이지만 소중한 순간에 대한 기억은 저승에 닿지 못한 채 남아있는 사람에게도 마음의 위안을 준다. 충분히 살지 못한 인생에 회한이 남아 추억을 고르지 못한 남자, 모치즈키는 와타나베의 아내, 쿄코의 기억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사실 모치즈키가 죽기 전, 쿄코와 모치즈키는 약혼한 사이였고, 그녀는 와타나베와 결혼한 이후로도 모치즈키의 기일엔 매해 성묘를 하러 갔을 만큼 모치즈키를 오랜 시간 잊지 않았다. 이 사실을 와타나베가 남긴 마지막 편지에서 처음 알게 된 모치즈키는 와타나베보다 5년 먼저 죽은 쿄코가 어떤 기억을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골랐는지 동료 시우에와 함께 기억 보관소에서 찾게 된다. 놀랍게도, 쿄코가 고른 기억의 순간은 와타나베가 고른 순간과 동일한 장소다. 하지만 그 시간과 함께 있는 사람은 다르다. 매미가 우는 여름, 앳된 모습의 쿄코는 하얀 해군복을 입은 모치즈키와 아무 말 없이, 떨리는 모습으로, 서로를 인식하며 가만히 벤치에 앉아있다. 그날 밤, 모치즈키는 영상 재현을 위해 마련된 세트장 벤치에 홀로 앉아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돌아본다. 그리고 저승으로 가기 전날 밤 시오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그때 행복한 추억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어. 그리고 50년이 지나서 내가 누군가의 행복이었단 걸 알았어. 정말 멋진 일이야.’ 


소외감, 허무함, 그리고 죽음의 영원한 어둠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기억해주는 타인이다. 진정한 죽음은 아무도 나를 기억해주지 않을 때 찾아온다고 했던가. 본인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좋은 추억으로 존재했다는 걸 안 순간, 모치즈키는 짧았던 생의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세트장 벤치에 홀로 앉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순간을 저승에서까지 기억할 소중한 기억으로 꼽는다. 모치즈키의 영상을 보러 상영회관에 모인 시설 직원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모치즈키가 저승으로 사라지기 전 마지막 순간에 모치즈키의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 관객이 볼 수 있는 건 모치즈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모치즈키가 떠난 후에도 그를 기억할 동료들의 모습이다. 모치즈키는 완연한 죽음 속으로 사라졌지만 대합실의 직원들이 그를 기억하는 한,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대합실 직원들의 한주는 아무 일 없던 듯 또 시작될 것이다. 누군가의 소중한 기억을 생생히 재현하기 위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어느 가족> 두 편을 봤었고, 두 편 모두 보다가 몹시 울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원더풀 라이프>는 보기까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일단 죽음과 생의 추억이라는 소재가 영화를 보기도 전에 벌써 슬프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원더풀 라이프>는 밝고 희망적인 영화입니다. 내가 죽고 나서도 누군가가 내가 살았던 삶에 관심을 가져주고, 내게 가장 소중한 추억을 최선을 다해 영상으로 재현해주며, 그 소중한 추억만을 가지고 저승으로 가게 된다니. 이런 행복한 플롯이 다 있을까요.


어둡지 않은 영화의 분위기엔 고레에다 감독이 연기자와 일반인을 뒤섞어 영화에 출연시켰다는 점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영화 속 고인들은 죽었다는 ‘역할’을 부여받은, 실제로는 살아있는 인물들이니까요. 본래 감독은 시설에 모인 고인들이 어떤 ‘추억’을 고를지 일반인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기 위해 ‘학생 몇 명을 고용하여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거리에서 인터뷰하게 했다’고 합니다. ‘조사는 중간까지는 어디까지나 각본을 쓰기 위한 것’이었으나, 학생들이 찍은 영상이 의외로 재미있어서 일반인 본인을 그대로 찍게 되었으며 촬영도 다큐멘터리 전문 촬영가에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소중한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반인들은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약간은 어리숙하게 말하기도 하는데, 그 부분이 오히려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은 뭘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에게 선명하게 떠오르는 추억은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즈음 시험 전날 밤 문제지를 펼쳐놓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아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와서는 밖에 눈이 많이 온다고, 공원으로 놀러 가자고 한 때입니다. (저는 공부해야 되서 안된다고 했지만, 아빠는 ‘에이, 괜찮아! 빨리 나가자!’라고 하셨었지요.) 눈이 펑펑 오는 겨울밤, 노란색 털모자를 쓰고 가로등이 군데군데 환하게 켜진 공원에서 아빠와 함께 새하얀 눈 위를 자박자박 소리 내며 걷던 순간이 생생합니다. 


다른 하나는 몇 년 전 가족과 함께 교외의 한 수목원으로 나들이 간 때입니다. 선선한 초여름, 울창한 나무 밑에서 엄마 아빠는 저만치 앞서 걸어가고 있었고, 오빠와 저는 다른 것을 구경하느라 뒤처진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오빠가 먼저 엄마 아빠를 향해 뛰어가서 저도 오빠를 뒤따라 뛰었는데, 오빠를 마냥 따라 하는 ‘어린 동생’으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 들어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유년 시절로 순간 이동한 기분이었달까요. 언제까지나 우리 가족이 ‘재밌고 유쾌한 아빠,’ ‘사랑스럽고 순수한 엄마,’ ‘염세적이지만 사실은 따뜻한 마음의 오빠,’ ‘바보 같고 철없는 막내’로 남아있으면 안 되는 걸까, 시간이 멈추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팬데믹을 비롯해 다양한 사건과 논쟁으로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이런 평범하지만 소중한 찰나의 순간들은 늘 우리가 발견해주길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많아지기를, 그리하여 소중한 기억들이 삶의 위안과 의미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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