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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예리 Feb 12. 2023

인생은 회전 목마

브래드 피트가 맡은 ‘잭 콘래드’에 눈길이 간 이유

(매일 수많은 콘텐츠를 소비한다. 내가 어떤 글을 읽고, 어떤 영상을 봤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가능한 선에서 기록해 두려 한다. 영화, 책, 드라마, 만화를 막론하고 콘텐츠라는 범주에 들어간다면 적어두는 게 목표다.)


꽤 오랜만에 혼영을 했다. 얼마 전 독립을 했는데, 집 앞에 영화관이 있다. 작심하지 않고도 갈 수 있어 종종 이용할 것 같다. 이번에 본 영화는 바빌론이다. (참고로 자율입장을 했는데, 갑자기 직원 분이 나를 막아서더니 신분증을 요구했다. 여기서 포인트는 내게만 그랬다는 점이다. 앞으로 동네에서도 신분증을 잘 가지고 다녀야겠다. 호호)


영화 도입부는 강렬했다. 매니(디에고 칼바)가 멕시코 사람이라 중간중간 스페인어도 나오고 멕시코 욕도 자주 나왔다. 멕시코 교환학생 시절 친구들이 욕을 가르쳐 주고, 내가 그 욕을 따라하면 되게 좋아했던(?) 기억이 났다. 자막에는 스페인어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아쉬웠다.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의 등장은 인상적이었다. 그의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 많았다. 감정을 종잡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매혹적이었다. 이런 점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생각과 감정의 폭을 넓힐 수 있어서다.


(스포주의)

내가 유심히 봤던 인물은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잭 콘래드였다. 그는 촬영 직전까지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도 카메라가 돌아가면 프로다운 모습을 보였다. 한 큐에 오케이 사인을 받는 대배우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는 ‘무성영화’였다. 만취해서 혀가 꼬여도 영화에는 표정과 제스처만 담겼다. 잘생긴 외모와 탄탄한 몸매만 있다면 촌스러운 억양이나 목소리는 문제가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콘래드는 본인이 하는 일을 사랑했다. 타사에서 최초로 유성영화를 제작했을 때, 매니를 뉴욕으로 견학 보낸 것도 그였다. 변화의 물결을 감지하고, 유성영화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을 것이란 점도 인지했다. 그렇지만 대세에 합류하는 데는 실패했다. 콘래드가 주연으로 참여한 유성영화는 몇 차례 망했다. 그와 오랜 기간 친분을 유지했던 한 기자마저 그에 대해 비판적 기사를 썼다. 따지러 간 콘래드에게 기자는 “당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 이제 당신의 시대가 끝났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콘래드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서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떴다. 그러고는 곧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자는 콘래드에게 “오늘 우리가 나눈 이 대화는 과거에도 반복됐고, 앞으로도 수백 번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장면에선 매년 유망한 배우가 등장하고, 새로운 세트가 지어졌다 허물어지는 모습이 그려졌다. 인생사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고대 문자를 해석했더니 “요즘 젊은 것들은 싸가지가 없다”는 문장이 나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형태는 다를 뿐 본질은 유사한 삶을 반복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ex) 요즘 SNL에서 다루는 MZ콘텐츠와 고대 문자로 쓰인 세대 갈등의 본질은 비슷함). 유사한 갈등과 고뇌를 겪고 화해하고 행복을 추구하고 느끼는 사이클에 따라 움직이는 게 인생이지 않을까. 인생의 의미를 거론하기에는 비교적 이른 나이이지만 영화 바빌론에 묘사된 잭 콘래드의 삶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콘래드의 마지막 선택은, 본인 삶이 특별한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허망함에서 비롯됐다고 추측했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망설임 없이 적었다.


소코도모(sokodomo)의 노래 ‘회전목마’ 가사 중 일부를 공유한다.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빙빙 돌아올 우리의 시간처럼
인생은 회전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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