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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낭 Dec 20. 2023

1년 6개월. 이직 1회. 연봉 1000만원이 올랐다.

살았다 시발.

작지만 좋아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2024년 연봉 계약서 송부에 대해 안내드립니다."


4시간 전 연봉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2022년 5월에 비해 딱 1000만원이 오른 금액. 어마어마한 돈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겨우 그거 오른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냐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상종도 하고 싶지 않은 인간들을 버텨내고, 말 같지 않은 말을 들어가며 어쨌든 1000만원 올렸다고. 속이 간질간질 거린다. 어딘가에 자랑하고 싶지만 낯이 부끄러워 익명의 힘을 빌린다.


스타트업 종말의 시기다. 주변에는 구조 조정, 희망퇴직, 팀 날리기 등등 서슬 퍼런 소식들이 자주 들리고 종종 보인다. "그럼에도 연봉 1000만원을 올렸답니다? 1년 만에요?"라고 떠벌리기엔 그저 초봉이 불쌍하리만치 낮았을 뿐이고, 특별한 비법이 있다기엔 그냥 억세게 운이 좋아서 훌륭한 대표를 만났을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잘리지 않고 목숨을 부지했었는지 연봉 계약서에 사인한 것을 기념해 회고를 해보려 한다. 1년 6개월간 어떻게 회사를 다녔고 어떤 규칙을 지켜왔는지에 대해서.



1. 이직해 제발 : 똥 통은 빠르게 탈출할수록 냄새가 덜 난다.

작년 겨울, 10년 가까이하던 일을 그만두고 전혀 새로운 직종으로 직무를 변경했다. 3개월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재취업에 성공했고 그때 당시 내 연봉은 직전 금액의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 딱 최저시급에 준하는 금액이었다. 서른이 한참 넘은 나이, 나는 신입 주니어 마케터로 입사했다.


대표가 가져서는 안 될 결함을 단 하나도 빠짐없이 갖춘 대표가 운영하는 소규모 스타트업. 그곳에서 8개월을 일했다. 1년을 채우지 않고 뛰쳐나왔는데 그때만 해도 '1년은 채우는 것이 좋지 않아?'라는 말을 꽤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뒤돌아 생각해 보니 내가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1위. GOTY 그 자체. 레전드 선택 랭킹 1위가 바로 그 시궁창을 1년 이내로 탈출한 일이다. (예상 가능한 엔딩: 이 시궁창은 망했다 당연하게도.) 


이직을 준비하던 당시에는 1년에 못 미치는 이력이 손톱의 거스름 같았다. 면접을 볼 때마다 가장 먼저 허둥지둥 설명하기 급급했다. 하지만 모든 이력이 1년 미만인 것이 아니라면 인사 담당자에게 이 사항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 내가 이 회사에 필요한 이유는 장기 근속자여서가 아니라 내가 수행한 업무였다는 것. 그러니 쫄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생각에 확신이 들었던 것은 오늘의집을 비롯한 '내 기준' 좋은 기업에서 커피챗과 면접 제안이 '꽤' 들어왔고 실제로 그 좋은 기업들 중 한 군데에 입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이직을 하며 400만원을 올렸다.



 2. 옮길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 : 투자금보다는 실제로 돈을 버는 회사에 가고 싶어.

똥 시궁창에서 일을 하다 보니, 매출이 일어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강제) 체험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회사를 고르는 기준은 자연스럽게 '매출 여부'로 기울었고 실제로 기준에 합당한 회사들과 만남을 진행했다. 시장의 규모는 얼마나 큰 지, 객단가는 어느 정도인지, 투자는 받았는지 등등. 돈 못 버는 회사, 투자금 의존도가 기이하게 높은 회사, 비즈니스 모델이 희끄무레한 회사는 제외했다.


그래서 이 칼바람 시대에 어찌어찌 목숨부지 한 것 같다.



3. 새로 론칭한 서비스 담당하기. 업무 범위는 넓게, 업무 강도는 높게, 업무 량은 개 많이 (강제)

스타트업 종사자는 익숙할 것이다. 일당백의 삶. 이때 조금이나마 억울함을 덜기 위해서는 일당백을 하더라도 신사업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티는 좀 더 나더라. (그렇다고 구사업을 안 하는 것은 아님)

우리 회사는 신규 서비스를 론칭하고 허허벌판에서 고객을 모집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입사 2달 차에 신규 서비스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마케팅 팀원이 두 명이라서.


이때 지키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금도 지키는 나의 규칙은 모든 액션에 목표를 설정하고, 측정할 지표를 선택하고, 성과를 판단할 기준을 세우고, 이 모든 것을 공유한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내 업무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의 머리에 물음표를 떠오르게 할 것이다. 이것은 곧 "저거 왜 하는 거냐?"라는 의혹으로 변할 것이고 이 의혹은 곧 "굳이 할 필요 없는데 쓸데없는 비용들이네"라는 생각으로 자리 잡는다.


매 번 성과가 좋을 순 없다. 당연히. 하지만 성과를 측정할 수 없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이유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것이 정확히 매출에 꽂히는 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유이든 필요한 일을 해야 하고 '필요'란 구성원들을 설득함으로써 주어지는 칭호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될 일이에요. 현재 OO만큼 달성했어요. 정말입니다. 안심하세요!' 같은 배를 탄 동료들을 안심시키는 말들. 이 배를 운행하고 있는 선장을 안심시키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4. 꾸준히, 규칙적으로 티 내기.

일당백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업무 범위가 넓어졌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는 이런 것들이 있다. 


콘텐츠 기획/제작/운영, 콘텐츠 배포/확산, sns 운영, PR, 광고 집행, 광고 매체 발굴, 제품 UX라이팅, 카피라이팅, 유튜브 기획, 영상 촬영/제작, UX 리서치, 데이터 수집/해석, 서비스 브랜딩.


 내가 주력으로 하고 싶었던 업무는 텍스트 기반의 롱폼 콘텐츠다. 어렵고 난해한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푸는 글이나 보이지 않는 가치나 세상에 없는 것들을 형체가 있는 것으로 써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만드는 것이 나의 업무였다. 인생사 마음처럼 되는 것은 없다고 그 일만 할 줄 알았는데 지금은 이미지도 만들고 광고 소재도 만들고 뉴스레터도 쓰고 유튜브 영상도 만든다. (덕분에 촬영 세팅도 할 줄 알게 되고 주워들은 영상 지식도 생겼다.)


하지만 이 잡탕 같은 업무 속에도 공통점은 있다. 정기적인 발행물이 있고 발행될 때마다 공유를 했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채널에 발행되는 콘텐츠는 반드시 각 팀의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필시 무슨 사달이 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유'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던 것이다.





사실 단 한 번도 나의 성과가 좋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늘 시무룩해있었고 의기소침해 있었다. 하지만 그 속상함을 위로라도 해주는 듯 1000만원이라는 돈이 내게 왔다. 누군가에게는 푼 돈, 어디 가서 차 한 대도 못 사는 돈, 주식 시드머니로도 많다고 할 수 없는 돈. 그럼에도 내게는 커다란 성취로 다가온다. 오늘만큼은 소리치고 싶었다. 나 연봉 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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