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내 몸이랑은 다르네.”
내가 처음으로 남과 나의 몸의 생김새를 비교하기 시작했던 기억은, 굳이 떠올려보자면 초등학생 때 잡지에서 이효리 화보를 보면서였던 것 같다.
세련된 잡지 속의 그녀는 성장기를 맞으며 키만 갑자기 멀쑥하게 큰 나와는 달리, 부드러운 골반의 곡선과 육감적인 몸매를 뽐내며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나와는 새삼 다른 행성에 사는 존재 같아 보였던 기억이 난다.
물론 성인 여가수와 2차 성징이 막 시작된 아이의 몸이 달라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사진은 내게 어떤 ‘이미지’를 남겼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 사진 단 한 장이 남긴 것이 아니라, 주위에서 자연스레 접하게 되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그것은 ‘아름답고 욕망되는 여성이라면 특정 신체적 조건을 가져야 한다’라는 것이다. 늘씬한 다리와, 큰 눈과, 납작한 배와 봉긋한 가슴.
특정한 기준을 보편적으로 정해 두고 다같이 그것을 향해 노력하는 건, 조금 슬프지만 대한민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우리 세대가 모두 어느 정도 공유하는 마인드셋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게 꼭 100퍼센트 나쁘기만 했다는 건 아니다. 어디선가 들은 속설에 의하면 ‘딸기우유를 마시면 딸기애 든 에스트로겐 덕분에 가슴이 예뻐진다’라는 얘기가 있어서,(하지만 실제로 딸기우유에 든 딸기의 함량은 알새우칩에 든 새우보다 낮다.) 또래 여자애들끼리 쉬는 시간에 모여 딸기우유를 자주 마시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건 뭐랄까, 정말 가슴이 예뻐질 거라는 걸 기대하고 했다기보다는, 공통된 이상향을 가진 또래 동성 친구들 집단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어떤 의식 같은 거였다. 남자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만의, 더 멋진 여자가 되기 위한, 묘한 동질감과 유대감을 만드는 의식.
하지만 그런 특정 신체적 조건을 목표로 달성하기 위해 드는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노력으로 연예인 같은 외모를 가질 수 없는 건 당연할 뿐더러,
그러다 보면 결국은 스스로의 외모와 몸매를 그 완벽한 이미지들과 비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0대 중반에서 20대 초반, 그 나이대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몸이 또래 집단이 정한 일정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자존감을 낮추기 충분한 요인이고, 한창 예민할 시기에 불필요한 신체 컴플렉스까지 생기게 만든다. 돌이켜 보면, 나도 어렸을 때는 내 몸과 남의 몸을 비교하고 외적인 것에 더 중점을 두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점차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어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주위에 가끔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분명 이목구비나 몸매가 sns스타들처럼 예쁘지는 않은데, 자신만의 스타일을 멋지게 연출해 매력을 뿜어내는 사람.
소위 ‘미용 체중’에 부합하지 않는데도 신기하게 인기가 많고 주위에 사람이 많은 사람,
근처에 가면 항상 부드럽고 기분 좋은 에너지로 주위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
단순히 sns에 업로드하는 사진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우라와 매력을 풍기는 사람,
그래서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가까이하고 싶은 그런 사람.
그 사람의 그러한 매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들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외모의 기준이 의미없게 느껴질 정도로 부드럽게 배어나오는 분위기의 원천은? 그것들을 구성하는 요소는 과연 무엇일까.
그런 이들을 관찰하며 알게 된 건
이목구비의 생김새보다 미소짓는 얼굴이 더 아름답고,
자신의 몸을 타인과 비교하기를 최소화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자세,
타인을 배려하는 속 깊은 말투, 일상 속에서 당당하고 우아하게 걷는 방식이나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뚜렷하게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이들을 소위 분위기 미인이라고 한다.
지금 내가 그 정도로 매력있거나 분위기 있는 사람이란 건 사실 아니다.(그랬으면 좋겠다!) 그저 하루하루 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스스로와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해 소소하게 노력할 뿐.
하지만 이런 부분에 관심이 생길수록 다른 사람들의 아름다운 점을 찾아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걷는 법, 은은히 배어나오는 향기, 편안하고 당당한 태도와 말투 등.
타인의 장점과 아름다움이 보인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꽤 멋진 일이기도 한데, 나의 일상에서 보이는 ‘아름다움의 해상도’가 전반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같은 골목길을 걸어도 누구는 골목을 걸어나가는 데만 집중하고, 누구는 담벼락 사이에 핀 민들레 한 송이의 금빛을 보고 귀여워하듯, 보이는 만큼 하루가, 나아가서는 일상이 풍성해진다.
그리고 좋은 것을 알아보기 위해 노력할 줄 안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조금씩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그러니까 사소한 것을 보는 연습, 감각을 섬세하게 기르는 습관은 안목을 기르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누군가가 왠지 아주 멋져 보인다면, 그 사람이 그런 분위기를 내는 건 단번에 해내는 연출이 아니라
그 사람이 쌓아온 생활방식, 사고방식, 아주 오래 반복해온 움직이고 말하고 생각하는 방식의 결과물이며, 그걸 알아볼 눈이 생긴다는 것이다. 수없이 공이 들어간 멋진 예술작품을 보는 일처럼 말이다.
그런 ‘분위기 미인’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은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규칙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돌보고 감각하는 일이다.
앞으로는 일상 속에서 의도적인 리추얼(사전적 의미는 의식, 일상에서 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작은 행동들) 을 통해 분위기 미인이 되기 위한 이야기들을 아주 천천히 나누어볼까 한다.
단 지금의 의식은 옛 중학교 시절 마시던 딸기우유처럼 획일화된 아름다움과 소속감을 추구하기 위한 의식이 아니라, 나만의 향기를 찾기 위한 의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