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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an 25. 2018

나의 이별은 어땠을까?

이별한 사람의 플롯, 영화 '500일의 썸머'


이별한 사람의 플롯, 영화 500일의 썸머

지난 주말, 심심한 탓에 티비를 보다가 우연히 한 영화 전문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한 장르의 다른 영화 두 편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날의 주제는 멜로, 영화는 500일의 썸머와 세렌디피티였다.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영화 평론가와 소설가였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자니 영화를 볼 때 느꼈던 감정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중 평론가의 어떤 멘트가 인상적이라 나도 이 영화에 대한 생각을 글로 쓰게 되었다.



실연한 사람의 플롯, 500일의 썸머


평론가는 500일의 썸머를 두고 '실연한 사람의 플롯'이라고 이야기 했다. '실연'은 연애에 실패한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으니 '실연'보다는 '이별'한 사람의 플롯이라고 말을 조금 바꾸고 싶지만, 어찌 되었든 비슷한 맥락에서 무릎을 '탁'치는 표현이었다.  


영화는 썸머에게 차인 남자 '톰'의 사랑에서 이별까지의 500일 이야기를 담았다.



더이상, 사랑 이야기가 아니야

영화는 그들의 이별로부터 시작된다. 관객이라면 단연 그들의 재결합에 초점을 둔 전개를 기대하겠지만 영화는 시작부터 그들의 재결합에 여지를 두지 않았다. 초반 내레이션을 통해 분명히 말했듯.

'이것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난 이야기다. 결코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은 결국 다시 만나지 못할 것임을 알게 됐다. 그들이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면 '이것은 결코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표현할 수 없었을 테니까. 영화는 이미 그들의 결말을 스포한 셈이고, 오히려 그 이야기 전개가 흥미로워지는 순간이었다.




나의 이별은 어땠을까?


톰(조셉 고든레빗)의 경우는 이별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운명이라고 믿었던 썸머(주이 디샤넬)와의 첫 만남, 그리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에 힘들어 했고 가끔은 다시 그녀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살았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그들의 에피소드를 풀어내지만,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이라 내용이 헷갈릴 일은 전혀 없다. 그것이 바로 이별한 사람의 플롯이니까. 좋았던 기억, 나빴던 기억을 롤러코스터 타듯 오르 내리는 일. 그저 질문 하나를 던지게 된다. '이별 후의 나는 어땠을까?'

 


이별 후에 보이는 것들


사랑할 땐 몰랐는데 이별 후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누구는 이별 후에야 자신의 사랑이 더 컸음을 깨닫고, 누구는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알게 되는 것 처럼. 500일의 썸머는 우리가 이별한 후에야 보게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린 생각보다 더 행복했었구나

500일의 썸머에서 생각 나는 장면은 여럿 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하나가 바로 이 장면이다.

썸머와 사랑에 빠진 톰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흡사 뮤지컬처럼 표현된 장면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여느 톱 배우의 잘생긴 모습과도 같고, 귓 가를 간지럽히는 새의 지저귐도 감미로웠던 시절.



러닝타임 중 오직 이 장면만을 위해 사용된 기법이 많은 씬이다. 수많은 사람과 합창하며 춤을 추는 뮤지컬의 장르로 시작되었고 어느 잘생긴 배우의 얼굴을 합성했으며 애니메이션 새를 활용하여 사랑이 라는 환상에 빠진 톰의 마음을 보란듯이 표현했다.


이별 후에 보이는 것들. 나의 경우엔 꽤 행복했었던 과거 내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이별했어도 한 때 사랑하던 그 사람으로 인해 나는 분명 행복했으니까. 그런 감정을 겪을 때면 간혹 맘이 시리기도 하고 혹은 그저 웃음이 나기도 한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톰은 '어쩌면 썸머와 다시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별을 겪은 사람이라면 희미하게나마 한 번쯤 생각해본 이야기. '그 사람과 다시 만나게 된다면..?'


하지만 썸머와 다시 사랑을 꿈꾸던 톰은 그녀의 약혼 사실을 알아버린 현실 속 자신의 모습에 무참히 KO패 당한다.  다시금 그녀와의 사랑을 꿈꾸었는데 그녀는 이미 누군가와 미래를 약속했다. 그리고 그가 알던 그녀는 누군가의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그녀를 향한 배신감과 허탈감. 우리는 이별 후 진짜 우리의 위치를 알게 되는 것 같다. 톰의 경우엔 이별 후 비로소 썸머의 옆자리는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고.


여기서 깨닳은 것 하나. 헤어진 뒤에 그(그녀)와의 재회를 섣불리 기대하지 말자. 이별 후 우리에겐 서로가 알지 못하는 굉장히 많은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콩깍지의 어마무시한 두께

500일의 썸머에서 재밌었던 내용 중 하나가 바로 콩깍지의 두께에 관한 것이다. 한창 썸머와 사랑할 때의 톰은 그녀의 웃음소리와 그녀의 귀여운 무릎, 특이한 모양의 점까지도 사랑했다.



하지만 이별 뒤엔 어땠을까?

그녀의 웃음 소리는 천박했으며 무릎은 울퉁불퉁 못생겼고, 몸에 난 점은 마치 바퀴벌레와도 같았다.

어쩌면 그것은 연애하던 그 순간에도 톰의 머리를 스쳐갔을 생각. 하지만 사랑하던 때엔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모이던 바로 그것이 '콩깍지의 두께'였지 싶다.



우리 각자의 이별

 

영화 500일의 썸머를 처음 봤던 건 꽤 오래 전의 일인 것 같다. 그때 드는 생각은 간단했다. '썸머, 나쁜년'

썸머는 '누군가'의 여자친구가 되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만나 결혼을 결심했다? 톰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영화는 썸머가 톰과 헤어지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그저 전과 달라진 자신의 모습이 톰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고 있는지에 대해 말했을 뿐. (식칼로 남편을 찔러 죽인 여자를 자신을 빗대어 표현했다.) 썸머의 마음은 톰에게서 멀어졌을 것이고, 결국 그와 함께 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 톰의 사랑이 변함 없다고 해서 역시나 한결 같은 썸머의 사랑을 기대하는 것은 우리의 오지랖은 아니었을까?


'누군가의 무엇이 되지 않겠다'고 말했던 썸머는 톰과의 이별 후 머지 않아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그렇다고 썸머를 탓할 수는 없다. 이별 후에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랑을 기다리게 되었을 수도 있고, 가벼운 마음으로 만난 누군가에게서 톰에게 느끼지 못한 새로운 마음을 느꼈을 수도 있다.




이별은 아마도 '각자' 하는 것이지 싶다. 그리고 그 이별에서 헤어나오는 것도 각자의 삶. 너무나 현실적이라 괜히 씁쓸하고 마음 아팠지만 그래서 더 공감이 되었던 영화 500일의 썸머.


'하지만, 톰에게도 새로운 1일은 왔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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