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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작 Sep 08. 2017

최고의 날씨, 최악의 기분.

신혼여행 중  마지막 싸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우리는 새벽 기차로 론다를 가야 했고, 전날 짐을 싸야 했다.


여행의 중후반에 들어서 남편도 지쳤던 걸까?

나의 장난과 어리광을 다 받아주던 남편도 그날은 예민해있었다.


평소대로 난 남편에게 장난을 치기 시작했고, 

급기야 남편은 짜증을 버럭 내버렸다.

지금까지 잘 받아주던 남편이었기에 어찌나 짜증 나던지

(여전히 남편은 받아주고, 난 화를 내는 입장이다.)


나도 기분이 상해 서로 말도 안 하고 짐을 싸고 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여전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마드리드에서 론다로 가는 기차역까지 우린 한마디로 하지 않았다.


기차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민박집에서 준비해준 샌드위치를 먹으며 기차를 기다리던 우리.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대체 왜 그러냐고...


나도 나름 서운했던 말을 건넸다.


보통날 같았으면 좋게 좋게 끝났을 사건.

그러나 남편도 나도 많이 지쳐있었던 것인지..

그날따라 둘의 대화는 좁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결국 우리는 론다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고,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론다에서의 일정은 1박 2일...

오늘이 아니면 둘러볼 시간이 없다.


우린 서먹하게 할 말만 하고, 론다 시내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이 사과를 할 때까지 화를 풀지 않을 생각이었고,

남편도 항상 본인이 먼저 사과를 해야하는 상황에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린 남보다도 못한 사이로 여행을 하게 됐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론다는 도보로만 다닐 수 있는 곳 있는

아주 작은 소도시라 슬렁슬렁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대부분 론다 여행의 목적은 누에보 다리일 것이다.

다리를 포함한 도시의 구석구석은 스페인 특유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곳.

그날따라 날씨는 또 왜 이렇게 좋은지...


누에보 다리에 도착하자 풍경 사진을 찍던 우리 둘...

그래도 사진은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마치 혼자 여행 온 것 마냥 혼자 셀카를 찍던 나에게

남편이 먼저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그 와중에 또 함께 사진을 찍고...


웃긴 웃어야겠는데 웃음은 안 나오고... 론다에서의 모든 사진들은 그렇게...

어색한 미소만 짓고 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다녔다.

도시를 둘러보고 잠시 숙소에 돌아와 낮잠을 자고

저녁을 먹으러 간 순간까지 그렇게 우린 냉전 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답답해서 못 견딜 것 같은데

그놈의 쓸데없는 자존심이 뭐라고...


그러다 우린 잠이 들었고, 새벽이나 되어서야 겨우 화해를 했다.

그때는 서로 네가 잘못했니 내가 잘못했니보다

그냥 그냥 서로가 풀어졌던 것 같았다.


냉전 중인 상황에도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셔터를 눌러대던 남편.

론다에서 돌아오는 날이 되어서야 우린 겨우 웃음을 되찾았다.


사실 나는 론다를 다니면서 혼자 왔다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생각보다 엄청 불편하진 않았는데

남편은 여행지에서는 절대 싸우는 게 아니다...라는

큰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그 사건이후로

우리 남은 여행기간 동안에는 한번도 싸우지 않았다.


남녀관계라는 것이 참 간사하다.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말 한마디가 뭐라고

사실 남편이나 나나 서로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면서...


싸울 때는 마치 뒤는 안보이는 것처럼 싸우다가도

미안해라는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

지금껏 서운 했던 감정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관계가 남녀 사이가 아닐까?


여전히 론다에서의 추억을 회상하면

기분 좋은 마음으로 제대로 즐기고 싶단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우린 여행 중 가장 최고의 날씨였던 날

가장 최악의 기분으로 론다를 기억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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