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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 후드 Jun 18. 2021

<Vogue>, Madonna(마돈나)

Strike A Pose!(포즈를 취해 봐)

 한때 나는 음악을 많이 들었다. 가장 많이 들었을 때는 아마 록을 들을 때였다. 록의 장르를 전부 듣지는 않았다. 라디오헤드에서 에릭 클랩튼으로, 퀸에서 크림으로, 지미 헨드릭스에서 비틀즈와 핑크 플로이드로, 마치 연어처럼 음반을 역주행하고 있었다. 정말 '록이란 넓고도, 명반과 명곡이 너무 많구나. 진짜 록은 대단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다른 장르의 음악을 듣고 있었지만, 당시 나는 "와 역시 록이 최고야"라는 요즘의 '홍대병' 같은 마이너 병을 겪고 있었다. 그에 한 술 더해 음악 장르의 급을 매기고 있었다. (이렇게 쓰고 있으니 정말 오만했다는 걸 깨닫는다.)



 그 '급 매기기'에서 댄스음악은 저 뒤에 있었다. 당시에 뭔가 아이돌 댄스 음악을 듣는다고 말하는 건 '멋이 안 난다'고 해야 하나. 해맑게 '저는 걸그룹 음악이 좋아요.'라고 말하면, 하수로 보일까봐 두려웠다. 모두가 다 맛있어 하는 음식을 맛보고 "맛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게 당시의 생각이었다. 그 와중에 "이게 나만이 알고 있는 음악이다"는 자랑을 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던 건 사실이다(사실 이건 지금도 있다. 그러지 않았다면, 앞 문단에서 유명한 아티스트들을 나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 음악 좀 아는 놈인가."라는 말은 지금 들어도 기분이 좋다.



 아무튼 이야기가 조금 샜지만, 당시 나는 댄스음악을 한 수 아래로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엄청난 대충격을 준 곡이 있었다. 그것이 Madonna(마돈나)의 <Vogue>였다. 곡 자체를 듣기보다는 뮤직비디오로 처음 접했다. 정말 충격이었다. 음악과 영상이 세련미가 철철 흘러넘쳤다. 첫 인상은 "대체 이 뮤직비디오, 언제 나온 거지???"였다. 당시 "시간을 초월하는 고전이 있다."는 말은 도서관에서나 쓰인 문구였다. <Vogue>를 보며, 출시 시기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이게 시간을 초월하는 고전이다!" 나는 그 문구를 마돈나에게서 체감했다. 


https://youtu.be/GuJQSAiODqI

일단 보는 게 상책이다.



 <Vogue>는 90년대의 하우스 음악과 70년대의 디스코 음악을 씨실과 날실처럼 잘 짜놓은 곡이다. 마돈나를 춤을 잘 추고, 노래를 잘 하는 가수 정도로 알았지만, 사실 마돈나는 전자음악에 있어서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신스 팝, 하우스 음악을 대중적인 댄스 음악의 세계로 데려 온 마돈나는 디바의 자리에 앉았다. <Vogue>의 핵심 사운드는 초반에 귀를 사로잡는 신디사이저의 사운드 이후의 베이스 연주, 전자드럼의 미친 박자 쪼개기, 신디사이저의 중독적인 리프(짧은 연주 부분)의 반복 등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마돈나의 느낌있는 나레이션에서 이 핵심 사운드들이 폭발하고, 나레이션이 끝나면서 핵심 사운드들이 더욱 주목된다. 이러한 대조는 연주 부분의 극적인 효과를 더욱 드높인다. <Vogue>는 음악의 겹이 매우 많아서 다시 들을수록 전자음악의 치밀함에 더더욱 놀라게 만든다. 



 나중에서야 이 <Vogue>의 뮤직비디오 감독이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라는 걸 알았다. 이제서야 왜 <Vogue> 뮤직비디오가 그렇게 기깔나는 레전드인지 납득이 됐다(개인적으로 이 뮤직비디오를 흑백으로 찍은 건 가히 신의 한 수다). 데이비드 핀처는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나를 찾아줘>, <파이트 클럽>, <세븐>, <조디악> 등을 만든 사람이다... 그냥 영화를 잘 만든다. 진짜 재밌다. 아직 그의 영화를 안 보신 분이 있다면, 일단 부럽다. (리셋된 상태로 그 영화들을 볼 수 있다니...) 한 번쯤 보시길 추천드린다. 브래드 피트도 꽤 나온다. (영화에 흥미가 없던 때에도 OCN에서 틀어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정말 인상깊었다.) 




 사실 <Vogue>를 많이 들었지만, 가사 내용을 음미하지는 않았다. "90년대 미국 뮤직비디오치고는 백인 이외의 사람이 많이 나오는구나" 정도였다. 가사는 대충 '나의 있는 그대로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신기하고도 소중한가. 그러니 우리 다같이 댄스 플로어에서 자신의 동작으로 춤을 주자' 뭐 이런 이야기로 알았다. 그 다음에 '리타 헤이워드, 말론 브란도, 그레이스 켈리, 마릴린 먼로' 등의 유명인의 이름이 나레이션에서 나열된다.  '뭐 대충,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밀고 간 사람들을 기리는 건가'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 지난 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Disclosure(디스클로저)>에서 <Vogue>가 등장했다. '갑자기?' <Disclosure>는 대중문화 속 트랜스젠더의 위상이 변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일상생활 속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다룬, 트랜스젠더 이슈 입문 다큐멘터리다(개인적으로 매우 추천한다, 그에 관한 글도 썼다. 링크 https://brunch.co.kr/@moonlightjgiu/99). 거기서 <Vogue>는 마돈나의 순수한 창작물이 아닌, 90년대 당시 성소수자들의 '댄스 플로어' 문화를 차용한 것임을 말했다. <Vogue> 뮤직비디오의 절도있는 손동작과 춤은 '성소수자들, 그들만의 유행(Vogue)'이었다. 물론 <Vogue>는 그것을 알았는지, 이 노래의 가사는  "Vogue, Beauty is where you find it(보그, 아름다움은 네가 찾는 곳에 있어)"로 요약된다. 주제 면에서 레이디 가가(Lady GaGa)의 <Born this way>와 상통되기도 한다. 



 '인간 마돈나'는 논란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디바 마돈나'는 피할 수 없는 대중문화의 거대한 존재다. 나는 <Vogue>를 듣고 나서, 댄스 음악 앞에서 오만했음을 깨달았다.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 극한의 경지에 이르면, 명작이 된다."는 정말 당연한 이치를 확실하게 체감했다. 개인적으로 '마돈나'는 그것만으로도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아이돌 댄스 음악을 나름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다. 그러자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아이돌 음악 밑에 흐르는 장르음악의 뉘앙스를 어느 정도 눈치채기 시작했다. 만약 그런 변화가 없었다면, 나는 샤이니를 단지 <누난 너무 예뻐>를 불렀던 오그라드는 컨셉의 미소년 그룹 정도로 치부했을 것이다. 정말이지 그건 손해다. 


Soul is in the musical. That's where I feel so beautiful,magical.
Life's a ball. So get up on the dance floor.
(영혼이 음악 속에 있을 때, 내가 진정 아름답고 마법같다고 느껴. 인생은 무도회장이야, 어서 댄스 플로어에 올라 와.)  --- <Vogue> 가사 중에서


https://youtu.be/yzG_3UJ-LvU

2012년 MDMA 세계 투어 라이브 무대, 무대 자체가 화려하기도 하지만 편집이 기가 막히다. 진짜 "돈 쓰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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