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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 후드 Mar 04. 2021

한낱 잡덕이 보는 아이돌 시장 3. 프로의 조건

아이돌 시장이 커질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예전에 나는 많은 음악을 들었었다. 그 중에서도 성시경을 많이 들었다. 정말 잘 한다... 그런 말이 나온다. 당시 성시경 7집의 <태양계>를 듣고 나서 사실 그 섬세함과 아련함 그리고 목소리 자체의 달달함에 성시경은 ‘경지에 올랐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성시경 콘서트는 나의 버킷리스트에 들어왔다. 수많은 발라드 가수들 중 하나가 아닌 성시경으로 나에게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성시경 1집을 들었다. 20대의 성시경이 부른 <내게 오는 길>을 들었다. 그런데 묘했다. 20대의 성시경은 진짜 잘한다. 노래가 맛깔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지금이 한 150퍼센트 정도 더 잘 부르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다. 충분히 잘하고 만족스럽지만, 더 잘해진 40대의 성시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8집은 대체 언제쯤...


 만약 누군가 내게 “그 사람이 프로인가?”를 물어본다면, 데뷔 앨범과 최근 앨범을 연달아 들어보라고 하고 싶다. 사실 프로는 데뷔 앨범 때부터 잘했다. 그런데 최근 앨범을 듣고, “뭐지, 예전도 잘 하는데, 지금이 더 잘 해졌네...”라는 생각이 든다면 나는 그 가수는 프로라고 생각한다. 아니 대한민국의 최상위에 있는 가수들이 다 여기에 해당한다. 나에게는 성시경, 이소라, 박효신, 보아가 그렇다.


 그러나 이것을 ‘데뷔의 조건’이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이 조건은 프로로 데뷔하고 기나긴 시간이 지나야 쓸 수 있는 평가 기준이기 때문이다. 데뷔 2년차 가수한테 이 조건을 들이밀 수 없다. 그렇다고 신인 가수는 프로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프로 가수로 데뷔하는 이유는 그들이 “완성됐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때 “완성형 그룹, 완성형 신인”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 의도는 신인임에도 수준 높은 무대를 만드는 가수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연습을 아무리 많이 해도 가수는 “완성되지” 않는다. “완성형 신인”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실전 무대는 무대 연습과는 그 경험의 질과 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외과의사의 전성기는 젊은 30대가 아니다. 정교한 손의 움직임을 요구하는 외과의사의 전성기는 50세라고 한다. 수련 과정으로 익힌 전문 지식과 실전에서 익힌 임상 경험이 함께 녹아드는 그 시간이 외과의사에게 거의 20년이 걸린다. 마치 대학교 신입생 때 아무리 발표 연습을 해도, 막상 실전에서 준비한 것의 절반도 못하고 끝나는 경험과 비슷하다. 그러다가 몇 번의 실전을 겪고나서 조금씩 능숙해진다. 성대를 포함한 몸을 다루는 가수도 그럴 것이라 본다(특히 댄스 가수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프로로 데뷔한다는 건 그 가수가 ‘완성됐기’ 때문이 아니라 실전 무대로 ‘성장할 준비가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프로가 되고 나서 성장할 수 있는 사람만이 프로가 될 수 있다. 이 역설 때문에 프로 가수들에게 경험을 쌓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요계에서 임상 경험을 쌓을 시간이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음악 산업에서 경력 10년 이상의 가수들의 자리가 사라져가고 있다. 한국 가요계의 문제는 신입이 없는 게 아니라, 경력직이 부족한 것이다.


 사실 한국 가요계 중 댄스 음악에서 경력직(베테랑)은 신인 가수들의 수에 비하면 거의 가뭄 수준이다. 댄스 음악 시장의 크나큰 변화는 “변화 자체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댄스 음악 시장의 산업 주기는 엄청나게 짧아지고 있다. 신인 아이돌 그룹들은 1년에 3번 정도 컴백한다. 단지 4분 미만의 음악일지 몰라도, 그 이면을 상상해보면 엄청난 일이다. 앨범 기획, 노래 추합 및 선정, 안무 연습, 뮤직비디오 촬영 등 준비과정이 3개월 안에 끝나야 한다. 그래야 4주 남짓의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끝나자마자 다음 컴백을 준비한다. 이를 3번 반복하는 것이 신인 아이돌 그룹들의 업무다. 앨범을 4년 정도 고심하는 시간 따위는 없다. 그 사이에 유행은 지나간다. 음악 시장에서 시간은 유행이자, 산업 주기다.


 산업 주기가 빨라지는 계기는 댄스 음악 시장이 엄청난 돈을 투자받는 거대한 산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비유적인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음악은 산업이 되었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의 공산품처럼 말이다. 댄스 음악 시장은 전형적인 포디즘(Fordism)으로 변화하고 있다. 자동차 회사 포드는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공정을 도입함으로써 엄청난 수의 자동차를 만들어 대량 생산의 시대를 열었다. 포디즘은 포드의 이름을 따서 “대량 생산, 대량 소비”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자 음악들은 점점 서로 비슷해지기 시작하고, 유행에만 민감해져서 각자의 음악이 식별불가능하게 되어간다. 만드는 속도만 빨라진 게 아니다, 질리는 속도도 빨라졌다(매 시간마다 순위가 바뀌는 음원차트보다 더 빠르게 바뀌는 곳은 주식시장 뿐이지 아닐까). 그래야 다음 상품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만들고 소유하고 싶게 만든 다음, 빠르게 질리고 다음 상품을 원하게 만드는 것. 글로벌 자본주의 최고의 마케팅이다.


 빠른 산업 주기(유행) 주식회사들에게 매우 이상적인 상황이다. 당기 이익을 최대화하고, 많은 배당금을 받는 것이 주주들의 최우선순위다.  그대로 ‘오늘만 사는방식이 글로벌 자본주의이자, 지금의 댄스 음악 시장, 아이돌 시장이다. 오직 지금의 요구와  전조가 보이는 요구만이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댄스 음악의 기준이 된다. 그렇게 되자 지금의 댄스 음악 시장은 “나쁘지 않은 작품들은 많이 나오지만, 수작이 나오기 힘든구조가 된다. 유행에는 맞췄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듣지 않는 음악들이 쌓여간다. 여러분들은 2  이맘  유행한 노래를 기억하고 있는가?


  빠른 유행에 몸을 맡기지 않으면 안 되는 음악 시장 속에서 베테랑들은 자신의 경험을 쌓을 곳이 점점 사라져간다. 음악 시장에서 1년은 4분기로 이루어져 있고, 당기 이익을 뽑아야 하는 제한 시간이다. 그에 반해 베테랑 가수들에게 1년은 자신의 실력을 단련하고, 어떤 앨범을 만들어야 할 지를 고민하며 성장하는 경험의 축적이다. 단기적 목표를 가진 음악 시장과 장기적 목표를 가진 베테랑 가수들의 이해관계는 끊임없이 충돌한다. 대립 상황에서 과연 신인 아이돌 그룹이 베테랑 가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흔히 아이돌 그룹의 수명이라 말하는 ‘마의 7년’이 베테랑 가수의 연차에 비해 길지 않은 것이 단지 멤버들 사이가 멀어진 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지 않은가.


https://youtu.be/UduPW8PagJE

과거의 자기 자신을 오마주한 보아의 20주년 영상은 그녀의 성장과 경험의 축적을 여실히 보여준다. 바꿔 생각하면, 보아 정도의 업적을 쌓아야 이렇게 찍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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