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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집짓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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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한무 Oct 21. 2023

집의 외모

자신의 분위기와 결을 맞춰 볼 것


준공을 한 달 정도 남겨 두고 도배작업이 마무리되었고, 남은 일은 마루 깔기, 2층 난간 등 유리작업, 욕실도기 설치, 가구 설치. 이 작업들이 마무리되면 입주였다. 입주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나는 도통 실감이 안 났다. 가장 큰 이유라면 너무나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선택의 연속에 지치고, 사람들에게 지치고, 부족한 나 자신에게 지쳤다.


그런 마음이어서 그랬을까, 비계를 털어내고 하얗게 스터코로 마감을 한 우리 집의 모습을 보는데, 두둥! 너무 못 생겨 보이는 게 아닌가! 하얀색 외관이 가볍고 흔해 보이고, 전면의 창문은 왜 이리 왕눈이 같이 커 보이지? 와~ 예쁘다~ 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서 울타리를 쳐서 못생긴 얼굴을 가리고 싶을 정도로 못마땅했다. 집에 인격이 있다면 참 미안할 정도로 그때는 그런 마음이었다. 


집을 짓기로 결심했던 초창기에는 내 땅이 생기고 집이 지어지기만 한다면 겉모양은 어떻든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창고같이 지어도 되고 집 내부 마감도 그냥 보통 수준이면 충분했다. 외관은 마당과 잘 어우러지기만 하면 하얗든 까맣든, 벽돌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었고, 마루 같은 내장재도 가성비 좋은 자재 정도면 충분히 만족이었다. 예산 문제도 있었지만 정말로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는 큰 관심도 고집도 없었다.


그런데 집에 대해 공부를 거듭하고 전시장 등을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 게 늘어날수록 눈이 점점 높아지고 숨어있던 내 취향과 욕심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루를 고르기 위해 전시장에 가서 원래 하려고 했던 강마루를 보는 데 눈에 차지도 않았다. 내게 고급스러운 바닥 질감에 대한 집착이 있다는 걸 새로이 발견했다. 외관도 마찬가지. 스터코로 뿜칠을 한 외관은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를 주었지만, 한 장 한 장 쌓아 올린 벽돌의 섬세함과 묵직함이 아름다워 마음을 뺏겼다. 예산문제로 벽돌이 아닌 스터코를 선택하게 되었고 아쉬움이 내내 남게 되었다.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며 외모보다 내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온 내가 집의 외관에 이렇게 흔들리다니. 솔직해지자면 외모도 내면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거다. 잘 생기고 예쁜 외모를 추구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각자 가진 고유의 분위기를 찬찬히 파악해 보고 그에 맞게 가꾸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집의 외관이나 내부 인테리어도 사람의 옷이나 화장 같은 구석이 있어서 그 사람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외관의 소재가 고급스럽고 어떻고를 떠나서 내 분위기와 어울리는지 아닌지 가만히 결을 맞춰보기보다 예산에 맞춰 선택한 게 후회되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집을 짓고 있던 지인이 있었다. 우리보다 조금 빨리 입주해서 살고 있던 지인 언니는 우리 집 사진을 보더니 자신은 하얀 집을 짓고 싶었다면서 우리 집이 예쁘다고 했다. 언니는 하얀 집을 못 지은 것을 못내 아쉬워했지만 내 눈에는 언니의 검은 벽돌집이 참 예뻐 보였다. 언니가 집을 위해 수고했을 시간을 생각하면 너무 값져 보였다. 아, 언니도 우리 집을 보며 같은 마음이었겠구나. 우리가 서로 자기의 집에 대해 속상해하는 마음을 넘어 아름답게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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