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완벽주의자 만성 불안증 프리랜서 작가의 변화 이야기
#만성불안
#발표 잘 하는법
#떨지 않기
#걱정하지 않기
1. 마법의 주문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마법의 주문을 발견했다.
발표나 미팅조차 벌벌 떨며,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백지의 상태로 했던 내가 무려 카메라로 촬영하는 인터뷰를 단 한 번에 끝냈고, 무언가 작은 일조차 시작할 때 자리에 앉을 수도 없이 불안함을 느꼈던
내가 이 한마디를 떠올리고는 아무런 스트레스와 부담 없이 할 일을 가볍게 시작했다.
평생을 불안 속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일도 하고 생각도 해야 했던 내가 이 문장 하나로 확실한 큰 변화를 자겨왔다는게 너무나 신기했다.
모든 것은 생각 나름일까, 내가 발견한 이 주문은 사실 별거 없는 문장인데
<80프로만 하자>이다.
2. 만성 불안
불안은 내 인생의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근원은 찾을 생각도 하지 못했고 어떤 게 원인인지 모르고 불안이 원래의 내 성향이고 문제인 줄 알았다. "불안"은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부터 큰 부분까지 나를 잠식했으며 나중에는 불안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냥 내 일상이 되었다.
하루를 시작하며 눈을 뜨면 먼저 "지금 내가 일어나도 되나?"였다.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한테 아침마다 닥친 큰 문제는 "지금 이 시간에 일어나는 게 맞는 걸까?"였다. 계속해서 드는 생각은 "너무 빨리 일어난 거면 어떡하지", "늦게 일어난 거면 어떡하지"로 나의 불안은 양갈래로 뻗어나가 해야 될 일들의 목록을 떠올리고 내가 제시간 안에 할 수 있는지, 시간이 부족한지 등 계속해서 생각만 하면서 완벽하게 하루를 시작하지 못한 것을 시작으로 "오늘은 이미 버렸고 완벽하긴 글렀다라"는 생각을 매일 하게 만들었다.
정말 지치고 피곤한 일이다. 하루를 불안한 마음으로 시작해서 일을 하면서는 완벽하게 끝내야 하는데라는 생각으로 제때 일을 시작하지 못하거나 일을 하면서도 완벽하게 가는 과정이 아닌데.. 하는 생각으로 하루 종일 불안한 상태가 유지되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서도 불안했고 일을 하는 도중에도 당연히 100프로가 아닐 텐데 그 단계까지 빨리 도달해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4fhyQa9q8
3. 불안의 관계
일 뿐만이 아니고 거의 모든 일이 그러했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았고 오지도 않은 미래를 자꾸 떠올렸다. 불안은 내 삶의 일부였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과거의 이야기나 행동으로 유추해서 비극적인 결말을 떠올렸고 나는 나를 방어하기 위해 관계를 멀리하거나 끊어내었다.
4. 가장 힘든 것
프리랜서인 나에게는 큰 일들이 몇 가지 있다. 가끔 하는 미팅, 가끔 지원하는 사업에서의 발표, 가끔 하는 수업과 인터뷰 등 모두 나에게 주목되는 일이고 항상 말을 떨었다. 대학교 때는 디자인 학과였기 때문에 일주일에도 몇 번씩 발표를 해야 했는데 아무리 해도 자연스럽게 되지 않았다.
항상 떨렸고 말도 양같이 떨렸으며 시선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머리가 멍해졌다.
아직 하지도 않은 실수를 할까 봐 불안했다.
내 생각의 깊숙한 곳에는 완벽하게 해야 해라는 어떤 관념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릴랙스 하자, 별거 아니야, 장도연이 했던 말처럼 사람들을 그냥 x밥이라고 생각하자 등을 생각하면서 아무리 주문을 걸어봐도 무리였다.
5. 심리 상담에서
최근에 예술인 심리상담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그냥 내가 지금 힘든 것들을 얘기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내 생각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부분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패턴대로
생각이 들고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었다.
상담의 마지막 날, 선생님은 보은 씨의 불안은 없앨 수 없고 항상 있으니 이걸 어떻게 잠재우고 컨트롤하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불안한 사람들은 항상 미래를 걱정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할 필요는 없고 선생님의 대학시절 교수님이 해주었던 말에 대한 일화를 얘기해주시며 뭐든지 80프로만 해라.라는 말을 개인적인 사례를 통해 나에게 해주셨다.
어떤 내 생각의 고리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견고하게 계속해서 안쪽으로만 돌아가고 있었는데 그걸 관통해서 깨뜨려버린 느낌이었다.
내 생각의 중심에는 "항상 뭐든지 100프로 완벽하게 해내야 해, 과정은 완벽한 100프로가 아니니 필요 없어. 시간도 완벽하게 100프로 써야 해"가 있었다.
여기서 중요했던 건 완벽이 아니라 100프로였다.
시간에 대해 유독 아까워하고 알차게 쓰지 않으면 하루를 헛되이 보낸 것 같은
나의 기존 생각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이때는 그저 아빠가 자주 이야기하던
"시간이 아깝다"라는 말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단순히 시간을 꽉 채워야 한다는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뇌는 숫자에 더 민감한 것 같았다. "100프로 채운다"는 것이 내 세상 속의 정답에 가까웠다.
시간과 마찬가지로 어떤 일에서도 100프로를 꽉 채워야 효율적이다 라는 관념이 있었다. 그래서 외주나 스케줄을 짤 때 100프로 꽉 채우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꽉 채워서 알차고 효율적이게 시간을 쓰고 일을 할 수 있는데 왜 여유를 부리는 거지? 생각할 때가 많았다.
6. 110프로
선생님이 비슷한 일화를 이야기해 주셨는데, 자신이 어쩌다 보니 110프로의 일을 하고 있더라. 그래서 모든 부분에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라는 이야기였다.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나는 무엇이든 100프로로 채우면 계획되고 처리되고 완벽하게 해낸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무조건 100프로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마음이 편안하고 여유로울 때 말도 더 잘했고 떨지도 않았고 생각이 샘솟는 사람이었다. 100프로, 아니 110프로를 항상 채워 넣고 하려고 하니
중간에 실수가 나면 안 됐고 더 불안해졌던 것이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도 오늘 무조건 빨리 100프로를 채워야 해라는 생각 때문에 시작하기가 부담스러웠고 실패가 두려웠던 것이었다.
7. 80프로만 하자
그래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보자면 인터뷰와 수업에 앞서 80프로만 하자라는 문장을 떠올렸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말 마법처럼 카메라 앞에 섰는데도 심장이 쿵쿵 뛰지 않았고 준비한 답을 천천히 얘기했으며, 다음으로 말할 내용들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나에게는 처음 있는 여유로움이었다.
수업을 할 때도 머리가 하얘져서 말이 빨리 나가버리고 식은땀이 났었는데 정말 너무도 여유롭게 생각이 말로 나왔다. 처음 겪어보는 일에 계속해서 이게 뭐지? 무슨 일이지? 했다.
그냥 80프로만 하자라는 문장이 내 생각의 뫼비우스를 깨뜨린 것이다
아니, 사람의 생각은 말랑말랑 하니 유연하게 바꾼 것이다.
8. 불안에서 기대로
이 엄청난 문장이 앞으로 내 생활을 얼마나 바꾸게 될 것인지 짐작하지 못하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냥 80프로만 하자고 해서 쉽게 노트북을 열고 적고 있는데
나는 항상 끝내려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은 이렇게 글의 마무리를 짓는다.
걱정하고 불안할 필요 없이 쉽게 시작하고 쉽게 일하고 쉽게 하루를 시작하는 게 남의 일 같았는데 말이지.
지금은 내일 아침이 기대되고 다음 주가 기대되며 내년의 내 모습이 기대된다.
9. 추신
이렇게 아주 요약해서 한 편의 글로 적고 있지만, 내가 느낀 것은 사실 한 장의 글 이상이며 훨씬 깊고 감동적이다. 피곤하니까 80프로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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