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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Jan 12. 2018

말의 힘은 위대하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 리뷰

워킹타이틀의 영화를 만나러 가는 길은 항상 설렙니다. 워킹타이틀에서 제작하는 모든 영화를 본 것은 아니지만 제 감성을 흔들었던 몇 안 되는 영화들의 80%는 모두 워킹타이틀에서 제작했습니다. <브리짓 존스> 시리즈, <어바웃 타임>그리고 <사랑에 대한 모든것> 그리고 올해에 만난 <다키스트 아워>도 제 마음을 훔쳐간 영화 리스트에 포함시켜야 하겠네요.


영화는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던 암흑 같은 제2차 세계대전 속으로 들어갑니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군은 1940년 침공을 개시한 지 한 달 만에 폴란드와 네덜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프랑스의 대부분의 도시까지 점령한 후 영국의 턱 밑까지 치고 올라옵니다. 그동안 유화 정책으로 일관했던 체임벌린 총리는 결국 사임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의 뒤를 이은 총리로 독불장군이라 불렸던 처칠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영화 초반 부엔 당시 처칠이 영국 의회에서 어떤 평판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소개가 이어집니다. 괴팍한 성격에 알코올과 시가 없인 살 수 없었고, 자신의 정당인 보수당에서조차 탐탁지 않아했으며 국왕의 신임도 받지 못했던 처칠. 그런 그가 어떻게 영국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인물이 될 수 있었을까요?


"당신은 확신이 없기에 현명한 사람입니다"


배우 게리 올드만은 윈스턴 처칠을 스크린에서 완벽하게 재현해 냈습니다. 그는 자신을 처칠로 변신시켜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단 한 명, 분장 아티스트 가즈히로 츠지뿐이라고 생각했고 이미 은퇴를 선언한 그를 찾아가 자신을 도와줄 것을 설득했다고 합니다. 또한 매 촬영마다 새벽 3시에 촬영장에 도착해서 무려 4시간 동안 분장을 받았고 의상과 소품까지 직접 점검했다고 합니다. 외모뿐 아니라 그는 처칠의 명연설을 재현하기 위해 그의 목소리 톤과 제스처까지 수 십 번을 연습했습니다. 피나는 노력은 빈틈없는 연기를 만들어냈고 결국 골든 글러브 남우주연상이라는 영광을 그에게 안겨주었습니다. <다키스트 아워>는 이제 게리 올드만의 빠트릴 수 없는 대표작이 된 것 같네요.


(좌) 영화 속 처칠(게리 올드만), (우) 실제 처칠 모습


인상 깊은 장면이 너무도 많습니다. 승리의 V를 카메라를 향해 날리는 장면, 완벽한 연설문을 만들기 위해 홀로 고뇌하는 장면, 누가 들을까 봐 몸을 숙여 속삭이는 목소리로 전화선 너머에 있는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무기를 보내달라 요청했던 장면, 처칠을 향한 무한한 신뢰를 보내준 그녀의 부인 클레멘타인(제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더 눈에 띄었을지도 모르겠네요)의 모습, 밤샌 고민에도 답이 나오지 않아 지하철역으로 뛰어들어가 직접 국민들에게 의견을 묻던 모습까지. 그러나 그중 가장 잊히지 않는 건 아무래도 처칠의 연설 장면일 테지요. 이 장면에선 <변호인>의 송강호가 떠올랐고, <덩케르크> 후반부에서 처칠의 연설이 오버랩되었던 장면도 떠올랐습니다.


위급한 전시상황에서 그의 명연설은 영국 국민에게 두려움을 잊게 해주었고 용기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어쩌면 환상일뻔한)을 심어주었고 생각을 행동으로 이어지게끔 했죠. 말의 힘은 이렇게 위대합니다. 리더의 한 마디가 전시 상황에서 극도의 불안에 떨고 있는 국민의 몸과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말의 힘은 공포스럽기도 합니다. 나치의 연설을 떠올린다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에는 사람을 향한 진정성도 담겨있어야 합니다. 이 수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대중연설을 한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처칠의 괴팍하고 예민한 성격, 술과 담배를 옆에서 떼지 못한 것도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우린 결코 굴복하지 않습니다. 승리가 없으면 생존도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영화 기법적으로 크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상업영화로써 공식에 충실했고 충분히 관객을 장악할 수 있는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탄탄한 극본과 이를 표현해 낸 감독의 능력, 게리 올드만을 비롯한 모든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합니다. 어떤 이는 <변호인>의 영국 버전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국민의 뜻을 따른 처칠’이라는 내용의 당위성을 위해 만들어진 억지 감동을 짜내는 영화란 평도 있습니다. 후반부에는 조금 지루해하는 관객도 보았습니다. 부족한 부분도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칠이라는 인물로부터 또 당시 역사로부터 분명 얻을 수 있는 점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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