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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Nov 01. 2022

책임지려 하지 않는 사람들

여섯 살 쯤이었을 것이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던 나는 그날도 유치원에 갔다가 우산을 잃어버리고 집에 왔다. 벌써 3번째 잃어버린 건데도 우산을 어디 두고 왔냐는 엄마의 말에 나는 아주 해맑게 또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잃어버린 게 뭐 대수냐는 표정에 엄마는 이번에 세상의 이치를 제대로 가르쳐주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세워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 어찌나 셌는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떤 상황이었든 니 불찰로 일어난 일은 다 네 책임인 거야. 그러니 핑계 대지 마.


엄마의 의도(?)대로 나는 그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물건을 잃어버린 건 물건을 훔쳐간 사람 잘못도 있지만, 그전에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내 책임도 있구나. 그 훈육 덕분인지 나는 커가면서 내 것을 잘 챙기는 야무진 사람이 됐다. 그리고 뭐든 잃어버리면 내 책임이라는 강박과 불안도 함께 자랐다. 


가장 단적인 예로 나는 카페에서 혼자 노트북을 하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가방과 노트북을 다 챙겨 나간다. 다시 돌아와 그 자리를 앉을 수 없다 하더라도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물건이 없어지는 것보다는 낫다. 옆 사람이 내 물건을 봐준다는 보장도 없고 내 몸에 지니고 가는 것이 가장 확실하면서 불안하지 않은 방법이니까.


내 것에는 내 목숨과 내 가족들도 포함된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위험한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행여나 사고가 나게 되면 결국 그 선택을 한 내 잘못이 되니까. 그러다 보니 패러글라이딩처럼 다이내믹한 레저 활동은 꿈도 꾼 적이 없다. 수영도 할 줄 모르고 자전거도 최근에야 배웠다. 동생이랑 함께 자취하던 시절에는 통금시간을 정하기까지 했다. 동생이 행여 밤늦게 놀다가 사고라도 나면 그건 서울에서 동생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내 책임이기 때문이다.




취업을 하고 나서야, 그러니까 엄마가 어릴 적 말했던 그 험한 세상에 발을 들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 중에 '내 탓이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신입사원 시절, 나는 일만 터지면 일단 '죄송합니다. 제 잘못입니다'부터 말했다. 그랬더니 옳다구나 싶었는지 너도나도 하이에나처럼 덤벼들어 나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내가 경험한 이 사회에서는 책임을 인정하는 건 곧 호구가 되겠다는 말과 같았다. 내가 살아남으려면 죽어도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 않으며, '내 잘못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상황은 안타깝다'라고 영혼 없는 사과를 하며 그 상황에서 조용히 빠져나가야 했다. 그것에 내가 9년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 배운 '사회에서 생존하는 법'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발뺌하는 모습이 그렇게 꼴 보기가 싫었다. 회사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아마 '제 잘못 아닌데요'였을 것이다. 남 탓하는 소리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디서나 들렸다. 신입사원일 때는 어리바리한 신입이 잘못해서 그렇다며 나에게 본인 잘못을 떠넘기는 선배들이 있었고,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고 나니 이제는 선배가 잘못 알려줘서 그렇다며 무조건 선배 탓으로 돌리는 후배들이 생겼다. 우리 팀 잘못이 아니라고 슬쩍 발 빼려는 꼼수를 보이던 타 팀 사람들도 얄미웠다. 배울만큼 배우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어른들이 잘못을 회피하는 모습에 질려버려서 한때 사람은 모두 악한 존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퇴사를 하고 집에서 혼자 책과 씨름하는 일을 하면서 더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지 않게 됐다. 책에는 남 탓하는 사람보다 내 책임이라고 말하는 멋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진짜 어른들이 쓴 글을 보고 있으니 사람들에 대한 내 인식이 교정되는 듯했다. 사실 이 세상에는 '내 책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운이 나쁘게도 내가 그동안 못 만났을 뿐이지 세상은 선한 사람들로 가득하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이태원 사건 뉴스를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경악했다. 할 만큼 했고 책임질 게 없다는 행안부 장관의 말. 송구스럽지만 내 역할은 다 했다는 용산구청장의 말. 어쩌면 엄마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사회는 무서운 곳이고, 아무도 널 구해주지 않으며, 그러니 네 것은 네가 직접 지켜야 한다던 엄마의 그 말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살아남았지만 그 말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


155명의 목숨이 거리에서 사라졌는데도 관할구역 책임자도, 한 나라의 행정을 책임지는 장관도 남 탓을 한다. 책임을 회피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믿음이 뼛속까지 박혀있는 것일까. 나라가 국민의 목숨을 지켜주지 않는 곳. 그러니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곳. 슬프지만 한국 땅에 사는 한 나의 안전 민감증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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