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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고 Jul 13. 2020

어떤 호칭을 갖고 계신가요?



처음 대학생이 되던 해, 신나게 놀았습니다.


얼마큼 신나게 놀았냐면, 성적이 너무 안 좋아서 그나마 성적이 좋은 과목만 빼고 학점포기를 해야 했습니다. 아니면 학사경고를 받았을 것 같습니다. 1학년 때 학사경고 파란만장하지요? 전 심지어 과대표였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1학년을 마치자마자 군입대를 신청했습니다. 생각보다 영장은 늦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거의 한 학기 더 지나고 군입대를 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니, 엄청난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더 이상 놀 수 도 없고, 놀아서도 안 되겠더군요. 1학년 때 성적도 문제였지만, 인문대였기에 이대로 졸업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만족스러운 학점으로 복수전공과 조기졸업을 했습니다.


조기졸업이었기에 이런 학사모는 쓰지 못했습니다만..


졸업하자마자 바로 국내 유수의 MP3 제조업체에 입사를 했고, 그렇게 이름 뒤에 호칭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씨


맨 처음에는 직급이 없었기에 "~씨"라는 어색함 가득한 호칭으로 불렸습니다.


전 "~씨"라고 불리는 게 너무 싫었습니다. 갓 대학교를 졸업한 20대의 파릇파릇한 사회초년생에게 "~씨"는 참 부담스러운 호칭이었습니다. 다행히 이 부담스러운 시기는 금방 지나갔습니다. 회사의 업무는 적성에 아주 잘 맞았습니다. 신입사원이라서 에너지도 넘쳤고 많은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6개월도 안되어 사회생활에서 처음으로 진짜 호칭이 생겼습니다.



이주임님~


네. 맞습니다. 주임이라는 호칭이 생겼고, "~씨" 보다는 훨씬 편하게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주임이라는 직급의 명함까지 생기니 기분이 참 묘하더군요. 그리고, 더욱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장을 많이 옮기지 않았습니다. 처음 입사한 직장에서 오랜 시간이 흘렀고 호칭은 다음과 같이 변하였습니다.



이대리님~
이과장님~


지금 생각해보면 대리라는 호칭은 너무 친숙했지만, 과장이라는 호칭은 참 많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일도 대리일 때가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 맘에 들었던 회사라서 옮길 생각은 없었지만 점점 변함이 없는 직장생활이 지루해서 과장일 때 퇴사를 하고 유통업체에 입사를 했습니다.


유통업체에서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조그마한 업체였고, 대표님이 너무 좋은 분인 것 같아서 이 회사에서 오래오래 일하자라는 생각으로 정말 책임감을 갖고 일했습니다. 그리고 호칭은 어느새 다음과 같이 변해있었습니다.



이차장님~ 그리고, 팀장님


저는 팀장이라는 호칭이 참 좋았습니다. 주임, 대리, 과장, 차장으로 불리는 것보다 팀장으로 불리는 것 이 가장 좋았습니다.


책임감이 느껴지는 호칭이면서 동시에 부담 없는 호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회사에서도 팀장님이라 불렸고, 거래처에서도 팀장님이라고 불렸습니다.


팀장이라는 호칭이 참 오래될 줄 알았습니다.


회사도 맘에 들었고, 모든 게 문제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람 보는 눈이 부족했었나 봅니다. 욕심 많고 속 좁은 대표님은 제가 부담스러웠는지 휴가 중인 어느 날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하였고, 저는 그렇게 쫓겨나듯이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회사의 매출을 2배 이상 끌어올리고 새로운 거래처를 열심히 만들었고, 무엇보다 회사에 아무런 불만이 없던 저를 대표님은 왜 그렇게 모질게 내보냈어야 했을까요? 함께할 수 없었다면, 가는 길 서운하지 않게 보내주셨으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제 욕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 번복하기에는 책상도 다 빠졌고, 메일 계정 삭제되었으며, 직원들에게 퇴사처리에 대한 것 도 다 공지한 상태라서 다시 돌아갈 수 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좌절할 수 도 없었습니다. 저는 가장이었으니까요.


억울하고 분했던 생각도 잠시 바로 일거리를 찾다가 창업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원하지 않게 C 레벨의 호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엄청난 진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대표가 되었습니다.



이대표님~


네. CEO 입니다. 대표라는 호칭은 정말 엄청난 부담감이 느껴지더군요.


너무나 부담스러워서 초반에는 명함을 팀장과 대표 2개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업체에 1인 기업이라고 말하는 것 도 너무 싫더군요. 그래서, 팀장이라는 명함을 주로 사용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어차피 계산서 발행하면 다 밝혀질 텐데 무엇이 아쉬워서 대표이면서 대표라는 호칭을 쓰지 못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팀장이라는 호칭은 싹 걷어버렸습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대표라는 부담스러운 호칭도 금방 적응이 되더군요. 오히려 그 전의 호칭들이 더 어색해지는 시점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사회생활에서 마지막이 될 것 같은 호칭을 얻었는데, 요즘 다른 호칭이 생겼습니다.



개발자님~


외부업체들에게 그동안 축적한 경험 및 코딩으로 웹 개발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업체들의 어려운 문제점을 해결해주다 보니 개발자님이라는 새로운 호칭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 호칭이 너무 맘에 듭니다.


요즘은 코딩으로 먹고 삽니다.


혹 누군가는 대표라는 호칭을 갖는 게 희망사항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표는 사실 누구나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볼 때, 창업하면 원하지 않아도 대표라는 호칭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개발자라는 호칭은 다릅니다. 원한다고 쉽게 얻을 수 있는 호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더욱 개발자라는 호칭에 걸맞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해서 ~씨라는 호칭에서 개발자님이라는 호칭까지 생각해보면 참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호칭이 붙게 될까요? 생각해보는 것 도 너무 재미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호칭으로 불리고 있고, 어떤 호칭으로 불리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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