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좋아하는 불교계의 격언 중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아주 간단한 마주침이라도 전생에 쌓인 인연이 쌓이고 쌓여 이번생에 그렇게 다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만나는 모든 생명을, 찰나를 소중하게 여기도록 해준다.
어제는 하루가 매우 길었고, 힘들었다. 사람이 싫어지는 그런 날이 있는데, 어제는 그런 하루였다.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일이 있어서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여러모로 애를 써야 했다. 해가 지고서야 애써 진정시킨 마음으로 서재에 앉아 책을 읽었다. 헨리 나우웬의 Discernment를 읽다가 다른 책에서 인용구를 찾아야 할 것이 있어서 사놓고 아직 한 번도 펴보지 않은 책을 찾아들었다. 리처드 로어라는 신부님이 쓴 Everything Belongs라는 책으로, 아마존에서 중고책을 샀던 터였다. 피곤해서 뻑뻑한 눈을 비비며 책 첫 장을 펴는데 명함이 툭, 하고 떨어진다. 그리고 명함이 꽂혀있던 첫 장의 빈 페이지에 책의 전 주인이 메모를 써놓았다.
"14년 전 노스레이크 칼리지가 이 책을 빌려줬고, 그 나눔의 행위로 인해 나의 여정이 시작되었어. 나의 여정은 슬픔과 기쁨으로 가득했어, 모든 참된 여정이 그래야 하듯이 말이야. 이 책에 나에게 왔듯, 너도 나에게 왔어, 나의 친구. 나는 더 이상 "왜?"냐고 묻지 않고, 그저 이 축복을 감사하게 생각할 뿐이야. 너도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여정을 걷기를. 내 삶의 일부가 되어줘서 고마워. 너의 친구, 엔리케."
내 느낌은 책의 전주인이 책을 보내면서, 다음 받을 이에게 축복을 나누는 내용이었다. 힘든 하루의 끝에 만난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낯선 이가 언제 썼는지도 모를 노트를 읽으며 나는 아주 깊은 연결됨을 느꼈다. 나의 힘든 하루가 모두 위로받는 느낌이었고, 내가 느끼던 회의감과 피로감이 전부가 아님을 마치 신이 알려주는 듯했다. 알지 못하는 이가 그토록 깊은 우정을 느끼게 할 줄은, 이전이었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다. 얼마나 깊은 감동의 파고를 느꼈는지, 그 울렁거림이 잦아들 때까지 한참 동안을 조용히 앉아있어야만 했다.
명함에 그의 이름은 엔리케였고, 그는 텍사스에 있는 노스레이크 칼리지의 심리학 교수였다. 명함의 이메일 주소로 이메일을 보내려 했으나, 모든 것을 다 아는 구글에 그의 이름을 찾아보니 그는 2022년에 학교에서 퇴직한 터였다.(전혀 모르는 사람을 구글링 해보는 나의 스토커 기질) 그리고 다행히 그를 페이스북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로 친구신청을 보냈고, 다행히 그는 일찍 친구신청을 받아주었다. 사진과 함께 내가 올린 페이스북의 포스트에서 우리는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제는 서로를 친구라 부른다.
그를 만나러 텍사스에 방문해야겠다. 그 또한 나의 친구신청을 받고 나와 이야기하기 전 먼저 내 페이스북 포스트를 보고 감동이 밀려와 한동안 가만히 앉아만 있어야 했다고 했다. 은퇴 후 그 또한 자신에 대한 의심과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는 오늘 아침에도 삶의 의미를 의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오래전 흘려보낸 책의 노트로 인해 인생의 다른 하루를 맞이한 나를 만나게 되었고, 그것이 다시 그의 인생을 기쁨으로 채웠다고 했다. 그는 나의 삶을, 나는 그의 삶을, 의미로 채워주었다. 이것이 인연이 아니면 무엇일까.
우리를 상처 입히는 것은 사람이고, 우리를 치유하는 것도 사람이다.
둘 중 무엇이 될 것인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나의 하루를 회의감과 의심으로 채우게 했던 것도 한 사람이고,
그 하루의 마지막을 기쁨과 감사로 마무리하게 했던 것도 한 사람이다.
나는 치유와 사랑, 기쁨과 감사를 선택하련다. 이왕 선택할 거, 이 인생, 기왕이면 좋은 것으로.
낯선 이와 친구를 맺을 수 있는 여정은 나쁘지 않은 여정이다.
이 작은 기적이 얼마나 마음을 기쁨으로 떨리게 하는지.
세상이 아름답다고 작은 노트가 나에게 얼마나 크게 이야기해 주는지.
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