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솦 솦 Feb 03. 2024

고향

"고향에선/ 눈 감고 뛰어도/ 자빠지거나 넘어질 땐/ 흙과 풀이 안아준다." 

김준태, <고향>


동생이 새벽 비행기를 타고 십여년 만에 한국으로 떠났다. 정확히는 11년만이다.

심드렁하게 그다지 가고 싶지 않다던 동생은 막상 여행을 결정하고 채비를 시작하자

자신도 알지 못했던 그리움과 흥분감에 준비기간 내내 신나 보였다. 

한국을 가면 고궁을 방문하고 맛있는 과자를 짝으로 사서 먹을 것이며,

전철역 앞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먹겠다고 내내 노래를 했다.

수원에 가서 왕갈비를 사먹을 것이고, 갈비가 맛있으면 다시 가서 사먹겠다고 한다.

십년을 만나지 못한 중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친구를 호텔에 불러 몇날 며칠을 함께 놀 것이며,

친구와 함께 어릴적 했던 우스운 일들에 다시 도전해볼 꿈을 꾼다.

십년을 만나지 못한 이모와 고모들과의 연락에 지쳐하면서도 가족들과의 연결은

무언가 그녀의 정서를 맑게 채운다. 

오래전 돌아가셨으나 비자 문제로 장례조차 참석하지 못한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볼 생각을 나누는

그녀의 목소리는 건조하지만 계획에는 그리움과 정성이 차 있다.

어머니가 모셔진 작은 공간에 오래전 넣어놓은 우리의 사진은 

어느덧 빛이 바래어 사진을 갈아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구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가장 행복한 때의 우리를 채워넣었는데, 

그 사진이 바랠만큼, 시간이 흘렀다.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준비하는 동생의 바쁜 발걸음에는 영문모를 기대감이 보인다.


그 모든 것을 기대하게 하는 것이, 아마도 자빠지고 넘어져도 나를 안아주는 고국의 흙과 풀일 것이다.

눈을 감고 뛰어도 아는 그 맛일테고, 눈을 감고 뛰어도 보이는 풍경일테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이름모르는 험준한 산들도 아마 동생의 눈에는 아름다운 어미의 품으로 보이겠지.

몇해전 한국을 갔던 내게 그러했던 것처럼.


한국은 내게 상반된 감정을 항상 안겨준다.

지긋지긋하고 고통스러운 공간,

그리고 따뜻하고 보드라운 어머니의 품 안처럼 안락하고 따뜻한 공간.


십년만에 다시 만나는 고국의 공기가, 풀과 흙이

동생을 포근히 안아주기를.


안타깝게도 지금 한국은 미세먼지로 공기가 좋지 않다고 한다. 

날씨 앱으로 확인한 공기의 오염 정도는 작년 이곳에서 모든 관공서가 문을 닫았던 수치와 같다. 

캐나다에서 불어온 산불의 재로 시카고의 하늘이 검게 물들었던 때. 

그런데 정상적으로 한국은 여전히 돌아간단다. 

디스토피아에 사는 우리에게 이제 고국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는 것도 사치가 되어버린 것이 조금은 씁쓸하다.


아, 그립고도 지긋지긋한 고향이여.




매거진의 이전글 중년 발레리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