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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봉씨 Nov 16. 2021

비교

16:20. 언니에게 전화 오다.

여보세요.


-나 너무 늙었어.


뭐야. 갑자기.


-하아, 오늘 촬영 메이크업을 다녀왔거든. 20대 남자인데 젊고 자신감 넘치는 거야.


누군데. 모델?


-응. 프로 모델처럼 알아서 착착 포즈도 취하고 너무 잘했어. 그런데 나는 피부가 늘어져있는데, 그 애는 뼈에 피부가 착 붙어있는 거지.

패션 스타일도 너무 좋아. 그 젊음과 끼를 보니까 자신감 넘치던 젊은 시절이 생각나서 진짜 우울하더라고. 촬영에 집중이 하나도 안 되더라니까.


그 정도로?


-그냥 내가 작아지는 느낌이었어. 여자도 아니고 남자애 앞에서 작아질 건 뭐야. 연예인을 봐도 그런 생각 들지 않았거든.

그런데 젊음은 어쩔 수 없나 봐.

클럽 음악 틀어놓고 사진 찍었는데, 너무 잘했어. 그럼 내 입장에선 빨리 끝날 수 있으니까 좋아야 하는데 심하게 우울하더라고.

음악은 신나는데 내 기분은 다운되어 있고, 거울을 보는데 내 얼굴은 땅으로 내려가 있고 팔뚝도 늘어져있고...


왜 이래.ㅋㅋㅋ


-걔는 얼굴이 피부가 얼굴뼈에 딱딱 붙어 있는 게 느껴지는데, 나는 분리되어 있는 게...ㅋㅋㅋㅋㅋ


뭐야, 하하하 왜 20대랑 비교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생전 그런 생각 안 했는데 오늘 유독 심했어. 얼굴 다 뜯어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분이 너무 안 좋아. 너무 우울해서 전화한 거야.


언니가 미용 쪽에 있으니 잘 꾸민 사람들 많이 봐서 더 그렇겠지. 연예인끼리는 얼마나 더 심하겠어.


-그러니까. 남자애 여자 친구도 구경을 왔는데, 그냥 모자 푹 눌러쓰고 추리닝을 입고 왔어. 별거 없었는데 젊다는 이유 하나로 부럽고 예뻐 보이더라니까.


늙었다, 늙었어


-'난 자연스럽게 늙고 있다'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와, 진짜 거울 다 때려 부수고 싶었어. 얼굴 다 찢어버리고 싶고.ㅋㅋㅋ


나는 헬스장에서 그래. 누구랑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힘들어서 땀 닦으려고 마스크 내리면 깜짝깜짝 놀라.

언닌 리프팅이나 해라.


-그러려고.


언니 한 거 보고 예쁘면 나도 고려해 봐야지.


-같이 가서 할 생각은 없는 거냐.


무서워. 게다가 한 번 하면 계속해야 하잖아. 몇 달 만에 다시 원래 얼굴 되면 그 괴리감 어쩔 건데. 돈이 화수분도 아니고.

이제는 나이를 인정해야지.


-뭐야. 나 마흔둘인데.


차라리 내가 일적으로 괜찮은 위치에 자리가 잡혀있으면 외모 생각이 덜 하지 않을까?


-왜?


내 나이에 맞게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거니까 딱히 부러울 게 없는 거지.


- 그런 거 다 떠나서 내 얼굴이 늙었다고!


-얼굴에 대한 신경도 안 쓸 것 같아. 내가 어떤 능력 하나는 출중하다면.


...언니보다 내가 나이 더 많아 보이는데.


나도 말은 이렇게 했지만 언니의 기분이 매우 이해가 간다.

언니가 어려서부터 인기가 많아 남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기에 나이 듦이 우울할 수 있다.

더군다나 미용 쪽에서 일하고 있으니 고운 인물들을 얼마나 많이 접하겠어.


그런 의미에서 내 분야엔 집순이 집돌이들이 많아 외보보다 일에만 파묻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지만 일에만 파묻혀 있기 때문에 결과물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은 외모 못지않게 찾아온다.

종류만 다를 뿐 우리 모두 사회인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릇에 담겨 언제든 회전 탁자에 올라 비교를 당하는 위기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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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생 때 알고 지냈던 - 지금은 40대 중반이 된 어떤 광고 사진작가분은 계속 나이와 건강 얘기를 꺼낸다.

"나 몇 살로 보여? 내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래 보여? 너는 한, 33? 34살까지로 보인다."

"저 집에 있을 땐 제 나이로 보여요."

"건강은 잘 챙기니? 영양제 많이 먹는다고 좋은 건 아니라는 거 알지? 물도 하루에 1.5 리터면 충분해. 근거가 되는 영상을 내일 카톡으로 보내줄게."

원치 않게 얼굴 평가를 받고 돌아오면 이젠 예쁘다 안 예쁘다의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늙었다 안 늙었다를 말하는 나이라는 것 굳이 자각다.

내가 어린 친구들을 흐뭇하게 보며 '젊어서 예쁘."라고 생각하것만 봐도,  어릴 적  '어르신'의  위치에 내가 도달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중력에 그만 충실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보다 그런 외부의 말들에 신경 쓰지 않고 스스로에게 집중하 사람이고 싶다.

외모가 아닌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허례허식 없이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응원하며 오래오래 사랑하고 싶다.

사는 이유를 늘려가면서 말이다.


100가지 걱정 중  95개 이상은 괜한 걱정이라는 걸 잘 몰라서 우리는 쓸데없이 많은 생각을 하고 닥치는 대로 걱정하는 것 같다.

굶고 사는 걱정이 아니라면 내 마음과 결단으로 해결 가능한  10개 정도일 것이고 나머지는 잡생각일 거다.


나는 깨달은 사람이 아니고, 단상을 적어야 스스로에 대해 되돌아보는 사람이라 여러 부분에 반성하고 또 다짐한다. 


-오늘 하루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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