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가상화폐 긴급토론회를 보고
오늘 JTBC 긴급토론회에서 몇 가지 느낀 포인트가 있다.
방송에서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유시민 씨가 상대측을 향해 조소를 보였다. 그 웃음을 '비웃음'이라고 평가절하하긴 그렇고 이것은 뭐랄까. 어른의 미소. '인간'과 '사회'를 위하여 애써오고 지켜온 사람이 그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얘야, 인생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미소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장난감'을 만들어내는 철부지 엔지니어/수학자들을 향한 경고 같은 것이다. 그러나 엔지니어들의 세계에선 쿨한 장난감을 만드는 것만큼 멋진 일은 없다.(그게 당장 돈이 되던 안되던) 인간과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이나 그런 것들이 이들에게 없는 것도 사실 어느 정도 사실이다. 재미 혹은 흥미 아니면 주체 못 한 자아실현의 결과일 뿐이다.
이제는 곧 유시민이 보수가 된다. (지금 보수는 보수를 가장한 도둑놈들이니까, 오해의 소지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른들 눈에는 '요즘 세대'들이 애국심이 없어 보이는 그것이 방송을 보며 다소 떠오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여하튼 이 가상화폐는 이후에 어떻게 될지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그걸 정확히 아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인정해햐하고..
유시민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 힘이 일부의 새로운 소수에 의해 독점된다는 것이고, 현재 가상화폐를 좋게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부류(쉽게 말해 채굴자 혹은 비트코인 소지자)에 속한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가상화폐의 최초 그룹도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그렇지만 완전히 사실은 아니다. 비트코인이 전혀 없는 사람 없는 사람도 이 놀라운 가능성에 고양된다는 사실을 '억지로 보지 않으려'해서는 안된다. 토론 후 반응의 절대다수가 '김진화 대표는 업계 사람(돈 부은 사람)이라서 업계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다.
이 어른의 조소. 그들이 일생을 다해 지켜오던 가치가, 어느 순간에 재미로 장난감을 만드는 엔지니어에게 역전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한다. 그것이 옳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손석희 : "두 분은(유시민 측에게) 다시 말하면 블록체인 기술은 여기뿐만이 아니라 다른데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잖아요? 그럼 예를 들어서 어떤 쪽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인가? 예를 들어 말씀해 주시고. 그런데 말하시고 나서 들은 사람들이 '그게 영 뭐 누가 봐도 아니야. 그건 정말 이상론일 뿐이야' 하면 그 논리가 굉장히 약화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걸 생각하고 그럼 예를 말씀해 주시고."
아 이 놀라운 진행을 정말 몇 번이고 다시 돌려 들었다. 이 진행 한 꼭지가 없었다면 오늘 토론회는 정말 후일에 봤을 때 웃음거리가 됐을 가능성도 있었는데. 이 진행 때문에 죽어가던 토론이 살아났다. 이 진행 이후 유시민 진영은 얼마나 속으로 식은땀을 흘렀을까. 미소가 사라졌다. 어른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바보가 된다. (한 분은 결국 경고를 무시하고 지뢰를 밟았...)
2:2로 한 시간 이십 분을 마치는 마지막 발언은, 양 진영의 대표가 하기로 했다. 유시민 측은 유시민이 했고. 비트코인 측은 누가 했을까? 나는 여기서 너무 큰 긴장감이 생겼다. 이 마지막 발언을 정교수가 하면 안 된다. 김진화가 해야 한다. 그러나 '교수'라는 직업은 우리나라 존경심 서열에서 정점에 있는 직업이다. 과연 이 권위를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을까? 김진화가 잠깐 눈치를 보다가 "규제 관련이니까 제가 말씀드릴까요" 하고 정교수는 쿨하게 마지막 발언권을 넘긴다. 아 이 장면에서 한국의 희망을 봤달까.
하나 실소를 금할 수 없었던 장면은 한교수가 교통사고방지 시스템을 블록체인으로 만들면 어떠냐고 말한 장면인데, 뭔말인지 알겠지만 당연히 그럴 필요가 없다. 블록체인이 주목받은 이유는 (도둑맞을 것을 걱정하는) '내 지갑에 누구도 손댈 수 없다'라는 점이다. '돈'을 보상으로 하기에 채굴을 하고 '돈'을 누군가 뺐어갈 수 없기 때문에 블록체인이 주목받는다. 교통사고방지 시스템을 누가 위변조를 하려고 하겠나. 테러조직 정도의 정신 나간 싸이코가 아니고서는 니즈가 없다. 그리고 그걸 조작해서 사고 1대 더 나게 하느니 도심에 폭탄을 터트리고 말지.
이 기술은 ‘돈’과 엮지 않고는 참 풀어지지 않고, 또 일련의 사태는 결국 우리 사회, 모든 삶의 중심이 사실은 '돈'이었다는 것을 만천하에 셀프 증명해버린 사건이다.
[1/21 수정] : 몇몇분들이 이 부분에('한교수 발언에 대한 조소') 같은 지적을 주시는걸로 봐서 제가 이쪽에 전문성이 부족하고, 그러다보니 표현하는데 있어 잘못된 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교수의 발언을 이야기 한 이유 그리고 그 이야기를 4번 파트에 넣은 이유는, 현재 가상화폐/블록체인 기술은 '나의 돈'의 다음세대, 라는 것에 기반을 두고있다. 탈중앙화 또, 그로인해 해킹/도난이 불가하다는 부산물 등이 다른요소가 아닌 '나의 돈'에게 그것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열광하는 이유가 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싶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내 돈'은 국가에서 통제받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내 돈은 은행에서 관리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은근히 무의식중에 오랫동안 가져왔던 의문 '왜 그래야 하지? 왜 통제하지? 왜 맘대로 돈을 찍어내지? 환전은? 해외송금은?' 등등의 의문에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아도 돼' '와 정말이야? 와 정말이네.' 인간이 오랫동안 가져왔지만 이렇게 하는게(국가의 통제안에) 그래도 베스트라고 어쩔수없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보이니 열광하게 된거라고 생각되요. 이 니즈가 완벽히 맞아떨어진다. 그러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너도나도 이 기술을 발전시킨다. 내가 발전시키는 이것이 인류의 생활양태를 바꿔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런데 도로교통 상황같은 '공공의 이익 및 안전에 도움을주는' 같은 것은 이 니즈가 저는 충분치 못하고 봅니다. (앞으로는 어찌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니즈나 분위기가 형성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간단한 예를 들어 국가에서 '지도'를 제공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 지도는 못믿겠어. 우리들만의 믿을 수 있는 지도가 필요해. 이런 니즈가 있었냐는거죠. 블록체인 지도가 등장했을때 사람들이 정말 열광하겠느냐. 이 기술에 뛰어들겠느냐. 왜 그걸 꼭 블록체인으로 해야했어? 라는 질문을 피할수 있겠는가.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었습니다. [1/21수정마침]
비트코인의 현재는 누가 봐도 투기 상황 즉 도박판이 된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너무나 안타깝다. 그동안 끊임없이 팽창할 대로 팽창해온 일확천금의 꿈이 이렇게 어이없이 전국민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와 버렸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한국.. 돈을 향한 열망 때문에 너무 안타까운 사태가 벌어져버렸다. 일본 여행을 갈 때마다 수많은 빠찡꼬에 혼이 나간 듯이 습관처럼 앉아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고, 그것이 불법인 우리나라에 사는 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렇게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의 지갑에서 소중한 돈이 빠져나가버리다니.. 이미 늦어버렸다..
돈 때문에 빵에 관심도 없는데 파리바게트를 차리는 한국, 프랜차이즈가 돈은 다 가져가는데 오랫동안 모은 퇴직금을 점포 차리는데 다 쓰는 사람들, 정말 장인정신이 깃든 과자점을 발견했을 때 그것이 언제 사라질까를 걱정해야 하는.
내가 맛 없는 빵을 어쩔 수 없이 사 먹으면서도 그들을 비난할 수 없었던 것은, 사회 시스템상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안정적인 돈을 만들 수 없는 현실 때문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증발될 줄은.
이 토론이 아쉬운 점들도 많았겠지만 이 정도 대화까지 온 것도 정말 기적적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존경스럽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한 가지 질문이 빠졌었기 때문인데. '10년 후에 우리나라만 빼고 전 세계가 가상화폐를 쓰고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우리가 이놈의 Active X 왜 아직도 쓰고 있나?
얼마 전 방문한 중국에선, 심지어 그냥 복도에 떡하니 있는 안마의자까지도 위챗(중국의 카카오톡)에서 안마의자에 있는 QR코드 찍으면 위챗페이로 지불되고 이용 가능하다. 중국에선 포장마차도 알리페이로 그냥 결제하고 먹는 것은 이제 많이 알려졌다. 나는 택시에서 내릴 때 카드도 이제 그만 주머니에서 꺼냈으면 좋겠다. 우버를 타고 싶다. 우리 집에 에어비엔비로 외국인 하룻밤 재워주고 한국음식도 한번 해주고 싶다.
유시민은 정말 공부를 많이 했다. 한두 명 하고 공부를 한 게 아니고 많은 사람과 많은 공부를 했다. 그리고 내가 존경할 수밖에 없는 점은 '해결방안'을 함께 고민했다는 점이다. (그게 맞던 틀리던) 그저 까고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사회를 향한 고민과 대안 없는 비난이 아닌 진심으로 대안을 고민하는 자세.
한 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마음은 일반인과는 한 가지 차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자괴감이다. 개발자들이나 수학자들이라면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에겐 왜 저런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가. 어떤 기술을, 어떤 방향으로 배우고 발전시켜 나가야 이 사회 속에서 엔지니어로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일까? 저들은 나와는 유전자가 다른 사람들일까.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이번 긴급 토론회 공부도 많이 되었고. 참 감사하다. 역시 손석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