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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드메르시 Aug 30. 2016

#7, 프라하 가는 길. 개고생의 시작.

완벽한 여행은 남의 SNS에만 존재할 뿐이다 - 모든 요일의 여행 中

완벽한 여행은
남의 SNS에만 존재할 뿐이다.
김민철, 모든 요일의 여행 中



잠이 오지 않았다.

아니 잠이 들 수가 없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새벽 다섯 시. 방에서 캐리어를 끌고 나갔다.

전날 체크인할 때는 여직원이 있더니 체크아웃을 하러 가니 풍채 좋은 흑인 남자가 카운터에 있었다. 이렇게 일찍 나오는 나를 보고 놀란 눈치다.


지하철 첫 차가 몇 시부터 다니는지 물어보았다. 6시쯤이면 다닌다고 했다. 호스텔 로비에 조금 앉아있다가 밖으로 나섰다. 브뤼셀에서 쾰른까지 가는 아침 7시 28분 열차는 필수 예약 구간이었기 때문에 전 날 미리 예매를 하지 않으면 안 됐었다. 하지만 나는 어제 예매를 못했기 때문에 최대한 일찍 미디 역 매표소에 가서 표를 살 수 있는지부터 확인을 해야 했다.



자칫하면 이 기차도 못 탈 수도 있는 상황.

발걸음을 재촉했다.

역에 도착했다. 매표소로 달려갔다.

자동문이 열리고 안에 있던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간절하게 외쳤다.

" 아 워너 고 투 쾰른!!!!!!!!!!! "



그러자 엄청 덩치 크고 밝은 아저씨가 " 오우!!! 쾰른!!!!! "이라고 하며 나를 기계로 데려갔다. 나는 아,  됐나 보다. 티켓이 있나 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 보니 번호표 뽑는 기계였다. 번호표를 뽑아서 나를 창구 아주머니에게 데려다주셨다.

내가 1등이었다.



다행히 브뤼셀에서 독일 쾰른으로 가는 기차표는 있었고 탈리스를 타고 나는 일단 쾰른까지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었다.



브뤼셀-> 쾰른 -> 베를린 -> 프라하

두 시간 뒤에 쾰른에 도착하면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로 환승을 하고 또 베를린에 도착해서 프라하로 가는 기차로 또 환승을 해야 했다. 총 두 번의 환승. 11시간의 이동시간.

내가 한국에서 유럽으로 올 때 비행시간이

14시간이었는데. 하아...




나의 유레일패스. 11월5일이 나의 이 이동경로. 나는 참 정신이 없긴 없었나보다. 시간도 엉망으로 적고.



쾰른에서 무사히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이 기차는 독일 기차였는데 아주 쾌적하고 시설도 좋고 또 좌석마다 콘센트도 있어서 배터리 충전도 맘껏 할 수 있었다. 나는 유레일 1st class 였기 때문에 1등석으로 갔다.

( 만 26세 이상이면 무조건 1등석만 구매할 수 있는 거다. )




기차안에서 사 먹은 오렌지 주스와 탄산수.



직원이 와서 마실 것을 먹겠느냐는 말에 1등석은 공짜로 주는 줄 알고 시킨 탄산수와 오렌지주스. 아니나 다를까 가져다주면서 영수증도 가지고 오더라. 6유로. 그래. 공짜가 어디 있겠어. 새벽부터 물 한 모금 못 마셨었기 때문에 오렌지주스 원 샷. 클리어.




젤리, 하리보.


독일 기차라서 그런지 직원이 계속 하리보를 가져다준다.

나는 평소에 원래 젤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배가 고프니까 이것도 꿀맛이더라.

나의 이번 여행 일정에는 독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 날 덕분에 비행기 경유지부터 시작해서 독일의 웬만한 도시는 다 스쳐 지나갔다.  뮌헨, 쾰른, 베를린, 드레스덴, 프랑크푸르트까지.



창 밖으로 계속 보이던 독일의 모습.( 꼭 안과가서 시력검사할때 보는 기계 속의 그림과 비슷했다. )







정말 지쳤다. 말이 11시간이지 진짜 너무 힘들었다.

원래 나는 집 앞에 잠깐 나갈 때도 항상 이어폰을 가지고 가서 음악을 들으면서 다닌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는 음악을 한 곡도 준비해 가지 않았다. 평소 나는 스트리밍 정기결제를 통해 음악을 듣는데 사실 당연히 해외에서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인천공항에서 휴대폰을 정지시키고 유심칩을 대여해서 비행기에 올랐었다. 스트리밍이 될 리가 없지. 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11시간을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은 정말이지 지옥 같았다. 혹시나 해서 나의 네이버 n드라이브에 들어가 보니 아주 아주 예전에 올려둔 노래 한 곡이 있었다.


어반자카파의 Beautiful Day.

사막의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나는 급하게 다운을 받았다.

한 곡 다운로드하는데 5분이 걸린다.

11시간 동안 그것만 들었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한국에 있는 절친한 동생 엄띠에게 카톡을 보냈다.

내 n드라이브에 음악파일 좀 올려달라고.

미쳐 버릴 것 같다고.

엄띠는 회식 중이라고 했다.

집에 가서 올려준다고 했다.

11시간 동안 1곡만 들었다.

내 유럽여행 주제곡인 줄 알았다.







계속 펼쳐지던 창 밖의 풍경.

예뻤다. 예쁘긴 예쁜데 하아... 힘들었다.

베를린에서 프라하로 가는 기차를 환승을 해야 했다. 환승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단 10분! 

바로 내려서 전광판을 찾아서 다음 기차 플랫폼을 확인한 후 기차로 바로 뛰어가야 했다. 도착 10분 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캐리어를 챙기고 문 앞에서 대기를 했다.


거의 역에 다 도착을 했는데 이게 웬걸.

기차에 문제가 있다고 역을 코 앞에 두고 아니, 플랫폼을 코 앞에 두고서는 기차를 세우고 수리를 시작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유럽의 기차가 연착되기로 악명이 높다지만

이건 아니잖아.



한국의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이 상황을 설명했다. 내 친구들은 초인적인 힘이 나올 거라고 했다. 사람은 극한 상황에 닥치면 하게 된다고. 걱정해주지 않았다. 역시 내 친구들. 세다.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서고 문이 열렸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3분. 

나는 20Kg짜리 캐리어와 가방 두 개를 들고 계단을 미친 듯이 뛰어올라갔다. 에스컬레이터를 찾을 시간 따윈 없었다. 한 층을 다 올라가서 전광판에 플랫폼을 확인하고 또 그것들을 다 들고 미친 듯 뛰어 내려와 플랫폼으로 뛰어갔다. 캐리어를 끌 시간도 없었다. 들고뛰었다.



가까스로 기차를 탔고 나는 탈진했다. 내가 야간열차만 놓치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또 너무 무섭고 외롭고 기차에서 진짜 눈물 여러 번 흘렸다. 진짜 힘들어서 내가 내 돈 내고 왜 이 개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컸다. 게다가 내가 유럽여행을 갔던 시기에는 IS와 난민들의 유입으로 인해 유럽이 시끌시끌했던 상황. 역에서 갑자기 무장을 한 군인들이 기차에 올라타서 사람들을 검사를 하기도 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 집중적으로 살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뺑글이 안경을 쓰고 고개를 쭈욱 빼고 살펴봤는데 나를 본 군인은 동글동글 동양인이라 그런지 검사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나는 고개만 들면 무조건 프리패스였다.







pm 7:00 드디어 프라하 도착. 장장 11시간의 대장정이 끝이 났다.

숙소는 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한인민박이었다. 숙소로 가는 길도 쉽지만은 않았다. 울퉁불퉁한 프라하의 돌 길 때문에 숙소로 가는 도중에 캐리어 바퀴 빠지는 줄 알았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해서 게스트하우스 스텝에게 일단 설명을 듣고 너무너무 배가 고파서 한국에서 싸 온 나의 비상식량, 나의 힐링푸드 왕뚜껑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오렌지주스와 하리보 말고 처음 먹는 음식.

맛있었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짐을 너무 들고뛴 탓에 너무 허리가 아파 아쉬운 대로 휴족시간을 허리에 붙이고 저녁 9시 침대에 누웠다.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날 힘들게 했던 프라하의 돌 길. 진짜 캐리어 새로 사야될까봐 조마조마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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