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궐 2년차, 백신이 보급 중이니 펜데믹은 성장기는 지나 완연한 성숙기인 듯하다. 자발적 격리기간도 비자발적으로 무한루프 연기되고 있다. 마음으론 이해가 되면서도 몸이 견디기 어려운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해 여기저기 피난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을 탐탁치 않게 보지만 막상 본인에겐 관대할 수 밖에 없는 게 인지상정이다. 순결을 지켜야 한다 외쳐대며 대부분 본능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처럼,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일정기간이 넘도록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긴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갈 곳이 없는 많은 여행객들이 제주로 몰리고 있고 감사하게도 경제적 타격이 육지에 비해 덜하긴 하다.
BC(=Before Corona)와 AD(=After Disease)란 말이 나올 정도로 코로나 전후가 판이하게 달라진 세상. 경제, 사회, 문화활동에 막대한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나같은 싱글들에게도 그 폐해는 고스란히 이어졌다.
우선 이성을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실내활동이 많아지며 오며 가며 마주치는 이성 자체가 줄었다. 특히 나같이 늙고 감떨어진 독거중년들은 국내에선 낯선 이성에게 다가가기가 죽기보다 힘든데 이상하게 해외에선 자연스럽게 말을 걸 용기가 난다. 언어의 문제인지 나이를 묻지 않는 문화탓인진 몰라도 아무튼 그랬다. 코로나로 외국을 못나가다보니 만남의 기회는 그만큼 더 줄어들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아마 마스크(얼굴말고 진짜 마스크)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리고 다니니 외모를 판단할 수가 없어 선남선녀가 서로 호감을 갖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입에 무언가를 넣는 장소라면 운좋게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길거리나 대중교통수단 내에선 대략 난감이다. 막 던져 보는 추측으로 코로나 환경에선 눈이 이쁜 분이 그 어떤 때보다 대시를 많이 받을 듯하다. 눈 성형수술 비율이 분명 코로나 전보다 늘어났을 거다.
마스크 너머 서로의 모습에 호감을 갖고 운좋게 누군가와 첫만남을 성공한다해도 관계를 발전시키기가 녹녹치 않다. 집합금지와 영업시간 제한조치로 인해 데이트 장소가 예전보다 단조로워 졌고, 늦은 시간까지 있을 만한 곳이 없어 속된 말로 진도를 빼기가 쉽지 않다. 이미 사귀는 사이라면 서로의 집에서 데이트를 하면 되겠지만 이제 막 썸을 타는 여성 분께 한 잔 더하러 집이나 숙박업소로 가자고 하면 닳고 닳은 놈팽이로 보여 지금까지 들여온 공이 수포로 돌아가기 십상이다. 요즘 같은 시기에 갓 연애를 시작한 차없는 커플들은 둘만의 데이트 장소를 어떻게 만들어낼지 자뭇 궁금하다.
험난한 연애과정을 이겨내고 결혼에 이른다해도 예전만큼 많은 하객들의 축하를 받기도 어렵고 신혼여행도 부모세대나 갈법한제주도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 그나마 스몰웨딩이 대세고 제주에 다양한 형태의 숙박업소가 생긴 게 위안이랄까? 코로나가 만연하면서 여러 명이 어울리는 게스트하우스는 직격탄을 맞았지만 집전체를 한 손님에게만 대여하는 독채민박들은 낯선 사람을 마주치는 일급호텔보다 오히려 인기폭발이다. 나 역시 가끔 오는 게하 손님과는 말이라도 섞을 수 있지만 프라이빗 룸 손님들은 비대면 셀프입실이라 이래저래 누군가를 만나기 어렵다. 뭐 코로나 예방엔 그게 도움이 될테니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인구밀도가 낮은 제주에선 자발적 격리로 인한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 이런 저런 한적한 길을 걷고 강아지와 오름들을 산책하며 흐드러진 계절 꽃들에 취해 있다보면 언제나 결론은 ‘그래도 제주’다. 코로나가 종료되면 해외여행에 대한 울분이 봇물처럼 터질테니 한동안 제주는 텅 빌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도 잠시 민박을 접고부푼 꿈을 안고 미뤄 놓은카프카스(조지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젠) 여행을 떠나 보련다.
홀로 욜로 여행이어도 좋고, 신혼여행이 된다면 더 좋고, 그냥 주어진 현실을 최대한 즐기며 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