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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삭한 주노씨 Dec 25. 2021

외로움의 이로움

외로운 제주를 재주로 승화시킨 사람들

수능대신 학력고사를 보던 그 시절, 남쪽 끝섬 제주에서 전국수석이 나온 걸 기억한다. 우리가 잘 아는 82년 인문계 수석 원희룡씨 말고도 몇년 후 같은 제주 제일고 출신이 자연계 수석을 했다. 이후 90년대 중반 수능세대에서도 신흥 사립 명문 대기고 출신 학생이 전국수석을 차지한 적이 있다. 참고로 공부 좀 하는 제주 중3들은 특목고를 제외하고 제일고, 오현고, 대기고, 제주사대부고 중 한 곳을 추첨으로 배정받아 진학한다. 비평준화와 뺑뺑이가 공존하는 제도다. 왕년엔 제일고가 제일이었다면 최근엔 대기고와 오현고가 잘 나간다는데 오현고의 경우 수재들이 즐비함에도 전국수석이 나오지 않았단 이유로 억울하게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서울사람인 내 눈에 미지의 섬 제주는 그렇 듯 공부 재주가 많은 곳이었다. 실제로도 전국 시도 기준 성적 표준점수 평균 1등의 단골손님이 제주인걸 보면 제주사람들이 똑똑하긴 한가보다.

동네 제주토박이 분들에게 슬쩍 그 이유를 물어봤다. 한결같이 돌아오는 대답은 좁고 답답한 섬을 벗어나 큰 물에서 놀고 싶은 동기유발 효과란다. 일리 있다. 근데 육지 사는 다른 시골 학생들은 큰 도시로 안가고 싶나? 뭔가 논거가 부족하다.


결국은 씨(=유전자)가 남달라서가 아닐까? 영화 '자산어보'에서 양반의 서얼인 창대가 흑산도의 수재였듯 말이다.-장창대가 정약전의 조수역할을 한건 맞지만 양반의 서얼인건 영화를 위한 가공된 스토리다.

조선시대에만 약 2백여명이 제주에 유배되었는데, 임금자리에서 축출된 광해군을 비롯해 역모 사건에 휘말린 왕자 등 왕족부터 김진구, 정온, 송시열, 김정희 같은 정계 및 사림의 거목, 그리고 보우 등의 고승까지 다양한 커리어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제주를 거쳐갔고 몇몇은 이곳에서 마지막 인생을 보냈다.

내로라하는 고관대작들인 그들 모두가 대쪽선비같은 삶을 살았을까? 반상의 서열과 남존여비의 폐해가 존재했던 시절이니 몇몇 귀양인들이 자신이 가진 우성인자를 제주인의 유전자 지도에 박아놓았을 수도 있다. 제주 원주민분들에게 불쾌하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외로움으로 점철된 유배의 역사가 예상치 못한 긍정적 나비효과를 가져온 그럴듯한 가설이다.


독특한 조형미를 갖춘 추사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김정희는 지금의 내 연배인 50대에 뱃길로 몇일을 걸려 외로움 섬 제주에 닿은 뒤로도 육로로 한참을 걸어 남서쪽끝 대정현에 도착, 가시나무 울타리로 둘러진 집에 위리안치 당했다. 제주에 유배당한 것 만으로도 세상과 단절된 기분일텐데 거처하는 곳 담장 안에서만 갇혀 지내야 하니 그 외로움과 무료함이 오죽하랴.

추사가 제주에 체류하면서 제주의 유생들에게 실학을 접할 수 있도록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MBTI중 첫번째가 언제나 E(=ENTJ)였던 나조차 50이 넘어서 I(=INTJ)로 바뀌는 걸 보면 주민들과의 교류보단 혼자만의 시간이 대부분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결국 할 수 있는건 읽고 쓰고 그리는 것 뿐! 이런 저런 필체로 아내에게 편지도 쓰고 끄적이다 보니 '추사체'라 불리는 불세출의 필체가 탄생되고, '완당집' 같은 저서가 편찬되고, 또 글만으론 부족해 집앞 소나무를 보고 또 보고 그려내다 보니 '세한도'란 걸작이 완성된 건 아닐까?

위리안치된 추사유배지 터
추사역사관에 전시된 세한도(원본은 국립중앙박물관)


제주에서의 외로움을 이로움으로 승화시킨 최근 인물은 사진작가 김영갑이다. 20여년간 제주의 풍경에 매료돼 좌보미오름 언저리 비닐하우스 집에 기거하며 오름과 바다, 바람과 들판이 자아내는 삽시간의 활홀경을 담아내고 또 담아냈음에도, 루게릭병에 걸려 더 담아내지 못함을 아쉬워하다 세상을 떠난 그야말로 쓸쓸한 삶을 쏠쏠한 작품으로 승화시킨 대표 주자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외로움은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호기심의 원천이자 지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고집스럽게 이어나가게 도와주는 소중한 감정상태다. 일상에서 흘려보냈던 익숙한 것들이 어느날 문득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다. 적요한 뜰에 서서 소나무를 바라봤던 추사에게도, 집 근처 용눈이 오름을 홀로 수 없이 오르내리던 김영갑에게도, 에디슨이 말한 1%의 영감이 일어나기 위해선 반드시 자신의 내면과 감정에 오롯이 침착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이렇게 받은 영감을 글이나 음악, 이미지로 표현하기 위해 이제 남은건 99%의 노력이다.

외로움은 이때도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딱히 만날 사람도 없고 갈 데도 없고 시간도 많다보면, 필받은 영감을 구현해 내는 일에 좀더 집중하게 되고 심지어 나만 아는 소소한 재미를 발견하게 된다. 재미있다 보니 오랜 기간 지치지 않고 고집스럽게 창작 작업을 반복할 수 있고 결국 크든 작든 소기의 성과를 이뤄낼 수 있다.


반백이 넘게 싱글로 살며 외로운 섬 제주에 자발적 유배된 나 역시 이주초기 외로움에 사무쳐 이런 저런 글들을 토해내던 시기가 있었다. 그 초심 그대로 '제주싱글표류기'를 10년간 꾸준히 끄적였으면 뭐라도 이뤄냈을텐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함께 할 사람이 생기다보니 글은 안써지고 몸은 퍼져간다. 궁상떨던 싱글에세이는 이제 접고 커플에세이나 육아에세이로 슬슬 방향전환을 해야겠다. 나의 외로움과 작별하려니 갑자기 슬퍼진다. 슬퍼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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