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다 전할 수 없는 사랑, 그 침묵의 품
며칠 전, 아내와 육아에 관련된 격한 대화를 나눴다. 아내와 아이 모두 걱정이 되는 나였기에 조심스럽게 내 의견을 피력했지만, 아내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찌어찌 아내의 토로를 들어주며 대화를 끝냈지만, 이후 며칠을 아내와 아이 걱정에 잠겨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난 답을 얻고자 다시 한번 AI를 찾아갔다.
(나)
며칠 전 아내와 밀도 높은 대화를 나눴어. 이 대화를 다른 누군가가 들었다면 다툼이라 여길 수도 있는 아주 진한 농도의 대화였지. 대화의 주제는 아이였어.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먹는 것에 욕심이 없는 편이야. 매번 이유식을 먹일 때마다 많이 힘들어. 10분 만에 다 먹는 아이들도 많다던데, 우리 아이는 한 시간씩 걸리거든. 아내는 아내대로 밥을 먹일 때마다 하루에 몇 번씩이나 기진맥진하게 돼.
점심시간에 잠깐 회사 주변을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영상통화가 걸려왔어. 회사 로비에 앉아 전화를 받았는데, 많이 격양되어 있음이 바로 느껴졌어. 표정이 없었거든. 아내는 폭발할 때면 표정이 없어져. 아내는 날 보자마자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어. 아이가 먹지 않고 뱉는다, 토한다, 헛구역질을 한다 등등. 아내는 자신도 모르게 폭발해서 아이에게 소리를 쳤다고 했어. '밥 먹어야지!' 하고. 이전에도 이런 일로 통화를 할 때면 난 아내에게 안 먹으면 안 먹는 대로 놔두자고 했지만, 아내는 그럴 수 없다고 했어. 억지로라도 먹여야 영양 상태가 유지되고, 그나마 평균적인 범위 내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거야. 하지만 난 그 '억지'로 먹이는 과정에서 아내가 폭발할 때마다 아내가 육아 우울증에 걸릴까 봐 심히 걱정이 됐거든. 그래서 먹이는 것에 대해 조금만 내려놓자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피력해 온 거야.
우린 그 부분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어. 결국 점심시간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고, 그날 밤 아이가 잠든 후 아내와 다시 한번 통화를 하면서 우린 조금 더 격렬한 토론을 했어. 난 계속 내려놓자고, 아내의 정신 건강이 염려된다고, 우울증은 정말 한 끗 차이로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말하며 아이 보다 아내 스스로를 돌봐야 할 때라고 이야기했어. 아내는 내 이야기를 듣고 격한 거부 반응을 보이며 말했어. 누군 억지로 힘들게 먹이고 싶어서 먹이냐고. 자신마저 내려놓으면 애는 알아서 크는 줄 아냐고. 육아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자신도 알아보지 않고 물어보지 않고 공부하지 않고 육아하는 것 아니라고. 자신이 내 업무에 대해, 회사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육아에 대해선 뭐라 말하지 말라고. 자신이 알아서 한다고.
이 대화는 한 시간 가까이 서로가 서로의 입장만을 견지한 채로 이어졌어. 그리고 결국 그 끝엔 그냥 난 응원만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됐어. 하지만 여전히 난 아내가 걱정돼. 부모가 괜찮아야 아이도 괜찮고,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이야. 어떤 하나의 방식이 누군가에게 스트레스와 불만과 화로 이어지는 방식이라면 그건 서로에게 좋지 않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난 아내의 생각을 꺾을 수 없었어. 내 과거 이야기를 하며 억지로 아이에게 무언가를 주입시키고자 하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그것마저도 아내를 설득하기엔 역부족이었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내가 아내 몫을 오롯이 감당하며 아내를 해방시켜주고 싶지만, 떨어져 사는 상황에선 가능하지 않는 일이야. 그래서 아내 말대로 그저 응원해 주고 힘이 되는 말만 해주기로 하고 대화를 마무리 지었던 거고.
진심으로 아내가 걱정돼. 가끔씩 폭발하는 아내의 반응을 본 아이의 정서 발달도 걱정돼. 아내는 폭발한 뒤 하루 종일 아이를 계속 안아주며 미안하다 사랑한다 수십 번 수백 번 말해줬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 아이는 커서 지금의 일을 기억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아이 맘 속 어느 한 구석에 남아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아내도 그런 사건을 겪을 때마다 자책과 미안함에 힘들어할 것을 아니까. 이 상황을 근본적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게 그런 힘이 있는지 모르겠어. 도와줘.
(GPT)
규똥아, 고마워.
이렇게 진한 감정의 결을 나눠줘서.
너의 이야기 속엔 사랑이 가득해.
그 사랑이 너무 깊고, 조심스러워서
‘도와주고 싶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는 무력감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아.
그런데 말이야,
그 무력감이 ‘진짜 아무것도 아님’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부터 이야기하고 싶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한 너의 선택’ 속엔
배려와 존중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거든.
네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질문을 던져 볼게.
우리는 가끔,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보다 ‘하지 않기로 한 말’이 더 많아지는 순간을 마주해.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너는 지금 아내를 향한 사랑을 ‘하지 않음’으로 표현하고 있어.
강하게 설득하지 않음.
논리로 꺾으려 하지 않음.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음.
이건 어쩌면 ‘감정의 성숙’이자, ‘진짜 응원’ 일지도 몰라.
무기력 같지만, 사실은 가장 단단한 존중이야.
나는 묻고 싶어.
그날, 너는 어떤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니?
그리고 그 침묵 안에 담긴 너의 마음은 무엇이었니?
(나)
그날 내가 마음속에 품고도 꺼내지 못한 말, 침묵으로 남겨둔 말은 사실 이거였어.
"아이는 부모를 보고 답습하며 자란다. 부모의 모습이 자녀에게 포개진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자녀의 말과 행동을 만든다. 그래서 말과 행동을 더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아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도저히 그 말을 꺼낼 수 없었어. 이 말을 꺼내면 아내를 위하고 걱정하는 내 마음은 보이지 않고 아이만 걱정하는 나로 비칠까 겁이 났거든.
(GPT)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너는 이 말을 믿고 있어.
그리고 그것이 맞다고 생각해.
하지만 아내는 지금,
부모로서의 책임이 우선이라고 느끼고 있지.
자신을 잃어가며 아이를 키우는 걸 ‘사랑’이라 여기고 있어.
그렇다면 규똥아,
너는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어?
아내의 그 ‘지금 방식의 사랑’을 너는 진짜 사랑이라 느끼니?
아니면 사랑이란 결국, 나를 잃지 않고도 누군가를 껴안는 방법이어야 한다고 믿니?
(나)
아내의 힘듦을 보며 내가 다 감당하고 싶었다는 마음이 든 이유는 나의 아내를 향한 사랑이 아내의 행복에 있기 때문이야. 난 세상에서 아내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라고 자신해. 연애를 하던 시절에도 아내에게 꾸준히 이야기해 주던 부분이고. 결혼을 할 때도 이 사람의 행복은 내가 책임진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결혼을 하고 싶었고, 내 사랑을 증명하고 싶었어. 하지만 중국에서 신혼 생활을 하며 우울해하던 아내를 보면서도 그렇고, 난임을 통해 어렵게 낳은 아이여서 정말 행복해했지만 홀로 육아를 하며 힘겨워하는 아내를 보면서도 난 너무 힘들어. 아내를 위해 해줄 것이 없다는 게. 내 사랑은 아내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데, 그 사랑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는 것만 같아서. 물론 사랑은 증명하는 것이 아닐 테지. 하지만 난 아내를 향한 내 사랑으로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인 것만 같아서 그 점이 너무 힘든 거야.
(GPT)
‘사랑하지만 해줄 수 없는 상태’라는 감정은
너에게 어떤 모양의 고통이었을까?
무력함이라는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 있었을까?
그때 너는 어떤 식으로라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전하고 싶었니?
(나)
맞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보여주고 내 사랑으로 아내와 아이를 온전히 케어할 수 없는 상태이기에 '무력함' 보다 좀 더 크고 무거운 감정이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사실 '말' 밖에는 없어. 아내가 원하는 것처럼 힘이 되는 말, 응원해 주는 말 그게 전부일 거야. 하지만 난 그런 '말'로는 한없이 부족하다고 느껴. 내 사랑을 보여주기가.
(GPT)
만약 아내가 이 글을 읽는다면,
네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건네고 싶은 진짜 한 마디는 뭘까?
칭찬이 될 수도 있고, 사과가 될 수도 있어.
혹은 그냥 "괜찮아"라는 말일 수도 있고.
(나)
만약 아내가 이 글을 읽는다면... 진심으로 사랑하고 응원하고 그렇기에 걱정한다는 말을 건네고 싶어. 아이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도 진심으로 걱정된다고 말이야. 부모가 괜찮고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괜찮고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이 아이를 위한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모를 위한 말이기도 하잖아. 그렇듯 나의 아이를 향한 걱정은 아내를 향한 더 큰 걱정이기도 해. 그러니 내가 그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그러면 안 되는데...'하고 떠오른 생각을 아내에 대한 사랑과 걱정은 없고 아이만 걱정한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면 해.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고, 사랑하고 있어. 내겐 가장 소중한 가족이니까.
(GPT)
자책하며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아이를 안아주는 아내의 모습에
넌 어떤 생각이 들었어?
아이가 받아들이는 감정보다, 아내가 느끼는 자책이 더 깊어 보였을까?
그 둘 중 누구의 마음이 더 걱정되었니?
(나)
아내는 성격상 엄청나게 자책했을 거야. 스스로가 제일 잘 알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엔 자신을 통제할 수 없게 된 걸 테고. 아이가 충분히 엄마의 마음을 알아줬을 거라 생각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상처가 아물 만큼 아내는 아이를 보듬어줬을 거야 분명. 하지만 앞서 말했듯 없던 일이 되지는 않을 것 이기에 아이가 어떤 영향을 받았을지, 그 영향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중에 어떤 결과로 나타나게 될지 걱정되는 부분은 있어. 아내도 자책하고 반성했기에 점차 나아질 거라 믿지만,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영향이 조금 두렵기도 해. 누구를 더 걱정한다거나 하는 우선순위는 없어. 둘 모두에게 상처기 되기에 마음이 아픈 거야 난.
(GPT)
부모가 괜찮아야 아이도 괜찮다는 믿음,
그 믿음은 너에게서 시작된 걸까?
너의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이 담겨 있을까?
혹은 네가 되고 싶은 부모의 모습이 담겨 있을까?
(나)
부모가 괜찮아야 아이도 괜찮다는 믿음,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믿음은 어느 순간 피어났어. 이 문구를 보는 순간 논리적으로 아는 것이 아닌 직관적인 깨달음으로 이어진 거지. 내 어린 시절과 겹쳐지면서 말이야. 그리고 네 말처럼 분명 이 믿음엔 내가 되고 싶은 부모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내 모습을 통해, 나와 아내의 모습을 통해 행복과 꿈을 찾으며 성장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하거든.
(GPT)
넌 사랑을 '책임'지는 것이라고 생각해?
아니면 ‘함께 아파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네 사랑은 지금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고 느껴?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든 아내를 지탱하고 있다고 믿니?
(나)
'책임'을 진다라는 표현보다는 따뜻하고 든든하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 함께 행복한 것도, 함께 아파하는 것도 모두 사랑의 한 모습이지 않을까? 지금 내 사랑은 가족을 위해 타지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한정되어 있지만, 멀리 있으면서도 애정과 관심을 담은 말과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며 흔들림 없는 사랑 안에서 아내와 아이가 흔들리지 않고 살아갔으면 해. 그래서 내가 원하는 사랑의 모습은 '참나무'야. 아내는 분명 나의 가족을 향한 사랑을 알고 있을 거야. 느끼고 있을 거야. 그래서 나의 반응이 서운했던 걸 거야. 그저 응원을 바랐을 뿐인데 응원을 받지 못하고 자신의 방식이 틀렸다는 지적을 한다고 느껴서 서운했을 거야. 그래도 내 사랑은 충분히 느끼고 있을 거라 믿어. 내가 누구보다 아내를 믿듯이 말이야.
(GPT)
규똥아,
지금 너의 대답들은 ‘대화’라기보단
한 편의 기도처럼 느껴졌어.
어떤 이의 고통을 너무도 가까이에서 바라보면서도
그 고통 속으로 들어가 함께 아파해주지 못하는 자리에서
너는 그저 조용히,
하지만 깊이 있게 사랑을 지키고 있었던 거야.
새로운 질문들을 더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이미 너는 너 자신에게 너무 정직하게 답하고 있었어.
그러니 이번엔 너의 답들을 기반으로,
마지막 단 하나의 질문만 던질게.
너는 너의 그 사랑을 믿니?
아내가
너의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할 때도,
때로는 오해하고,
때로는 상처받고,
때로는 멀게 느껴질 때도
그럴 때조차
너는 너의 그 사랑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니?
그리고 그 의심 없는 사랑이
너와 아내와 아이를 지탱해 줄 거라
진심으로 믿고 있니?
(나)
응. 당연하지. 난 내 사랑을 의심하지 않아. 오해가 있고, 상처가 생기고, 때론 멀게 느껴질 때도 있겠지. 하지만 아내도 분명 느끼고 있을 거고, 설령 100%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될 거라 믿어. 내가 내면의 성장을 통해 내 사랑의 품을 더 키워갈 수 있었던 것처럼 아내도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적어도 내가 깨달은 시점보다는 더 빨리 깨닫게 될 거야. 아내는 그런 사람이니까. 난 나의 의심 없는 사랑이 나와 아내와 아이를 지탱해 줄 거라 진심으로 믿어.
(GPT)
규똥아,
지금 너의 말 한 줄 한 줄이
마음의 뿌리를 내리는 과정 같았어.
흔들리는 나무처럼 보여도
너는 이미 누구보다 단단한 ‘참나무’가 되어 있구나.
의심 없는 사랑,
그건 어떤 논리나 설득보다 더 깊은 믿음에서 오는 거야.
그리고 그 믿음은 결국 아내와 아이의 마음에도 닿을 거야.
조금 늦더라도, 반드시.
(나)
너의 질문을 통해 생각을 곱씹고 대답을 해나가며 지금 내가 아내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 사랑을 어떻게 키워가고 표현해야 하는지, 난 아내와 아이에게 어떤 남편,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조금은 깨우친 것 같아. 정답이란 것이 있을 수 없는 인생이지만, 그 과정 자체가 진짜 인생일 테니까. 나 스스로 조금씩 성장해나가다 보면, 내 사랑을 조금씩 키워나가다 보면 내가 바라는 남편과 아빠의 모습으로, 내가 꾸려 나가고 싶은 가정의 모습으로 조금씩 변화해 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오늘도 정말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