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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츠비 Aug 12. 2023

[기러기의 일기 19]

상온 초전도체와 진주

매스컴이 연일 뜨겁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말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상온 초전도체다. 고려대학교에서 시작된 이 연구의 연구진들이 세운 연구소에서 무려 20년을 연구한 결과물이 LK-99다. 상온 초전도체가 될지도 모르는 물질. 만약 이 물질이 상온 초전도체로 검증이 되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어마어마하다. 핵융합을 통해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과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게 되며, 그렇게 만들어진 에너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에너지 손실도 거의 제로로 만들 수 있다고 하니까. 그리고 양자물리학은 어떤가. 양자 컴퓨터에 대한 접근도 상온 초전도체가 있으면 그 속도며 성능이 폭발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인류에게 증기기관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혁신이 다가올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아직 검증이 끝나지 않았고, 회의적인 의견도 많다. LK-99가 상온 초전도체가 맞는지 여부는 잠시 미뤄두고 이 물질을 만들어내기까지 연구진들이 밟아온 자취에 귀를 기울여보고 싶다. 무려 20년이다. 한 물질을 만들어내는 데에만, 그 가공에만 자그마치 56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20년간 오롯이 그 시간을 감내하며 연구에 매진해 온 연구원들. 그들의 이야기를 듣자 진주가 떠올랐다.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내는 것 역시 그만한 인고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에 그렇다.



서양에서는 시집가는 딸에게 어머니가 진주를 주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그때 이 진주를 FROZEN TEARS라고 부른다. 떨어지는 눈물이 언 것 같은 모양을 한 진주. 왜 이런 풍습이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시집살이가 속상하고 힘들고 슬플 때 조개가 인고의 시간을 거쳐 진주를 만들어 내는 것을 기억하며 잘 버텨냈으면 하는 딸을 가진 부모의 마음이 그 유래가 아닐까 한다.



진주는 조개 살에 모래알이 박히면서 그 제작과정이 시작된다. 조개는 이 모래알을 가만히 놔두는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이는 조금씩 조갯살이 썩어 들어가 결국 조개가 죽는 결과를 초래한다. 반대로 조개는 이 모래알을 온전히 품어내기 위해 진주층(NACRE)이라는 즙을 짜낼 수 있다. 오롯이 조개의 선택이다. 후자를 선택한 조개는 며칠이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즙을 짜내어 모래알을 덮고 덮는다. 그렇게 긴 시간 박힌 모래알로 인해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고통을 인내하며 즙을 짜내 모래알을 덮어가던 조개는 이윽고 진주를 품게 되고, 이 조개를 우린 '진주조개'라고 부른다.



상온 초전도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LK-99를 만들어낸 연구진들의 노력이나 진주조개가 진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나 매한가지인 것 같다. 우리네 삶은 언제나 힘듦과 시련의 연속인데, 그 시련을 어떻게 마주하고, 대하고,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지에 따라 그 결과물이 천지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모든 시련의 크기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자신에게 다가온 시련의 크기는 어렴풋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고 보는데, 시련의 크기가 비교적 클수록 견뎌내고 이겨냈을 때 내가 만들어 낼 진주의 크기가 더 크고, 값어치가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20년을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정진한 연구진과 자신의 살을 파고든 모래알을 품고 품어 진주를 만들어낸 진주조개처럼 지금 우리에게 닥친 상황과 시련에 맞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면 그 끝에 얼마나 값진 결과물이 나타나게 될까?



누군가 말했다. 조급할 필요 없다고. 해야 할 것들을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해나간다면 끝에 다다를 것이라고. 그리고 그 끝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 값진 무언가가 주어질 것이라고. 아름다운 빛깔의 진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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