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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Jul 09. 2020

뭐든지 '척' 하던 아이의 최후

나의 두려움, 허언증 극복기

"아, 또, 진짜 구라요다."


중학생 시절,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별명은 바로 ‘구라요다’였다. 매사 거짓말을 한다는 뜻의 ‘구라’와 요아라는 이름에서 비롯된 ‘요다’.


딱 어렸을 때나 불릴법한 유치한 별명이지만, 사실 이 유치한 이름이 들릴 때마다 심장이 요동치고는 했다. 진짜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예능에서 주목받고 싶은 신인 아이돌처럼 어떤 주제든 MSG를 잔뜩 뿌렸다. 자극적이면 자극적일수록,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하면 대단할수록 친구들의 감탄을 받았으니 거짓말의 유혹이란 좀처럼 떨쳐내기 어려웠다.


카페에 올린 글이 조회수 100을 기록했을 때에는 출간 제의를 받았다며 허풍을 떨었고, 뉴에이지 음악에 빠졌을 때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은 사실 내가 지은 거라며 거짓말하기도 했다. 검은 화면의 명령 프롬프트를 열고는 해킹이 취미라며 자랑했고, 친구들과 피시방에 갈 때면 이미 본 계정은 만렙을 찍었고 지금은 부계정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면 다행이겠지만…… 연락처를 몽땅 남자 이름으로 바꿔놓고는 썸 타는 애들이 이렇게 많다고 으스대는 건 물론, 가끔은 예지몽을 꾼다고 하기도 했지만 이건 차마 길게 말할 수 없으니 덮어둬야겠다.


거짓과 현실의 간극이 클수록 초라한 감정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큰 충격을 받지도 않았더랬다. 왜냐하면 결국 언젠가는 말한 대로 이루어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여중생 A’로 낙인찍히는 게 두려웠던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힘겹게 만든 포장지를 애써 뜯고 싶지 않다는 욕심으로 허언증 생활을 자처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피시방에 간 친구가 불쑥 의자를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너 해킹할 줄 안다며? 한번 해봐.”

  

나는 ‘내 컴퓨터에만 있는 해킹 프로그램’이 없다며 둘러댔고, 결국 심각함을 인정해야 했다. 병원을 가기로 했다. 정신과에 가면 주민등록증에 빨간 줄이 새겨진다고 들었지만, 그 ‘빨간 줄’을 감수하더라도 허언증은 고쳐야 할 것 같았다. 꼬박 한 달간 용돈을 모아 정신건강의학과로 향했다.





“선생님, 저 거짓말을 자꾸 해요. 저는 사실 작곡도 못 하고요, 피아노 콩쿨도 금상이 아니라 동상이에요, 독후감 대회도 대상을 받았다고 했는데 사실 장려상이에요. 그건 참가상이나 마찬가지고요. 또, 애들 앞에만 서면 자꾸 부풀려서 말해요. 그걸 덮으려면 또 거짓말을 해야 하고요. 저 어떻게 해야 해요?”


지긋해 보이는 의사는 안경을 치켜들며 딱 이렇게 답했다.     


“그럼 거짓말하지 마.”
“네?”     


나는 벙찐 얼굴로 그게 무슨 말이냐 물었고 의사는 재차 같은 말로 응수했다. 약이라도 처방해달라고 얘기했지만 의사는 웃으며 “약은 필요 없어, 앞으로 거짓말하지 마, 알았지?”라 답했다. 만원이 넘는 진료비를 낸 뒤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학원에 간 나는 귀가 후 일기장에 한 문장을 적었다.


 


거짓말을 하지 말자.




‘아니, 무슨…… 저 말 한마디로 만원이나 받아? 역시 공부가 최곤가?’ 싶었지만,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나의 허언증을 밝힌 사건이었고, 청자는 나름 의사였으며 권위가 있었으니 사실 그게 유일한 답인 것 같기도 했다. 거짓말을 하지 말 것. 해킹해보라는 친구의 부탁이나 썸남을 증명하라는 당혹스러운 요구도 듣고 싶지 않았기에 결국 지침을 따르기로 했다. 그 결심은 단순히 거짓말을 끊는 것뿐만 아니라, 속은 텅텅 비었다는 두려움을 인정하는 일이었다.


물론 바로 성공할 수는 없었다. 이제까지 쌓아왔던 이미지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금까지 너희들에게 했던 말들은 모두 허구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으니까. 그저 지금부터라도 거짓말을 줄이자는 작은 결심으로 움직였다. 친구가 “오늘은 어떤 꿈을 꿨어?”라 물으면, “이제는 예지몽 안 꾸더라.”라고 답하는 일이었고 “웹소설 출간은 잘 되고 있어?”라 물으면, “거절했어.”라 말했다. 그간의 거짓을 시인하는 건 아니었지만, 꼬리에 꼬리 물리듯 거짓이 이어지지는 않도록.


그런데도 이제껏 쌓아왔던 ‘특별한 아이’라는 이미지는 당최 포기하기 어려웠다. 유독 ‘글’이 그랬다. 유일하게 국어만은 잘했으므로 훗날 단행본 사인회를 연 뒤, 노후에는 강연을 다니며 글을 가르칠 거라며 자랑했다. 좋게 말하면 버킷리스트였고 반대로 말하면 끊기지 않는 과장이었다.





작곡 실력을 뺀 나, 가끔은 예지몽을 꾼다는 나. 특별함을 뺀 초라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거짓말은 미래에 관한 얘기였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관해서는 얼마든지 거짓말을 해도 용인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커다랗게 부풀릴수록 원대한 꿈을 지닌 아이로 취급받았다. 나는 관심에 관한 욕구를 꿈으로 풀었다.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쓸 거야, 베스트셀러를 낼 거고. 세계 각국에 번역되는 그런 책. 왜, 해리포터를 쓴 조앤 롤링처럼.


문학도 거짓말을 잘할수록 창의력을 칭찬받을 수 있는 장르였으니 소설가라는 직업은 허언증을 앓는 고등학생에게 딱 맞는 진로였다. 분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땀을 흘리던 중학생 때에 비해서도 괜찮았다. 과장하고 싶은 욕구도 채웠으니 나름 괜찮은 타협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그대로였다. 대책으로 떠벌렸던 미래에 대한 얘기들도, 결국 이뤄지지 않는다면 양치기 소녀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으니까. 거짓말을 덮기 위해 거짓말을 쥐어짜고, 초라함을 숨기려 온갖 호탕한 척을 하는 건 지긋지긋했다. 어떤 말을 해도 “한번 보여줘 봐. 아, 또, 역시 구라요다.”라는 반응을 듣고, 억지로 웃으며 “아냐, 이건 진짜야.”라고 답했던 모습은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는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매일 글만 쓰면 지칠 때도 있을 테고, 체력이 다해 종일 눕고 싶은 욕구가 쏟아질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한결같이 일을 하며 공모전을 병행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인내심이라 밝히지만, 진실은 양치기 소녀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다. 거짓말로 친구들을 잃고 방에서 나는 왜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자책하던 소녀를 과거에 묻고 싶어서다. 사람이란 모두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 직접 익히고 배우며 그림을 그려나가는 존재인데도 나는 노력도 하지 않고 깔끔하게 완성된 수채화만을 바랐다. 내로라하는 영화감독이나 피아니스트, 소설가들도 처음부터 완성본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 그렇게 나는 초라함이라는 두려움을 조금씩 껴안았다.


무엇이든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굳이 물증을 바라지 않아도 스스로 내보여야 나도 내가 이게 진짜 현실이라는 걸 믿을 것만 같아서였다. 금상을 받았다는 허풍을 떨고 싶을 때는 얼른 장려상을 꺼내 보였고, 쇼팽을 칠 줄 안다고 거짓말하고 싶을 때에는 엠피쓰리로 현재 실력을 녹음해 들려주었다. “앞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얘기했다면 비문이 가득한 글이라도 직접 써 내려갔다. 나는 점차 완벽한 아이에서 엉성하지만 성실한 아이로 바뀌었다. 전자가 더 멋지기는 했지만, 발로 뛰며 만들어낸 후자의 이미지는 자책감이 동반되지 않았으니 훨씬 마음이 놓였다. 어떤 거짓말로 대응해야 할지 골몰하는 시간이 없어져서야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었다.


내가 한 말을 주워 담겠다는 일념으로 문예창작과를 위해 공부했고, 입학 후 글을 합평하는 자리에서는 아무리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어도 아득바득 글을 썼다.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 떵떵거렸으니 당장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실수로 말해버린 조그마한 일들도 놓치지 않으려 모두 적었다. 너무 피곤해서 다 놓고 포기하고 싶을 때는 다시 그 소녀를 떠올렸다. 양치기로 낙인찍혀 사랑받지도, 스스로를 사랑할 수도 없어진 초라하디 초라한 열다섯.





스물다섯인 지금도 허언증에서 완벽히 탈출하지는 못했다. 머리를 거치지 않고 그만 거짓이 입 밖으로 나간다. 옛날처럼은 아니어도 성공 수치를 높이거나, 하지 않은 활동을 지원했다고 얘기한다. 그러면 그날은 집으로 달려가 노트북을 켜서 현실이 되게끔 애쓴다. 그렇게 나는 말을 주워 담기 위해 휴학을 하며 두 번의 인턴십을 마쳤다. 모은 돈으로는 유럽 여행을 떠났다. 250시간의 봉사활동을 끝내고 졸업을 했다. 마케터로 일하며 에세이와 동화를 쓰겠다고 호언장담했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밤을 새웠다. 백 개의 자기소개서를 썼고 일주일에 세 권의 에세이집을 읽었다. 기말고사를 준비하며 한 달 동안 7편의 단편을 썼다. 동화작가가 된다던 말들이 거짓으로 여겨지기 않길 바란 마음이었다. 그리고 올해 초, 동화작가가 되었다.


허언증을 앓았고, 아직도 허언증을 조금 앓는다는 얘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으므로 만일 이 글을 지인들이 읽게 된다면 무척이나 놀랄 게 분명하다. 그간 나는 무엇이든 이루어내는 사람처럼 비쳤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다. 글을 잘 쓰는 척,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척, 당당하고 사교적인 척을 하는 가면을 쓴 사람. 그러나 언젠가는 가면 없이도 내가 될 수 있으리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허풍을 부지런히 줍는다. 열심히 ‘척’을 하고 그 ‘척’을 주우려 이렇게 부단히 노력한다면 끝에는 내가 원하던 사람이 되어있겠지. 나만이 그릴 수 있는 아름다운 수채화를 안고서.




해당 글은 살을 덧붙여 책에 담았답니다.

Part3. 지구에 머무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에서 만나실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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