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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종규 Sep 28. 2016

아이들의 변화를 이끄는 수업

수업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경험을 통하여 아이들은 갑자기 큰다

수업을 하면서 가장 생각나는 장면 세 가지가 있다.


#장면 하나


새롭게 만나게 된 아이들에게 제일 먼저 시키는 일이 모둠을 짜라는 것이다. 2010년 신덕중학교에서 2학년 다섯 반의 수업을 맡게 되었다. 11반의 첫 수업에서 모둠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세 명의 아이가 아무런 모둠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책상에 따로 앉아 있었다. 나는 모둠을 구성한 아이들에게 외톨이로 남는 학생이 없도록 해 달라고 호소를 해 보았지만 한 번 짜진 모둠에서 누구도 새로 그 세 아이들 중 한 명도 데리고 오려는 아이들은 없었다.


나는 외톨이가 된 그 세 아이를 한 모둠으로 만들었다. 수업을 마치고 확인을 해 보니 그 셋은 모두 학력이 많이 처지는 아이들이었다. 다음 시간부터 활동을 시켰는데 그 모둠은 활동에 소극적이고 숫제 활동을 거부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렇지만 나는 꾸준히 그들에게도 발표를 시키고 다른 활동도 시켰다.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고 나면 발표 순서를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신청하는 순서대로 정한다. 이때 이 모둠은 항상 늦게 손을 들어서 마지막에 발표를 하곤 하였다.


모둠 발표를 하기 위해 소칠판에 자료를 적는 순간에도 그 모둠의 소칠판은 하얀 상태 그대로 있기 일쑤였다. 그런데 마지막 발표를 하는 순간에 있어서는 항상 소칠판이 채워져 있고, 내용도 정말 그럴싸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 아이들은 소칠판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모둠의 발표를 귀담아듣고, 발표 내용 중 좋은 것들을 골라서는 소칠판을 채우곤 하였다.


4월 말이 되어서 그 모둠의 한 아이가 다른 학교로 강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나는 두 명만 남은 그 모둠을 가리키며 다른 모둠에서 그 아이들을 한 명씩 데리고 가라고 주문하였다. 하지만 두 명만 된 그 아이들은 한사코 둘이서 계속하겠다고 우겼다. 나는 그들이 계속하겠다는 신념을 생각해서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두 명으로만 된 그 모둠은 그렇게 함으로써 더 발전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세 명이 나누어하던 발표도 이제는 둘이 번갈아 하여야만 되었다. 실험도 둘이서 진행을 해야 하였지만 어려워도 꿋꿋이 과제를 해결해 내었다. 점점 나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아이들 둘은 2학기 기말고사에서 각각 92점, 88점을 받았다. 1학년 말 성적이 20점에도 미치지 않던 아이들이었다.


#장면 둘


그해 2학년 9반에는 학습 부진아 정도가 아니라 지적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아이가 한 명 있었다. 글은 천천히 떠듬거리면서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나 그 아이가 적은 글은 말로서의 가치를 논하기 어려웠다. 시험 성적도 모든 과목에서 당연히 최하위였고 사고 능력이 거의 없는 것 같은 아이였다. 선생님도 그 아이를 다른 아이들로부터 보호하려는 의도였는지 창가 제일 앞자리에 앉히고는 자리도 옮겨주지 않아 항상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던 아이였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적도 없었고 모둠별로 하는 과학 수업에서도 모둠만 편성되어 있다 뿐이지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고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던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과학 시간을 유독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 날 나는 모둠에서 한 번도 발표를 하지 않았거나 발표를 가장 적게 한 아이가 발표를 하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당연히 그 모둠에서 그 아이가 발표를 할 수밖에 없었고, 떠듬거리면서 힘들게 발표한 그 아이게 쏟아진 박수 소리는 가장 컸었다. 그 이후로 그 아이는 유독 발표를 하겠닥 우겼다. 모둠원들은 그 아이가 하겠다는 것을 배려하였고 그 모둠은 일 년 내도록 그 아이가 발표를 하였다. 다른 시간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그 아이에게는 과학 시간만큼은 행복한 순간 아니었을까!


#장면 셋


2012년 3월, 학습연구년을 마치고 장전중학교로 복귀했다. 3학년 모든 반과 2학년 한 반의 과학을 맡게 되었다. 3학년 5반의 첫 시간. 첫 시간은 보통 또랑또랑한 아이들의 눈을 보게 된다. 그런데 첫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책상에 엎드려 있는 아이 둘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들이 그렇게 있더라도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수업에 대한 규칙을 정하고 모둠 배치를 할 때까지도 그 둘은 자리에서 꼭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그 둘의 자리로 책상을 옮겨서 그들도 모둠의 일원이 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5반 담임인 김미정 선생님을 만났다. 김미정 선생님과는 2000년에 장전중학교에 근무했을 때도 같이 근무를 했던 터라 잘 아는 사이다. 한 시간 내내 엎드려 있던 그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니까,


"선생님, 걔들은 그냥 건들지 마세요."


그들 중 한 명은 작년에 김미정 선생님 반 학생이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3년이나 나이가 위였다. 작년에 어떻게 하여 겨우 3학년에 진급을 시켜두었는데 올해의 목표는 그 아이를 졸업을 시키는 거라고 하였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다.


다음 시간도 마찬가지로 그 둘은 엎드려 있었다. 아이들에게 활동을 시키는 도중에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잠시 이야기를 하자고 하였다.


"너희들이 수업 중에 엎드려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소리 하지 않으마. 그런데 너희 모둠 학생들이 모두 나가서 발표를 하는 순간에 너희 둘이 여기 엎드려 있는 것은 모양이 뭔지 맞지 않는 것 같지 앟겠니?"


모둠원이 모두 일어서서 발표를 하는 순간만 아이들과 함께 하기로 하는 약속을 하였다. 그렇게 래서 그들은 발표를 하는 때 외에는 늘 엎드려 있고 모둠원이 발표를 할 때에는 발표하는 옆에서 어색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4월 초에 다른 아이들보다 3살이 많은 아이는 비행 사건에 연루되어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같이 엎드려 있던 아이는 혼자되었음에도 여전히 엎드려 있었다. 그러다가 한 번은 그 아이가 발표를 하게 되었다. 내가 지나가는 말과 같이


"오늘은 지금까지 한 번도 발표를 하지 않았거나, 가장 적게 발표를 한 사람이 발표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그 모둠에서는 늘 엎드려 있던 하성현이 당연히 발표자가 된 것이다. 성현이가 발표를 마치자 다른 모둠의 발표에서보다 더 큰 박수가 나왔다.


그다음 수업 시간에 드디어 나는 성현이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뒤로는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가끔씩 발표도 하였다. 성현이의 발표에서는 언제나 가장 큰 박수 소리가 나왔다.


7월 중순, 여름 방학을 하기 얼마 전에는 교실 수업이 흩트려지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하루는 갑자가 수업 중에 성현이가 벌떡 일어섰다. 다른 아이들이 일순 긴장을 하자 성현이는 학급 전체를 휘둘러보면서


"경청!" 하면서 학급의 질서를 잡았다.


2학기에 들어서 김미정 선생님이 나에게 조용히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하였다.


"선생님, 도대체 성현이를 어떻게 잡았어요?"


나는 성현이를 다잡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이들은 수업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그 스스로 주인공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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