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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종규 Sep 29. 2016

나는 왜 수업을 바꾸었나

아이들을 바꾸는 수업, 선생님을 바꾸는 수업

선생님을 하고 20년이나 지난 다음에 나는 느닷없이 나의 수업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수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을 해 보았다. 그것이 그동안 생각지도 않았던 나의 교육철학과의 조우이다.


나는 교육학을 무척 싫어했다. 입학을 하면 발령이 나는 세대였기에 대학에서의 공부가 대학생활에서 그렇게 비중을 가지지 못했다. 발령 순위를 정하기 위해서 전공필수, 전공선택, 교육학 등을 분야별로 학점을 집계하였는데 나의 교육학 평점은 2.0이 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새로 교육학 책을 보게 되었다. 내가 왜 수업을 하는가 하는 답을 찾기 위해서 이리라. 그렇다면 내가 찾은 답은 무엇이었을까? 미리 이야기하자면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미래에 닥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아이들이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학교에서부터 하여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다. 나는 그런 경험 세계를 갖게 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통하여 편중된 경험 세계를 익히고 있었다. 지식을 갖춘다는 것도 한 측면의 경험이다. 많은 아이들은 선생님들이 읊조리고 있는 지식의 독경을 별로 느끼는 것 없이 재미없게 듣고 있다. 나는 나름 수업을 재미있게 한다는 평을 듣고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미 수업은 재미없다는 큰 전제를 가지고 학교에 와 있지는 않은지를 살펴보았어야 했다. '나는 매 수업 아이들을 웃기는 지점이 있어서 나의 수업은 그렇지 않을 거야!' 하는 선생님도 계시겠지만 혹시 착각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나의 수업이 아이들에게 즐겁지 않은 경험이라면……. 그래서는 아이들의 미래는 없다고 판단했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수업을 바꾸고자 했다. 그렇게 수업을 바꾸어도 도처에 새로운 문제점들이 있었다. 내가 꾸미는 것들이 모두의 흥미를 끌어야 하고 모두 참여해서 모두 같이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초임 시절을 떠올렸다. 알고 보니 처음 선생님을 할 때부터 나는 나의 교육철학을 갖지 않았다. 철학 없이 하나의 직업으로 선생님을 하였다. 그래서 아무리 잘 가르친다고 해도 아이들의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2년 정도를 수업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아직 확실히 "이거다."라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뭔가가 떠오르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수업 중에도 아이들의 변화가 보이고 그 변화를 보면서 흐뭇해하는 장면이 자주 있다.


아이들이 여러 가지 면에서 능숙하게 되었으면 했다. 발표를 잘 했으면 했는데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가 발표하는 장면도 보았다. 발표를 시키기도 전에 먼저 발표를 하겠다고 한다. 토론을 잘 했으면 했는데 서너 달 지나면 활발히 토론하는 교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보았다. 나와의 수업에서는 조는 아이가 없었으면 했다. 학년 초에는 피곤하여 처지는 눈을 가진 아이에게 일부러 머리를 누르며 "그냥 자라."고까지 했다. 의욕이 없는 아이에게는 어떤 것이라고 효과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1학기 말을 맞은 이맘때 교실의 풍경을 소개하자면 나와의 수업에서 일부러 엎드려 있는 아이는 한 명도 없다. 아이들은 실험도 스스로 할 수 있다. 아무런 양식을 주지 않았지만 보고서도 그럴듯하게 작성한다.


그 외 여러 가지 면에서 분명 아이들은 좋은 방향으로 변해 있는 것을 자주 느낀다. 아이들은 나와의 만남을 좋아하고 언제나 밝게 인사한다. 가끔 내 자리로 찾아와서 "보고 싶어서 왔어요." 하는 아이도 있다. 남자 학교인데도……. 나는 수업을 바꾼 3년 전을 생각하면서 그때 그 결정을 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많은 아이들이 나에게 자신의 학력 향상을 자랑도 하였다. 나 때문에 성적이 올랐다고 자랑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특히 성적이 아주 낮았던 아이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때는 더욱더…….




선생님을 10년쯤 했을 무렵, 나는 '선생님들의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여러 연수의 강사로  활동을 자주 했었다. 그런 나의 꿈은 충분히 이루었고, 그런 경험이나 경력들은 이제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이젠 내가 수업을 바꾸고 나서 만난 소중한 기적들을-나는 기적이라 부르고 싶다- 선생님들에게 알리고 싶고 그 선생님들을 통하여 새로운 기적이 나왔으면 한다.


학교 폭력 문제로 교실이 붕괴되느니 하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신문지상에 인터넷 상에 오르내리지만 나는 수업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자그만 방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교실에서 눈을 마주 보면 서로 대화했던 아이들을 괴롭힐 수는 없을 것이다. 교실 수업에서 성취감을 얻은 아이들은 폭력성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처벌과 같은 방법을 쓰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무언가를 사용해야 한다. 그 무언가를 나는 수업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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