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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종규 Oct 01. 2016

야외 수업

가르침 없는 배움은 교실에서뿐만 아니라 야외에서도 된다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유치원 원감 자격연수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부산교육연수원 김병렬 연구사가 선생님들에게 '태종대의 지질'에 대해서 안내해달라고 하였다. 유치원 원감 선생님들이 태종대의 지질에 대해서 자세히 알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선생님들께서 태종대의 지질을 잘 안다고 하여서 그것을 유치원아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다가, 그런 전문적인 이야기들을 유치원아들이 잘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수업 중에 쓰던 소칠판을 몇 장 챙겨 들었다. 여섯 모둠으로 나누고 소칠판 한 장씩을 안겼다. 그리고 태종대에서 지질학적으로 유명한 해안단구가 나타나는 지역으로 데리고 갔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유치원생입니다. 유치원생의 입장에서 여기 이 암석과 지층 등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유치원생의 입장에서 이 소칠판에 관찰한 사실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관찰 시간이 다 되어서 그늘진 곳으로 이동한 다음 모둠별로 발표하였다. 선생님들은 '7세 영재아', '갓 들어온 원아' 등 유치원아로서의 적절한 상황을 설정하고 거기에 맞추어 발표를 재미있게 잘하였다. 그 선생님들은 아마 처음으로 이런 형태의 연수를 접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의 입장이 되어보는 경험도 처음 해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저는 중학교에서, 여러분들은 유치원에서 가르칩니다. 제가 오랫동안 가르친 방법은 한 번도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에게 지식의 전달에만 급급했습니다. 최근 저는 아이들은 어떤 상태로 저를 보고 있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들이 알지도 못하는 언어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내가 그들을 가르치고 있지는 않았는지 모릅니다. 선생님들께서도 유치원아의 눈높이에서 유치원아의 생각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곳의 지질학 사건에 대해서 강의한 것보다 유치원아들을 가르치는 여러 선생님들께서 유치원아의 입장으로 이곳을 어떻게 관찰하는가를 유심히 살펴보게 하는 것이 더욱 유익한 시간이 되리라 싶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꼭 이곳의 지질학 사건에 대해서 알고 싶으신 분은 따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관찰하고, 관찰한 것을 발표하는 모습

야외에서 스스로 조사하기


남부영재교육원에서 야외지질 체험학습 운영을 부탁하였다. 방학을 맞자마자 월요일부터 금요일가지 5일간을 매일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나와 달라고 하였다. 다른 곳에서도 체험학습이나 강의 부탁이 들어와서 5일간 계속 진행할 수가 없었다.


학생들이 모두 5 학급 100명이었다. 나는 아예 한꺼번에 진행을 할 것이니 하루를 몰아서 하자고 하였다. 그렇게 많은 인원을 데리고 한꺼번에 운영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였지만 어치피 스케줄 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해서 그렇게 운영을 하게 되었다.


같이 운영할 인력을 수소문하여 구하고 체험학습을 나가기 전날 밤에 체험학습에 쓰일 것을 몇 가지 준비하였다. 지도할 인력은 나를 포함하여 다섯 명이었다. 그중 두 명은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질 것이고 세 명은 지도 요원이다. 행사장이 바닷가이기 때문에 가장 위험할 수 있는 곳으로 두 명의 안전 요원을 배치시켰다. 세 명의 지도 요원은 아이들이 조사 활동을 할 때 질문을 받고 답을 하도록 하였다.


각 학교에 스무 명씩의 학생과 교사 한 명씩이 나왔다. 몇몇 늦은 아이들도 있어서 10시 가까이 되어서야 모두 체험장에 모였다. 따라온 지도 교사에게 학교별로 두 개의 모둠으로 나누도록 하였다. 모둠에서는 모둠장을 뽑아서 모둠장만 집합을 시켰다.


모둠장에게 다음과 같은 전달을 하였다. 모둠별로 모둠 이름을 정하고, 모둠에서 조사하고자 하는 주제를 정하도록 하였다. 주제가 정해지는 대로 체험 장소에서 자유롭게 조사 활동을 하고 한 시간 반 뒤에 다시 이 장소에 모두 모이도록 하였다. 모둠별로 조사 도구를 나누어주었다. 염산이 들어있는 증류수병 하나, 루페 하나, 15cm 자 하나, 한 사람당 세 장의 A4 용지다. 모둠 당 세 장의 질문카드를 주고 질문카드 한 장은 하나의 질문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한 시간 반 뒤에 조사 도구를 반납하면 다음 수행 과제를 주겠다고 하였다.


모둠별로 조사 주제를 정하고 있다

아이들을 인솔하여 온 선생님들에게는 아이들이 활동하는 동안 다른 곳에 가서 쉬도록 하였다. 아이들이 다시 이 자리로 올 시각에 나타나라고 하였다. 선생님들은 운영하는 방법을 듣고는 어떻게 체험학습이 되는지 의심을 하면서도 자리를 비켰다. 아이들이 조사하는 동안 나와 두 명의 지도 요원은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에 답변을 하기 위하여 아이들 주변을 맴돌았다.


넓은 영역을 대상으로 계속하여 돌아다니는 아이들도 있었고, 한 자리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한 두 가지 소재로 집중하여 조사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할 줄 몰라하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조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질문 카드를 많이 사용하리라 예상하였지만 나누어 준 30장의 질문 카드 중 회수된 것은 단 다섯 장이었다.

아이들이 조사를 하고 있다

조사 시간을 다 보내고 조사 도구를 반납하러 오는 아이들에게 전지 두 장과 네 색의 보드마커를 주었다. 전지 한 장에 조사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였다. 한 장은 예비로 준 것이다. 30분 정도의 시간을 정리할 시간으로 주었으나 더 오랫동안 정성을 다하는 모둠도 있었다. 선생님들도 이미 와 있었다. 모둠별로 제출한 보고서는 네 귀퉁이를 돌로 눌러서 바닥에 전시하였다.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바닥에 전시된 보고서를 보면서 서로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찍곤 하였다. 활동하는 과정을 지켜보지 않았던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보고서에 환호하였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와 같이 잘 만들었는지 신기하다고 하였다.

보고서를 작성하여 바닥에 전시를 하였다
전지에 작성된 아이들의 보고서

역시 오늘도 나는 아무것도 아이들에게 가르쳐 준 것이 없다. 그러나 아이들은 훌륭히 그들이 가진 머리 속의 지식을 활용하여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었다. 조사 활동 시간에 나는 아이들끼리 모여서 열심히 토론을 하는 과정도 지켜보았다. 그런 토론이 이와 같은 것을 만들어 낸 것이다. 스스로 배울 수 있음을 나는 다시금 확인하였다. 처음 접하는 선생님들에게 얘기하였다.


"이것이 가르침 없는 배움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그런 시간과 기회를 준다면 아이들은 이와 같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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