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것으로 둔갑해버린 자기 결정
2주에 한 번씩 정신분석 전공의를 만난다. 기억나는 꿈이 있을 땐 꿈 얘기를 하기도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친구들이게 이혼이 대한 소문이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꿈을 꾸었다.
나는 기차역 근처의 담배가게, 아마 그냥 슈퍼 같은데 담배라고 적힌 철판이 문 앞에 달려있었다. 무엇을 사려고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게 주인에게 신용카드를 내밀었는데, 나에게 돈다발을 주었다. 당황해하는 나에게 가게에 돈이 없어야 저 사람들이 도박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게 옆에는 카지노 기계 앞에 눈이 벌게진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나는 무서웠지만 돈뭉치를 받아 들고 지하상가를 걸었다. 강도를 만나서 돈을 다 뺏길까 봐 무서웠다. 돈뭉치를 잘 숨겨보려고 속옷에 집어넣고 빠른 걸음을 걷다가 나중엔 뛰었다. 나의 수상한 걸음에 경찰이 나를 세웠다. 그리고는 수색을 했다. 속옷에 숨긴 돈이 발각되었고 수치스러웠다. 수치심에도 불구하고 살기 위해서,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했고 아주 다행히 경찰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놓아주었다.
이 꿈의 의미는 뭘까. 의사는 도박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도박-충동적. 비이성적. 그런 것들이 떠오르니 갑자기 나 같아졌다. 시시때때로 충동적인 행동을 하고, 깊은 고민 없이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고 행동했다. 후회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나 자신에 집중하면서 살았다. 물론 살면서 점점 두려워지는 것이 많아져 예전보다는 덜 충동적이게 되기는 했다. 종종 이혼도 그런 충동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러면 또 뭐 어떤가. 삶의 많은 선택의 지점에서 무엇을 선택하든 잘못된 결정은 없다고 생각한다. 조금 다른 길을 가는 것이겠지 한다. 그러면서도 이혼 후의 삶이 엉망진창이 될까봐 두렵다. 혹여라도 그렇게 되면 내 삶이, 내 결정이 모두 틀린 것이 될테니까.
내가 스스로 한 선택인 이혼, 그것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라고 말하는 사회문화적 규범과 멀리 떨어져 있다. 자기 결정권이 이성애 가부장적 규범에서 벗어날 때, 그것은 쉽게 비난된다. 자신을 믿고 내 감각과 생각을 믿고 한 행동이지만,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에 내가 무너질까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럴 때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어. 나는 이상하니까"라는 도그마가 작동한다.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사회문화역사적으로 구성된 존재다. 그런 점에서 외부의 시선은 나의 시선이기도 하다.
꿈에서는 도박을 하는 사람(나) 옆에 도박을 막으려는 또 다른 내가 있다. 또 다른 나는 오해를 받을 수도, 강도를 만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기꺼이 도박하는 나를 돕기 위해 나섰다. 꿈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나에게, 무의식의 내가 욕망해도, 충동적이어도,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혹여라도 나의 충동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더라도 또 다른 내가 나를 지켜줄 거라고 말하는 것 같다. 또 다른 내가 나를 구해주도록 곁이 되는 담배가게 주인도, 경찰도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