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임솔아,2019)> 후기
소설 읽기를 좋아한다.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서 나와 닮은 구석을 찾게 되어 내 삶을 긍정하게 되기도 하고, 이야기가 가진 힘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렇게 이야기 속에 있다보면 현실에서 나를 괴롭히던 어떤 것들이 작게 보이기도 한다. 모든 종류의 이야기가 가진 힘을 나는 믿는다.
최근에, 큐큐퀴어단편선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를 읽었다. 그 중에서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은 단편은 임솔아 작가의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다. 소설에는 충북 괴산의 칠성면에서 지역 활성화 지원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무상으로 공간을 얻어 수프카페를 운영하는 청년셰프인 나와 나를 돕겠다며 어느날 나타난 언니가 등장한다.
언니는 간호사였다가 결혼 후 그만두었다. 이혼을 하고나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하니 쉽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머리가 빠지고 아팠다. 그런 경험을 가진 언니는"아프다는 건 정상이 아니라는(118)"말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프지 않으려면, 정상으로 돌아가야만(119)"했고, 그런 점에서 "정상이 되고 싶은 건 욕망이 아니라 균형감각(118)"이라고 말하면서, 정상에 집착한다.
선미 언니가 보기에 소설 속 나는 비정상이다. 그래서 언니는 다른 사람, 그러니까 소설 속 내가 "정상이 되는데 도움이 되고 싶(120)"었다. 나는 혼자오는 카페 손님들을 좋아했는데 언니는 매출에 도움이 안된다며 1인용 좌석을 합쳐서 4인용 좌석으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말한다. "내가 도와주니까 좋지?(128)"
나도 그랬다. 전형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비정상으로 여겨졌다. 나는 집안일에 매우 서툴었고 별 관심도 없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내들이 하는 일을 주로 K가 했다. 그는 음식을 잘했다. 먹는 것을 좋아했고, 하나를 먹더라도 제대로 요리해서 먹었다. 음식은 허기를 때우기위해 필요한 것쯤으로 여기는 나와는 달랐다. 그래서 그가 항상 요리를 했다. 나는 가끔, 설거지 정도를 할 뿐이었다. 빨래도 그가 했다. 청소도 그가 했다. 재활용 쓰레기도 그가 버렸다. 나는 가끔, 화장실 청소를 했고 반려식물과 반려동물을 챙겼다.
소설 속 나(기정)는 아팠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프다는 건 나 자신이 나 자신을 지나치게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있어야 하는(129)"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아플 때에도 언니는 지극 정성으로 나를 보살폈는데, 병원에서도 다 나았다고 말했을 때 언니는 표정이 어두워졌고 그것은 "더 오래 아프기를 바랐다(131)"는 것을 의미한다.
K도 그랬다. 그는 내가 집안일을 잘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적당히 구박하면서 은근히 즐겼다. 나의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면들이 정상적이고 싶어하는 K의 욕망을 채워줬다. K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대했다. 그리고 스스로 만족해했다. 핑계이고 비겁한 말이지만, 그가 가진 선의 때문에 나는 그에게 다른 요구를 할 수 없었다. 그 때는 그랬다.
소설 속 나(기정)는 "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인식(134)"하고 있었고, "나는 내가 아니라는 걸 굳게 믿어야(134)" 했고,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거부당하지 않(134)"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기정)는 안다. "정상이라는 것은 계급이고 권력(135)"이고, "정상성은 그 영역 안에서 종속되어야 안심(135)"이 되도록 하는 장치라는 것을.
“비정상이어서 아픈 게 아니라" 자신을 "거부하면서까지 정상이 되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135)" 아픈 거라는 것을. 언니가 나에 대해 선의를 가지고 있지만 "나의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면들이 정상적이고 싶어하는 언니의 욕망을 채워(136)"주면서 서로 "공평하게 곪아가고 있(136)"다고.
나도 그랬다. K의 선의가 커질수록 K의 욕구, 그러니까 비정상인 나를 정싱으로 만들려는 욕구도 커졌다. 그리고 점점 나에게 요구되는 아내로서의 자질들도 늘어났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이었지만 그의 선의때문에 마냥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비정상으로 위치지었다. 그리고 비정상의 아내로 살면서 나를 정상적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그의 욕구에 부응하도록 애썼다. 정상적인 존재가 되려고 애썼다. 그러는 사이 내 몸은 병들었다. 그의 선의가 나를 곪게 만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를 좀먹는 일을 그만 하고 싶어졌다. 스스로를 비정상으로 위치짓고 끊임없이 장상이 되려고 애쓰는 것, 그건 내가 아니다. 그건 K의 인형일 뿐이다.
이제 나는 계급이고 폭력인 정상으로부터 저항하려고 한다. 적어도 내가 나를 곪게 만드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